한화 이글스 샘슨이 200탈삼진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투수가 아웃카운트를 잡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꽃’은 누가 뭐래도 삼진이다. 타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루킹삼진이나 허탈하게 만드는 헛스윙삼진 모두 투수 입장에선 가장 짜릿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비실책이나 행운의 안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애초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진은 투수가 꿈꾸는 가장 완벽한 아웃카운트다.

때문에 탈삼진은 투수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다승이나 평균자책점의 경우 팀 동료들이 개입될 여지가 있으나, 탈삼진은 그렇지 않다. 다승보다 탈삼진왕이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유다.

이처럼 의미가 큰 탈삼진 부문에서 의미 있는 숫자는 ‘200’이다. 한 시즌 200탈삼진 고지를 넘기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한 시즌 내내 꾸준히 에이스로 활약하며 상대 타자들을 무너뜨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KBO리그 초창기엔 지금보다 경기 수가 더 적었음에도 200탈삼진 기록이 자주 등장했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타자보단 투수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정 투수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다.

역사상 첫 200탈삼진 고지를 밟은 선수는 리그 출범 두 번째 해인 1983년 나왔다. 이제는 ‘추억의 팀’이 된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가 그 주인공이다. 1983년 220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200고지를 돌파했다. 현재까지도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한 시즌 가장 많은 탈삼진을 뺏어낸 투수는 ‘전설의 에이스’ 최동원이다. 장명부가 처음으로 200고지를 돌파한 다음해인 1984년, 223개의 삼진을 빼앗아내며 현재까지도 이 부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동원은 1986년에도 208개(역대 8위)의 삼진을 잡아내며 두 차례 200고지를 밟았다.

1986년은 또 한 명의 전설적인 투수 선동열이 처음으로 200고지를 밟은 해이기도 하다. 선동열은 당시 2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어 1991년에도 210개의 탈삼진을 기록해 역시 두 차례 200고지를 점령했다. 이는 각각 역대 5위,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최동원에 이은 한 시즌 최다 탈삼진 2위는 1996년 주형광(221개)이 기록했다. 200탈삼진 고지를 밟은 선수가 1990년대 딱 2명 나온 셈이다.

2000년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200탈삼진의 무게감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2001년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이던 도미니카 출신 에르난데스가 215개(역대 4위)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21세기 첫 200고지 정복자가 됐다. 처음이자, 유일한 외국인 투수 200탈삼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뒤를 이은 것은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다. 한화 이글스 소속이던 2006년과 2012년 204개, 21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심지어 2006년은 그의 데뷔 시즌이었다. 류현진은 최동원, 선동열과 함께 두 차례 2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 200탈삼진은 명맥이 뚝 끊겼다. 10구단 체제와 함께 경기 수가 늘어났음에도 200탈삼진은 나오지 않았다. 2015년 당시 LG 트윈스 소속이던 차우찬이 기록한 194탈삼진 정도가 가장 근접한 기록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올해 200탈삼진에 도전하는 투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200탈삼진 투수를 배출한 한화 이글스 소속의 외국인 용병 샘슨이다. 샘슨은 아시안게임 휴식기 전까지 24경기에 등판해 12승 7패를 기록하며 172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이 부문 2위 소사(LG 트윈스)와의 차이가 13개에 달하는 등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200탈삼진까지 남은 개수는 28개. 한화 이글스가 30경기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샘슨에겐 최소 6번 이상의 출전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샘슨은 지금까지 경기당 7.1개의 탈삼진을 잡아왔다. 산술적으로는 4경기만 더 주어지면 200탈삼진 고지 정복이 가능하다. 200탈삼진 고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는 좋다. 샘슨은 최근 2세 출산 등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보여준 바 있다.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미국까지 건너갔다가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때마침 아시안게임 휴식기가 찾아오면서 샘슨은 여유 있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게 됐다. 남은 기간 확실한 동기부여를 얻게 된 셈이다.

샘슨이 200탈삼진에 성공한다면, 여러 모로 더욱 의미 깊은 기록이 된다. 2012년 류현진 이후 6년 만에 나오는 기록일 뿐 아니라, 외국인 선수로서 17년 만에 나오는 두 번째 기록이다. 한화 이글스가 또 다시 200탈삼진 투수를 배출하게 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역대 가장 많은 200탈삼진 투수 배출 구단이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샘슨이 200탈삼진을 넘어 역대 신기록을 넘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샘슨이 최동원의 기록을 넘기 위해선 51탈삼진이 더 필요하다.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다.

한국에서 성공가도를 이어가며 2세 출산이란 기쁨까지 맞은 샘슨이 200탈삼진 고지 정복으로 2018년을 기억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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