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명민이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로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크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자신감이 넘친다. 신선한 시도, 완벽한 CG, 한국형 크리처의 탄생까지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는 영화란다. 하지만 자신의 연기에는 박한 점수를 줬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만점 활약을 펼쳤는데, 정작 본인의 눈에는 아쉬운 점 투성이다. ‘연기 본좌’의 기준은 높디높았다.

배우 김명민이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로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물괴’는 중종 22년, 역병을 품은 괴이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공포에 휩싸인 조선, 그리고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자들이 나타났고, 이 괴설이 나라를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영화에서 김명민은 물괴를 추적하는 수색대장 윤겸 역을 맡았다. 임금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옛 내금위장이지만 나약한 임금에게 실망해 궁을 떠난 인물이다. 김명민은 화려한 액션뿐 아니라 외동딸 명을 지키는 부성애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마주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역시 연기본좌’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김명민이 ‘물괴’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크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그러나 김명민은 모든 공을 영화 속 괴물 ‘물괴’에게 돌렸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물괴’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 김명민 배우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사극이라 기대하시는 분들도 꽤 많은 것 같아요.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랄까?
“바람직한 것 같아요. 우리 물괴가 굉장히 잘 나왔잖아요. 전 안 보이고 물괴만 보일 정도로요. 크리처 무비에 대한 기대는 다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예요. 거기다 한국산 토종 크리처고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하고. 이거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어요. 거기에 벌써 미국, 중국, 영국,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 전역에 다 판매가 됐어요. 진짜 봐야 하는 영화 아니에요?

흥망을 떠나서 이런 도전에 대해서도 박수쳐야 한다고 봐요. 크리처 무비를 한국산으로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도전인 것 같아요. 한국과 같은 불모지에 여러 장르의 다양성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요. 이 영화를 하게 된 이유도 대승적으로 보면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저한테도 도전이지만 많은 분들이 도전하고 있는 것에 같이 편승돼서 함께 힘을 합쳐서 갈수 있다는 거 정말 좋은 것 같아요.”

- 언론시사회 후 본인 연기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표현하셨어요.
“물괴한테 밀려서 그래. 물괴가 연기를 너무 잘했어 얘가. 우리가 보통 상상하잖아요. ‘어느 정도의 괴수가 나올 것이다’라고 상상하고 연기를 하는데, 그렇게 디테일하게 잘 나올지 몰랐던 거예요. 조금 더 공포스럽게, 혐오스럽게 (연기를) 했었어도 됐는데. 거기다 (물괴가) 연민까지 느끼게 연기를 하는 거예요. 물괴랑 같이 연기를 하는데 상대적으로 내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 창피했어요. 더 했어도 되는데 아쉽다. 이건 제 연기를 바라본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는 괴물의 형상에 대해 가장 궁금할 텐데 배우가 크리처보다 연기를 못했다고 하면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될 것 같아요.
“확실히 물괴가 제일 잘했어 진짜로. 정말 본심이에요. 허접하게 나왔다면 아무리 배우들이 애쓰고 용을 써도 수포로 돌아가거든요. 그런데 물괴 뒤에 수포 봤죠? 정말 장난 아니에요. 깜짝 놀랐어요. 공포감도 주고 혐오스럽기도 하고. 모두가 우려했던 부분이 말끔히 사라져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영화도 재밌잖아요.”

- 다수의 작품을 해오셨는데 ‘물괴’에서 특별히 신경 쓰고 연기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저 혼자가 아니라 네 명의 호흡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네 명의 ‘케미’, 호흡을 하나처럼 만드는데 집중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크리처를 상대로 연기를 한다는 게 너무 막연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상상을 했다가는 공포감이 아니라 서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고 물괴의 존재가 상실될 수 있으니까요.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무서운 놈이 등장했다고 생각을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공포스럽게 하자라고 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내가 했던 거는 조금 모자랐던 것 같아요.”

