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비잠’(감독 정재은)이 올가을 관객들의 감성을 촉촉이 적실 수 있을까. <트리플픽쳐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기억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정재은 감독)

정재은 감독의 신작 ‘나비잠’은 불쑥 찾아온 사랑과 그 사랑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을 슬프지만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다. 선선한 가을 찾아오는 감성 멜로 영화 ‘나비잠’이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실 수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 주의)

◇ 시놉시스

“서로 좋아하는데 왜 헤어져요?”

일본 소설에 매료돼 무작정 일본으로 유학 온 작가 지망생 찬해(김재욱 분).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베스트셀러 작가 료코(나카야마 미호 분)를 만나게 된다. 찬해가 료코의 잃어버린 만년필을 찾아준 것을 계기로 반려견 톤보의 산책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료코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찬해와 함께 준비해가고, 소설이 완성되며 점점 커져가는 사랑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써 내려간 기억의 한 페이지, 우리의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 배우들의 호연·아름다운 영상미 ‘UP’

‘나비잠’은 남성적이고 강렬한 영화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극장가에 찾아온 반가운 정통 멜로 영화다. 선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료코와 한국인 유학생 찬해의 러브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고 싶은 료코와 어떤 모습이라도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찬해의 마음은 사랑을 해 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애틋한 감성을 전한다.

‘나비잠’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소설가 료코 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제공>

료코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점도 반갑다. 기존 멜로 여주인공과 달리 료코는 찬해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드러낸다. 먼저 이별을 고하는 것도 료코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음에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기억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료코의 모습은 그 어느 멜로 여주인공보다 아름답다.

50대 중년 여성과 20대 청년의 운명적 사랑은 나카야마 미호와 김재욱의 섬세한 연기로 설득력 있게 완성됐다. 일본 멜로 영화 대표작인 ‘러브레터’(1999, 감독 이와이 슌지)의 여주인공이자 첫사랑의 아이콘 나카야마 미호는 한층 더 깊어진 감성 연기를 선보인다. 찬해와의 우연한 만남이 영원히 기억될 운명이라고 믿는 감정과 기억을 잃어가는 혼란스러움 등 료코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나비잠’에서 작가 지망생 찬해 역을 맡은 김재욱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제공>

김재욱은 찬해 그 자체다. 료코를 향한 애틋한 눈빛과 절제된 감정 연기로 어떤 시련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의 무게를 담아내 마음을 흔든다. 수준급 일본어 실력도 감탄을 자아낸다. ‘나비잠’이라는 한 단어를 제외하고 모든 대사를 일본어로 소화했지만 어색함은 없다. 료코의 발에 살포시 손을 올린 채 서로 마주 보고 소파에 기대 책을 읽는 장면은 김재욱의 아이디어로 완성된 명장면이다. 어느새 료코에게 빠져버린 찬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상미도 좋다. 연애 세포를 자극하는 서정적인 미술과 로케이션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푸른 녹음 속 위치한 로쿄의 집은 마치 숲속에 와 있는 듯한 청량한 느낌을 선사한다. 수많은 책들을 표지 색의 채도와 명도에 따라 정리한 료코의 서재도 아름다운 비주얼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는 ‘나비잠’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제공>

▼ 일본 특유의 감성 낯설다면 ‘DOWN’

‘나비잠’은 한국 감독과 일본 제작진이 만든 한일 합작영화다. 정재은 감독과 김재욱을 제외하곤 모두 일본인 제작진이 참여했고, 모든 촬영이 일본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이유 탓인지 ‘나비잠’은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가 더 짙어 아쉬움이 남는다.

다수의 멜로 영화에서 소비됐던 흔한 설정도 아쉽다. 료코의 알츠하이머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를 떠오르게 했고, 50대 중년 여성과 20대 청년의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 ‘밀회’(2014)를 연상케 한다.

나카야마 미호와 김재욱의 섬세한 연기, 정재은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력으로 완성된 영화 ‘나비잠’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제공>

◇ 총평

특별함은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여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또 한일 합작 영화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이 더 짙게 담겨있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카야마 미호와 김재욱의 섬세한 연기, 정재은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력은 ‘나비잠’을 특별한 멜로 영화로 완성한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영상미도 감탄을 자아낸다. 오는 9월 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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