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헌법엔 계급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수저계급론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도 ‘주식 금수저’는 꼼수 승계와 같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식 금수저’ 실태를 <시사위크>가 낱낱이 파헤친다.

 

엘비세미콘의 ‘주식금수저’는 방탄소년단 테마주 효과를 쏠쏠히 봤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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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한국인은 단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다. 팝의 본고장 미국을 집어삼키는 등 세계 각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발표한 신곡도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돌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발적인 인기는 고스란히 수익으로 연결된다. 7명으로 이뤄진 방탄소년단의 연간 매출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향후 더욱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중소기업을 넘어 어지간한 중견기업에 가까운 규모다.

이러한 행보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시 주식시장이다. 다만, 방탄소년단의 기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아직 상장하지 않은 상태다. 대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관계된 몇몇 상장사들이 ‘방탄소년단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들썩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코스닥 상장사 엘비세미콘이다.

엘비세미콘의 주가는 2015년말 까지 만해도 2,000원에 미치지 못했고, 지난 5월엔 2,000원대 초반을 오갔다. 그런데 5월 마지막 주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5월 30일 장중 한때 8,200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조정기를 맞아 4,000~5,000원대로 내려갔던 주가는 최근 다시 상승세를 보이며 6,000원대로 올라온 상태다.

이 같은 주가흐름은 엘비세미콘의 사업과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 엘비세미콘 역시 주가급등에 따른 조회공시요구에 대해 “별도의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방탄소년단의 행보와 일치한다. 방탄소년단이 한국가수 최초로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했을 무렵 엘비세미콘 주가가 고점을 찍었다. 최근 주가 상승 역시 방탄소년단의 두 번째 빌보드 1위에 등극에 맞춰 나타났다.

엘비세미콘이 ‘방탄소년단 테마주’로 분류되는 이유는 비상장계열사 엘비인베스트먼트 때문이다. 엘비인베스트먼트는 마찬가지로 비상장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 주식을 살 수 없는 빅히트 엔터테민턴트나 엘비인테스트먼트를 대신해 엘비세미콘의 주가가 뛰고 있는 것이다.

◇ “증여세 못내” 소송 패소까지

엘비세미콘은 구본천 엘비인베스트먼트 대표 일가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구본천 대표와 친인척이 소유 중인 비상장사 (주)엘비가 엘비세미콘의 최대주주다. (주)엘비는 구본천 대표 및 특수관계인들을 포함해 총 38.81%의 엘비세미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구본천 대표는 엘비세미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 구본천 대표의 동생 구본완 엘비휴넷 대표 역시 엘비세미콘 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구본천 회장은 LG그룹 일가다.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넷째 아들인 구자두 엘비인베스트먼트 회장이 그의 아버지고, 지난 5월 별세한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과는 사촌관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사위로도 알려져 있다.

엘비인베스트먼트 역시 지금은 LG그룹으로부터 완전한 계열분리가 이뤄졌으나, 뿌리는 1996년 설립된 LG그룹 계열의 LG창업투자에 두고 있다. LG그룹과의 관계도 여전히 돈독하다. 심각한 경영위기에 놓여있었던 엘비세미콘은 구본천 사장이 인수한 뒤 LG디스플레이와의 거래를 밑거름 삼아 재기에 성공했다. 또 지난해에는 LG그룹 자회사 루셈을 엘비세미콘이 인수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따른 엘비세미콘 주가 상승으로 범LG가 4세 ‘주식금수저’들이 웃고 있다는 것이다.

엘비세미콘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엔 미성년자도 3명 포함돼있다. 구본천 대표의 막내아들 A군, 구본완 대표의 아들 B군과 딸 C양 등이다. A군은 2001년생, B군은 2003년생, C양은 2012년생이다. 이들은 새롭게 LG그룹을 이끌게 된 구광모 회장과 먼 사촌관계라 할 수 있다.

A군은 현재 엘비세미콘 주식 99만4,595주를 보유 중인데, 이를 최근 주가로 환산하면 60억원이 넘는다. B군도 약 47억원에 해당하는 76만1,546주의 주식을 보유 중이고, 가장 어린 C양 역시 2억8,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갖고 있다.

A군과 B군은 방탄소년단 효과를 실제 이익으로 실현했다. 엘비세미콘 주가가 최고점으로 오른 지난 5월말~6월초, 일부 주식을 장내매도한 것이다. A군은 69만7,200주를 팔아 47억원의 현금을 확보했고, B군은 79만주를 팔아 53억원을 현금화했다.

A군과 B군은 엘비세미콘이 상장하기 전부터 주식을 보유 중이었다. 또한 상장 이후인 2012년 할머니로부터 증여를 받아 보유 주식을 늘렸다. C양이 주식을 취득한 것도 이때다. 이제는 성인이 된 A군의 두 누나, 즉 구본천 대표의 두 딸도 미성년자 시절부터 수십억대 주식을 보유한 바 있다.

구본천 대표는 어린 자녀들의 주식과 관련해 정부당국과 소송전도 불사했다. 세무당국이 2014년 A군과 B군, 그리고 A군의 두 누나의 엘비세미콘 주식에 대해 10억원 상당의 증여세를 부과하자 이를 낼 수 없다며 행정소송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어린 아이들이 수억대 주식 취득 자금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진지 3년 만에 이들은 증여세를 한참 뛰어넘는 막대한 차익을 보게 됐다. ‘주식금수저’가 지닌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이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안겨준 게 방탄소년단의 성공이란 점이다. 방탄소년단은 소위 3대 메이저 엔터테인먼트 회사 소속이 아님에도 큰 성공을 거두며 ‘흙수저 아이돌’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쏟아 부은 치열한 노력이 지금의 성공으로 이어진 진정한 ‘자수성가’ 사례다. 그런데 이 같은 ‘흙수저 아이돌’ 덕분에 재벌가 4세 ‘주식금수저’들이 수십억대 이득을 봤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씁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B군의 아버지인 구본완 대표가 이끄는 엘비휴넷은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남긴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을 일으킨 곳이다. 우리 사회의 ‘수저계급론’이 또 다시 민낯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처럼 엘비세미콘의 ‘주식금수저’ 실태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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