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기 쉽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각종 공익단체나 활동가들은 늘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와 공익의 맹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와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에선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시사위크>가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가든 프로젝트는 옥상텃밭, 빗물이용, 도시조경 등의 사업을 진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서울이란 도시는 무슨 색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동네 골목길부터 지하철, 그리고 서울 시내 빌딩숲에 이르는 출근길을 두리번거려봤다.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온 색은 ‘잿빛’, 회색이었다. 늘 오가는 출근길이었지만, 새삼 이런 자각이 드니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이런 도시의 구석구석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가든 프로젝트’다. 지난 29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내 산학관에 위치한 가든 프로젝트 사무실을 찾아 박경복 대표를 만났다. 박경복 대표는 나무로 꾸며진 따뜻한 느낌의 사무실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가든 프로젝트는 옥상텃밭 조성 등 도시농업사업과 빗물이용사업, 각종 도시조경사업을 수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2010년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시행된 ‘도시농업 시범사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해 어느덧 설립 9년차를 맞고 있다.

옥상텃밭은 옥상에 텃밭을 조성해 농사를 통한 교육 및 체험, 그리고 자연을 통한 ‘힐링’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방치되기 십상인 공간을 생명의 공간, 초록의 공간으로 바꿔준다. 여느 텃밭과 마찬가지로 제철 채소를 길러 수확할 수 있고, 특히 요즘엔 허브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박경복 가든 프로젝트 대표가 서울 성북구 개운산의 한 공공시설에 설치된 옥상텃밭에서 허브를 살피고 있다. <시사위크>

빗물이용사업은 옥상텃밭에서 파생된 사업이다. 옥상텃밭에 물을 주기 위해 빗물을 모아둘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빗물저장통을 구입해 쓰기도 했는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자 직접 ‘빗물저금통’을 제작·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시작된 빗물사용사업은 이제는 옥상텃밭과 함께 가든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분야로 자리매김 했다.

가든 프로젝트의 빗물저금통은 단순히 빗물을 모아두는 통이 아니라, 마셔도 될 수준까지 정화시키는 첨단 필터가 적용돼있다. 꼭 옥상텃밭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청소나 조경 등에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곳에 설치되고 있다. 2016년엔 전주시의 ‘빗물유출제로화 단지조성 사업’에 참여해 44톤 규모의 빗물저금통을 설치했고, 지난해에는 서울 경복고등학교에 15톤 규모의 빗물저금통을 설치했다.

기자가 가든 프로젝트를 찾은 날은 때마침 며칠 간 많은 비가 내렸을 때였다. 이렇게 내린 많은 비는 대부분 우수관을 통해 버려지지만, 빗물저금통에 저장된 빗물은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실제 고려대학교 내 한 건물에 설치된 빗물저금통엔 옥상을 통해 모인 빗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가뭄과 폭우 등 극단적인 기상이변과 물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빗물저금통은 향후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도시조경사업 또한 가든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옥상정원을 비롯해 모든 조경시공을 제공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린 커튼’이다. 건물 외부나 벽면, 구조물 등에 덩굴식물을 조성해 여름엔 무성한 잎이 뜨거운 햇볕을 차단하고, 겨울엔 잎이 떨어져 따뜻한 햇살이 들게 하는 ‘자연 커튼’으로 활용한다. ‘그린 커튼’은 온도조절은 물론 경관개선, 소음완화, 시선차단, 공기질 개선 등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가든 프로젝트가 성북구의 한 어린이집에 시공한 그린 커튼의 모습이다. 빗물저금통에 모인 빗물이 자동으로 일정하게 관수되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시사위크>

◇ “기술·경험 아낌없이 전수해 지역 일자리 늘리고파”

이처럼 가든 프로젝트는 사업이 번창할수록 우리 사회에 좋은 결과물들을 남기게 된다. 관건은 ‘자금’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자금 없이는 실행할 수 없다.

가든 프로젝트의 핵심 ‘고객’은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 700여개가 넘는 공공기관이다. 이들 공공기관의 관련 예산이 가든 프로젝트의 영업대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실질적인 수혜자는 시민이다. 즉, 공공기관의 공적 예산이 좀 더 잘 쓰일 수 있도록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박경복 대표는 “가든 프로젝트는 각 공공기관에겐 관련 예산을 더 잘 쓸 수 있도록 돕고, 시민들에겐 그 혜택을 더 잘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박경복 대표는 자신이 받았던 각종 도움을 가든 프로젝트 전국 지점 개설을 통해 되갚고자 한다. <시사위크>

박경복 대표는 자신의 경력을 밑거름 삼아 이러한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과거 조경회사에 근무하며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조성에도 참여한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으로 재직한 경험도 있다. 공무원 재직 당시 일본으로 환경과 관련된 연수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도시농업이 상당히 활성화돼있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것이 계기가 돼 도시농업 사업에 나서게 됐다.

그는 가든 프로젝트의 사업이 충분한 성장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서울시만 해도 우리 사업과 관련된 예산이 2010년 1억원 수준에서 지금은 100억원에 이른다.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관련 예산은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가든 프로젝트의 할 일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란 설명이다.

처음부터 사회적기업을 알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도시농업 사업을 준비하던 그는 주변의 지인 및 관계자들로부터 “취지가 좋으니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해보는 것이 어떻겠나”라는 조언을 얻었다. 이후 사회적기업으로서 많은 지원과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가든 프로젝트 지점 개설을 통해서다. “관심과 열정, 그리고 약간의 초기자금만 있다면 가든 프로젝트 지점 창업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구축해놓은 사업구조와 제가 가진 전문성, 경험을 모두 전수해주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사업을 일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광주광역시에는 ‘가든 프로젝트 광주’가 성공적으로 자립해 활동 중이며, 일부 다른 지역에서도 젊은 청년들이 지점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내 한 건물에 설치된 빗물저금통. 빗물저금통은 꼭 옥상텃밭이 아니더라도 청소나 조경 등에 빗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요즘처럼 가뭄과 폭우가 되풀이되는 이상기후에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시사위크>

단, 지점 개설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해당 지역 거주다. 박경복 대표는 “전국 각지에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있고, 관련 예산이 있다. 굳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일자리를 찾아오지 않고도 자신의 거주지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 그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감은 해당 지역 사람이 운영하도록 하며 일자리를 만드는 것. 그리고 가능한 비용을 낮춰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기업의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존의 기업 및 경제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발상이고, 사회적기업이기에 가능한 접근 방식이다. 기존의 기업이라면 전국의 모든 공공기관을 공략하며 덩치를 키우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경복 대표는 “저 혼자 많은 돈을 벌기보단,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며 함께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사회적기업 지원을 통해 도움을 받았듯 지점 창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그들은 다른 후배 창업자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사회적경제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한다.

박경복 대표는 전국을 넘어 북한, 그리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동네 구석구석, 도심 이곳저곳을 초록으로 물들이며 사회적경제의 씨앗을 퍼뜨릴 가든 프로젝트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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