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스페셜뉴스
[문학이 사랑한 통계①] 초대받지 않은 손님 '인구조사원'
2018. 09. 03 by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인도의 정확한 인구는 몇 명일까? 인구조사원들은 이 난제에 근사치를 제공해주는 주역인 동시에, 영원히 정확한 대답이 나올 수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인구조사는 아마도 통계가 역사상 최초로 활용된 분야일 것이다. 국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두 요소였던 세금과 징병의 기초는 바로 인구수이며, 이것을 파악하는 인구조사는 지배자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이용돼왔다. 오늘날에도 훨씬 정확하고 세분화된 인구조사 결과들은 다양한 정책이 결정되는 밑바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 일부 선진국들은 발달한 통계기법을 이용해 ‘사람냄새’가 덜 나는 인구조사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인구조사의 상징이었던 전수조사 대신 표본조사기법이 도입되고 있으며, 특정 조사항목들에 한해선 아예 가구를 방문하지 않고 행정자료만을 바탕으로 결과물을 도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부터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나라까지, 5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구조사가 실시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위험까지 느껴가며 발품을 팔았던 인구조사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작가들은 자신의 글 속에서 이들을 때로는 낭만적으로, 또는 비굴하게, 어떤 때는 잔혹한 범죄의 희생양으로 그려냈다.

◇ 인구조사원 천태만상

안톤 체호프가 1887년에 쓴 단편 <베로치카>에는 직업적 사명감에 불타는 통계학도가 등장한다. 그는 인구조사를 비롯한 각종 지역통계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고향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소도시까지 출장을 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권태와 고독 그리고 통계학-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오늘날의 학문 가운데에서 가장 현저한 위치를 차지하는-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예상했다. 사월의 아침 N군의 소읍에 도착해서 그는 보수파 신자인 랴부힌의 여인숙에 묵었는데, 거기서는 하루 20코페이카로(단, 실내에서는 금연을 조건으로) 밝고 깨끗한 방을 내주었다. 휴식을 취하고 나서 군 자치회 의장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다음, 그는 곧장 걸어서 가브릴 페트로비치의 집으로 갔다. (중략) 처음에 노인은 이 젊은이와 그의 통계 작업이 지방자치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이마를 찡그렸다. 그러나 통계 자료가 무엇이며 어디서 그 자료가 수집되는가에 대해 아그뇨프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자 가브릴 페트로비치는 활기를 띠고 미소를 지으며 어린애 같은 호기심으로 그의 공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안톤 체호프, 베로치카, 박현섭 옮김, 민음사

원만한 성격에 통계의 중요성도 이해하는 지역 유지와 매일 밤 술잔을 기울이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데 이어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인까지 만난 아그뇨프는 행운아라고 불릴 만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불쑥 찾아와 신상명세를 꼬치꼬치 캐묻는 조사원들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사용한 조사표에는 나이와 학력 등의 기본적인 내용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장애가 있는지, 자녀를 낳을 계획이 있는지,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등 사적 영역에 속하는 질문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보다 수동적이고 열의 없는 인구조사원들은 비협조적인 조사 대상을 만났을 때 쉽사리 통계 조작의 유혹에 넘어가곤 한다. 상대가 무언가를 숨겨야 하는 인물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이보게,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내 하인들은 그처럼 긴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없네. 말보로 담배 한 갑을 줄 테니 이쯤에서 끝내는 게 어떻겠나? 자네 조사에서 네 사람쯤 빠져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인구조사원은 말보로 담배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글쎄요… 정말 자상하시군요.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블랙 라벨 조니 워커라면… 아니 레드 라벨이라도 있으시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하기야 넓은 바다에서 네 모금쯤 마신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십억 인구에서 네 사람쯤 빠진다고 누가 알겠냐고요.”>
-비카스 스와루프, 슬럼독 밀리어네어, 강주헌 옮김, 문학동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 람을 하인으로 고용한 테일러 대령은 어딘가 수상쩍은 인물이다. 자신의 저택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길 원하는 테일러 대령과 통계의 정확성보다 술 한 병이 더 중요한 인구조사원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그의 말처럼 10억분의 4는 통계적으로 아무런 유의성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인구조사를 진행하는 담당자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인도 정부가 2011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에는 약 250만명의 공무원이 동원됐다. 이들이 모두 조사표에서 4명씩 빼먹는다면 숫자로 나타난 인도의 인구는 실제보다 1,000만명이 줄어드는 셈이다.