김명민이 ‘물괴’에서 윤겸 역을 맡아 액션과 부성애 연기 등 만점활약을 펼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크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 같은 시기에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해요. (영화 ‘협상’, ‘명당’, ‘안시성’ 등이 오는 19일 개봉한다.)
“그럼 분명히 극장에 많이 오실 거예요. ‘물괴’도 보고 다 보시겠지. 그러고 나면 ‘물괴가 역시 최고다’라고 하시겠죠. 그리고 친구들한테 말하겠지? ‘너 뭐 볼 거야. 물괴 봐’라고 하겠지. 그다음은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우리는 그냥 많은 분들이 극장에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개인 취향에 맞게 영화 선택해서 보시면 돼요. 장르가 겹치는 게 없기 때문에 정말 다행이다. 다 보셨으면 좋겠어요. 다 같이 잘 돼야 해요. 일단 극장에 사람들이 붐비고 해야죠. 추석이 짧은 것도 호재예요. 어디를 갈 수가 없잖아요. 너무 길면 멀리 여행 가신단 말이야.

전체적으로 꾸준히 극장을 찾아주시는 그림이 됐으면 좋겠어요. ‘빅 피처’를 그리자면, 항상 꾸준하게요. 시즌, 비시즌이 크게 나눠지지 않게 돼서 많은 영화들이 걸릴 수 있는 기회도 생길 테고, 그러다 보면 장르의 다양성도 생길 것이고 이런저런 시도도 하게 될 거고요. 그렇게 되면 한국 영화가 미래가 더 밝아질 것 같아요. 그런 날이 오길 바랍니다.”

-캐릭터 자체는 다르지만, 아무래도 김명민 배우가 출연한 ‘조선명탐정’ 시리즈가 계속 언급되고 있어요. 차별화를 두고 연기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셨나요.
“아무리 내가 차별화를 둔다고 해도 보는 사람들이 ‘명탐정이네’ 이러면 끝나는 거예요. 또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어차피 내가 했던 건데 그것도 인기를 끌었던 거니까, 아예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 그런 잔상을 가지고 오시는 건 괜찮다. 다 오셔라. 명탐정도 오고 이순신도 오고 다 오셔서 보는 거예요. 그런데 당연히 그런 생각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게 초반만 그렇고 중반 가면서부터는 몰입을 하게 되잖아요. 우리 영화가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몰입을 하게 되는 영화거든요.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냥 윤겸 같아요. 전혀 다른 톤이 나오죠.”

김명민이 스태프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크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 딸 명 역할을 맡은 이혜리 배우와 ‘케미’가 매우 좋았어요. 호흡은 어떠셨나요.
“일단 맛있는 걸 많이 먹였어요. 장어도 사서 먹이고, (이혜리가) 좋아하더라고요. 혜리와 친하게 된 것은 음식으로부터 시작이 됐고요. 혜리가 모난 데가 없어요. 말귀도 빨라요. 뭔가 얘기를 해주면 바로 바꾸는 걸 보면서 ‘이 친구는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빠르구나’ 싶었어요. 저 잔소리하는 거 싫어하는 스타일이에요. 후배가 먼저 와서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면 그때 말하는 스타일인데 혜리는 그런 자세가 돼있고 먼저 와서 묻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친해졌어요.”

- 인간적인 관계를 중시하시는 편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일을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험한 바닥에서 자랐거든요. 엄한 꼴도 많이 당하고, 무시나 수모도 많이 당했어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아주 처절한 현장이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어떻게 내가 여기에서 아직도 잘 버티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어요. 같이 물들거나 아니면 지키다가 못 지켜서 떨어져 나가거나 하는데 저는 무명이란 세월을 잘 지켜온 것 같아요. 어려웠던 시기에 저한테 좋은 말을 했든 안 좋은 말을 했든 그 사람들과 지금까지 다 좋거든요. 다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말들이 지금의 김명민을 만든 것 같아요. 사람 관계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인생에서 이 사람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 현장 스태프 이름을 다 외우신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일까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막내 스태프가 십 년 정도 후에 감독이 돼서 작품에서 만났어요. 인사를 하더라고요. 요즘은 많이 개선이 됐는데 처우가 힘들잖아요. 박봉에다가 며칠 하다가 바뀌고 그런 막내 스태프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감독이 말하길) 그때가 딱 힘든 시기였대요. 그때 제가  이름을 부른 거예요. 그래서 힘을 내서 ‘나도 이 현장에 필요한 사람인가 보다, 주연배우 형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는 거예요.

