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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뉴스
[미투가 바꾼다②] 비동의 간음죄 찬반 논란
2018. 08. 24 by 정계성 기자 under74@sisaweek.com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한국에도 ‘#미투’(MeToo)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여성들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미투를 함께하며 여성운동의 반경을 넓혀갔다. 미투는 ‘나도 고발한다’는 주체적 의미지, ‘나도 당했다’는 피동적 의미의 운동이 아니다. 미투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미투를 어떻게 바라보고, 여성들의 ‘비명’에 어떤 식으로 답해야 할까. <편집자 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한국에 상륙한 미투 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고발 차원을 넘어 사법체계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미투 운동의 상징적 사건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이 1심에서 무죄로 나오면서다. 무죄를 선고한 담당재판부 마저 “현행 법제 하에서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다는 증명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처벌하기 어렵다”며 개정 필요성을 인정했다.

형법상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범죄유형은 크게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하는 간음·추행과 ▲위계·위력을 수단으로 하는 간음·추행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판례는 강간죄의 요건인 폭행·협박을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인 ‘위계·위력’ 성립에도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행사가 필요하다는 게 판례의 태도다.

◇ 안희정 판결이 불러온 간음·추행죄 개정 움직임

문제는 피해자의 ‘명시적 거부의사’는 있었지만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은 간음은 처벌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특히 권력형 성범죄에 있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위계·위력 행사’의 입증이 힘들기 때문에 가해자가 법망을 피해가기 쉽다. 안희정 전 지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현행법이 피해자 구제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은 학계나 법조계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에 국회에서도 개정 논의가 한창이다. 강간죄 혹은 권력형성범죄 관련 형법 개정안이 대략 7~8건 정도가 발의됐으며 토론회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개정방향은 크게 ▲강간죄의 구성요건 변경 ▲비동의 간음·추행죄 신설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 처벌범위 확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강간죄의 구성요건 변경은 홍철호 의원, 강창일 의원, 백혜련 의원 등이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폭행이나 협박 또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라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혹은 ‘상대방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폭행·협박을 강간죄의 요건에서 제외시킴으로서 강간의 범위를 넓히고 입증을 단순화한 게 핵심이다. 영국, 미국, 독일이 이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강간죄의 구성요건 변경에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강간과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와 관계가 불명확해지고, 폭력·협박이 수반하지 않고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강간죄로 다스리는 것이 지나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태명 전북대 법전원 교수는 “단지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간음했을 뿐인데도 강간죄 등의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했다.

◇ 학계·여가부 개정 필요성 한 목소리

나경원 의원이 김삼화 의원, 조배숙 의원 등과 함께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했다. <뉴시스>

따라서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는 방안이 합리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상대방의 동의 없는 간음 혹은 추행을 범죄로 규정하고 형량은 강간죄 보다 낮게 설정하자는 게 골자다. 천정배 의원의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동의’의 판단기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리는데, 명시적 동의만 ‘동의’로 인정하는 ‘Yes Means Yes’와 ‘명시적 거부의사에 반하여’로 해석하는 ‘No Means No’가 있다.

명시적 동의가 없는 모든 간음 혹은 추행을 범죄로 보는 ‘Yes Means Yes’의 경우, 재판에서 입증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형벌권의 과잉이 문제될 수 있다. 이에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로 해석하는 ‘No Means No’ 법리가 주목받고 있다. 2016년 개정된 독일 형법이 이를 채택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음이 명백한 경우’ 또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간음하는 경우’로 제한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밖에 권력형 성범죄의 특별규정을 신설하는 개정안도 있다. 나경원 의원은 ‘경제·사회적 지위를 이행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이익의 제공이나 약속 또는 불이익의 위협으로 간음한 자’를 처벌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은 기존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에 ‘사회적 지위 등을 이용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낸 상태다.

여성가족부는 국회의 논의결과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행 형법상 강간죄 등의 범위가 좁아 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분명하다. 여가부 관계자는 “간음죄의 범위가 외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좁아 피해자 구제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회 논의를 통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입법적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