미국의 2018년 인구조사에서 활용된 조사표를 담고 가정으로 배달된 우편봉투. '법에 의해 응답할 의무가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는 우편에 회신하지 않는 가구를 추적하는 인구조사원이 등장한다. <뉴시스/AP>

통계 조작에 가담한 인구조사원의 이야기는 폴 오스터의 대표작 <뉴욕 3부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존재를 지워야 하는 ‘나’의 처지는 없는 사람의 존재를 만들어냈던 자신의 과거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나는 8년 전인 1970년 6월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돈이 거의 다 떨어진 데다 여름을 보낼 일이 막막했던 나는 할렘에서 임시방편으로 인구조사원 일을 맡았다. 우리 그룹에 속해 있는 스무 명 가량의 현장조사요원들은 우편으로 보낸 설문지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을 추적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중략) 내가 처음 들른 곳은 알고 보니 숫자 맞히기 노름을 하는 도박장이었다. 문이 비끗 열리더니 어떤 사내가 머리를 내밀었고, 내가 그에게서 들은 말은 그런 일엔 아무 관심이 없으니 딴 데나 가서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가난하고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공무원이나 정부의 통계조사와는 단 하나의 접점도 맺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던 할렘의 거주민들은 난데없이 나타나 조사표를 들이미는 백인 청년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다. 거듭된 실패에 좌절에 빠진 ‘나’는 인구조사 책임자와의 짧은 대화에서 조사표를 허위로 작성하라는 암시를 얻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정부에서 원하는 것은 ‘작성된 양식’이고, 노크를 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안에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그 뒤로는 일이 상당히 수월해졌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일은 아니었다. 현장 조사 업무는 사무적인 일로 바뀌었고 이제 나는 조사원이 아니라 창조자가 되어 있었다. (중략) 그때 내가 만들어 낸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수백 명, 아니 어쩌면 수천 명은 되었을 것이다. 매일같이 방 안에 틀어박혀서 바람이 얼굴에 와 닿도록 선풍기를 틀어 놓고 차가운 물수건을 목에 두른 채 내 손으로 쓸 수 있는 한 빠르게 설문지를 채워 나갔으니까.>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인구조사원의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폴 오스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내용이다. 오스터는 영국 패션·문화지 ‘데이즈드’와의 인터뷰(2013년 10월)에서 “대학 졸업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구조사원 일을 한 적 있다”고 밝혔다. 그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나이가 100세가 다 되어가고 눈은 거의 멀었으며 태어나서 처음 만난 백인이 폴 오스터였던 흑인 할머니의 이야기는 <뉴욕 3부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론 조사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부분까지 작가의 경험인지는 알 수 없다.

한니발 렉터 박사가 추천하는 인구조사원의 간 요리. 여기에 누에콩과 레드와인을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픽사베이>

관점에 따라선 무관심과 냉대가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조사 대상을 잘못 찾아간 인구조사원들은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연고가 없는 이방인이자 불청객인 인구조사원들은 쉽사리 적의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미국 문학·영화계가 만들어낸 최고의 악역 중 하나인 한니발 렉터 박사는 소설 4권(레드 드래곤·양들의 침묵·한니발·한니발 라이징)에 걸쳐 총 29명을 살해하고 먹은 것으로 묘사된다. 대표작인 ‘양들의 침묵’에서만 9명이 희생되는데, 이 목록에는 불운한 인구조사원도 들어있다. 특별수용소에 격리돼있는 렉터 박사에게 견습 FBI 수사관인 클라리스 스탈링이 찾아와 심리조사에 응할 것을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번은 인구조사원이 나를 계량(quantify)하려고 했지. 나는 그의 간에 누에콩과 아마로네를 곁들여 먹었소.”>
-토마스 해리스, 양들의 침묵, st. Martin's press

4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으며,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정신과 의사인 렉터 박사는 자신을 숫자 몇 개로 재단하려는 시도에 분노를 느낀다. 이 자존심 높은 살인마는 어쩌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도장 하나로 표현하는데 거부감을 느낀 나머지 투표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