너무 감동적인 스토리라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롬곡(눈물을 뒤집어 놓은 듯한 단어)이라고 하죠. 처음에는 ‘어이, 거기, 저기’ 하기 그래서 나 편하자고 외우기 시작한 건데 이제는 이름을 외워야겠다. 지금은 리스트를 받아서 막내부터 외워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큰 효과를 볼 수가 있어요. 우리 영화 시장의 일꾼들이잖아요.”

김명민이 연이어 힘든 작품을 소화하게된 이유를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크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 ‘조선명탐정3’ 개봉 후 인터뷰 당시 이제 액션을 살살해야겠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도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입이 방정이에요. 된통 당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 액션이에요. 시나리오 처음 볼 때는 잘 안 보여요. 처음에 책을 깨끗한 마음으로 읽거든요. 목욕을 싹 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읽는데 그러다가 책을 덮으면 그림이 딱 떠올라요. ‘괜찮다, 너무 재밌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그러면서 두 번째는 캐릭터랑 이것저것 보면서 읽는 거예요. ‘액션 너무 많은데 이거 어떻게 하지’하면서 막막한데 그때는 이미 늦은 거예요. 첫 느낌을 갖고 있고, 이미 빠졌기 때문에 해야 하는 거예요. ‘금시빠’(금방 시나리오 빠지는 사람의 줄임말로 김명민이 만든 신조어)도 아니고.

두 번째 읽을 때 (힘든 부분이) 보이는 순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또 해요. 내 운명인가, 업보인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근데 또 찍을 때는 힘들지만 나온 걸 보니까 뿌듯함도 있고요. 대역이 있긴 하지만 굉장히 많은 분량을 제가 했어요. 그게 잘 표현이 안 된 게 상당히 억울하긴 해요. 그래서 자막 처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그 점을 어필을 해주세요. 거의 다 직접 했는데, 초반 삼지창 들고 싸우는 부분을 롱테이크로 찍었거든요. 액션은 12초 정도만 해도 맛이 가거든요. 롱테이크는 1분이 넘어요. 한번 NG나면 끝이에요. 그 장면은 (김)인권과 제가 99% 소화했다고 말씀드립니다.”

김명민이 배우 생활의 마지막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씨네크루 키다리이엔티 제공>

-평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등산도 하고, 조깅도 해요. 쉴 때는 (체력을) 저축 해놔야 해요. 들어가면 세이브해놓은 체력을 다 까먹는 느낌이에요. 특히 이런 영화를 만나면 마이너스 통장까지 다 써야 하는 거예요. 쉴 때 다 세이브를 시켜놔야 해.”

- 과거 인터뷰를 통해서 ‘죽을 때까지 연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하셨어요. 마지막도 염두에 두고 계신 건지 궁금해요.
“배우는 로또와 같은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영화도 개봉하는 거 보면 대단하게 해온 것 같아요. 내가 가진 역량에 비해서 이렇게 해온 것도 대단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잘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불안함은 아닌데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뜻하지 않게 갑자기 어떤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잘 지키고 가겠지만요. 그냥 좋은 모습으로 김명민이라는 사람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을 때 떠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떠나기에는 배우 김명민이 출연한 11년 전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다시 사랑을 받고 있어요.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김명민이 주연한 MBC 드라마 ‘하얀거탑’이 지난 1월 리마스터 버전으로 재방송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니까요. 참 신기해요.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봐야 한다는 것은 민망했어요. 예전 작품을 다시 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 촬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모니터를 할 뿐 절대 못 봐요. 손발이 오글거려요. 이상한 증세가 막 생겨요. TV 보다가 예전에 했던 영화를 보면 화들짝 놀라서 돌려버릴 정도예요. 그럼에도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안판석 PD의 출중한 연출력이 있었기 때문에 리마스터링 돼서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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