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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만나다
시각장애인 대표가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체험 카페
이제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기관으로 ‘발걸음’
[사회적기업을 만나다③ 암흑] 어둠에서 마주하는 감사함, ‘진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2018. 09. 05 by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기 쉽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각종 공익단체나 활동가들은 늘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와 공익의 맹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와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에선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시사위크>가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사회적기업 암흑의 성정규 대표. 그는 서울 신촌에서 시각장애인 체험을 할 수 있는 ‘눈탱이감탱이’ 카페를 운영 중이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금부터 제가 앞장 설 테니 제 어깨를 잡으시고 따라오세요. 어지러울 수 있으니 눈은 감으시는 게 좋아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붉은 장막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신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했지만 시야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생전 처음 겪어보는 완벽한 암흑이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블랙홀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의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의지할 것이라곤 앞장 선 직원의 어깨뿐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을수록 공포는 배가 됐다. 머리를 부딪치진 않을까, 다리가 걸리진 않을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고 주춤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낌새를 느낀 직원은 “장애물은 없으니 안심하시고 따라오세요”라고 말했다.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답답함은 여전했다.

평소였으면 몇 초 만에 도착했을 거리를 그렇게 힘겹게 도착했다. 직원은 “자 이제 손을 내밀어보시면 테이블이 만져지실 거예요.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시면 의자가 있습니다. 앉으신 뒤에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주세요”라고 안내했다. 어둠 속에 손을 휘저어 탁자와 의자를 찾아 앉았다. 오로지 손끝의 촉감으로만 주변 파악이 가능했다. 확실히 걸어서 이동할 때보단 공포가 덜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앞의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때 비로소 드는 생각이 있었다. “늘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은 정말 힘들겠구나.”

저 붉은 장막 안은 온통 암흑이다. 직원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따라가면 식사와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시사위크>

◇ 암흑 속 식사와 게임,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다

이곳은 젊음의 메카 서울 신촌에 위치한 암흑카페, ‘눈탱이감탱이’다.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님과함께’에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어둠 속에서 음식을 먹고 게임을 즐기는 이색카페이자 이색데이트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사회적기업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돕는 사회적기업 ‘암흑’이 운영 중인 곳이다.

자리에 앉은 뒤 안내가 이어졌다. 테이블 오른쪽 끝에 벨이 있고, 바로 위엔 냅킨이 있으며, 테이블 왼쪽 밑엔 휴지통이 있는 식이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점자책을 펼쳐봤다. 우둘투둘한 촉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적룰렛, 악어룰렛 같은 보드게임도 해봤다. 보이지 않으니 조마조마함도 배가됐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성정규 암흑 대표가 들어왔다. 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건 목소리뿐이었다.

국내 유일의 암흑카페를 운영 중인 그는 시각장애인(약시)이다. 초등학교 시절 갑자기 약시 장애를 얻게 됐다. 대다수 시각장애인들이 종사하는 마사지업계에서 나름 사업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을 노린 사기에 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2013년 암흑카페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마사지사업을 할 때도 대충하지 않았어요. 더 좋은 시설을 갖추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더 많은 요금을 받았죠. 주변에선 다들 실패할거라 했지만, 지점도 여러 개 내는 등 성공했어요. 암흑카페는 언젠가 외국에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돼 나중에 꼭 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도전의식이 강하고 모험을 좋아하거든요.”

처음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기업에 대해 잘 몰랐어요. 사업 시작 후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해보라는 추천을 받았지만, 괜히 이래저래 간섭받는 것은 아닌지 해서 거부감이 있었죠. 그러다 결국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게 됐는데,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암흑이 운영하는 ‘눈탱이감탱이’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MBC ‘무한도전’에 등장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방송 직후엔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MBC 방송화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다. 일반적인 긴 면이 아닌, 짧은 푸실리면으로 만들어진 파스타였다. 당연히 볼 수는 없었지만, 냄새는 좋았다. “시각장애인 분들은 뜨거운 음식에 손을 데이거나 음식이 손에 묻을 수 있어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접시를 확인합니다”라는 설명에 따라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포크를 잡고 음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지그시 누르자 음식이 찍히는 느낌이 왔다. 후후 불어 식힌 후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입술에 뜨거움이 느껴졌다. 쉽지 않은 식사가 예상됐다.

성정규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파스타엔 각종 해산물과 육류가 있었지만, 원하는 것을 집는 건 불가능했다. 입에 도착해야 뭘 집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 먹을 때 무의식 중에 생기기 마련인 맛이나 식감에 대한 예상이 전혀 없다보니, 음식 자체를 더 오롯이 느끼게 됐다. 잊고 지냈던 음식에 대한 감사함마저 오랜만에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어둠 속에서 편지를 쓰는 프로그램을 잠시 체험해봤다. 카드종이와 펜을 건네받은 뒤 오로지 손끝의 감각에 의지해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처럼 쉽게 썼다 지우고,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보니 편지에 어떤 글을 담아야할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한 문장을 완성하기도 전에 펜은 길을 잃고 말았다. 한 번 길을 잃으니 난감했다. 어디서 글이 끝났는지, 어디서부터 다시 쓰면 될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모든 체험을 마치고 이번엔 성정규 대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붉은 장막 밖으로 빠져나왔다. 비로소 빛이 보였다. 상호명인 ‘눈탱이감탱이’가 담고 있는 의미대로 눈에 대한 감사와 건강에 대한 감사가 절실하게 다가왔다.

사회적기업 암흑이 운영 중인 ‘눈탱이감탱이’ 카페의 안내사항. <시사위크>

◇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제대로 해야죠”

이처럼 단순히 이색카페로만 생각하기 쉬운 암흑카페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연인 뿐 아니라 가족이나, 회사, 학교 등에서도 많이 방문한다.

“학교에서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오거나, 회사 회식으로 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평소 회식이나 회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죠. 기억에 남는 가족도 있는데요. 시각장애인 부모와 비장애인 자녀가 함께 왔었던 거예요. 평소에도 부모의 장애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저희 암흑카페를 다녀간 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렇다고 암흑카페가 무겁기 만한 것은 아니다. 연인들은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고, 지인들과 함께 암흑 속에서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또한 암흑카페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 등장한 것과 유사한 ‘암흑소개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홈페이지를 비용을 지불하고 접수해 소개팅이 성사되면, 완벽한 암흑 속에서 만남을 갖게 된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암흑 속에서 모임을 갖는 ‘암흑모임’도 있다.

암흑카페는 최근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기관으로서의 행보도 시작했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법정 의무교육이 됐다. 성정규 대표는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정말 심각해요.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배려를 해주기 위해선 먼저 장애인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합니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직장 내 법정 의무교육이 된 이유죠. 그런데 막상 교육기관으로 지정되고 보니, 무료 교육만 찾으려 하는 곳이 많더군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정말 제대로 된 장애인 인식교육을 받는 곳이 많아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성정규 대표는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영업비밀’이라며 기사엔 넣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잘 보이지 않는 장애를 딛고 거침없이 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하는 사업들이 잘돼서 장애인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현재 장애인들은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척 제한적이거든요. 그들에게 새로운 직업과 직종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그 역할을 하고 싶어요.”

취재를 마친 뒤 다시 신촌 번화가를 걸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