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이 베일을 벗었다. <쇼박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현실은 때론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15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인 살인범이 사건 발생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추가 살인을 자백하고, 아무도 믿지 않는 이 자백을 토대로 한 형사가 진실을 파헤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이 베일을 벗었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단골 소재 형사물이지만, ‘암수살인’은 뭔가 다르다. 한국 범죄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 주의)

◇ 시놉시스

“일곱, 총 일곱 명입니다. 제가 죽인 사람들예.”

수감된 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는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에게 추가 살인을 자백한다. 형사의 직감으로 자백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된 형민은 태오가 적어준 7개의 살인 리스트를 믿고 수사에 들어간다.

“이거 못 믿으면 수사 못한다. 일단 무조건 믿고, 끝까지 의심하자.”

태오의 추가 살인은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암수사건. 형민은 태오가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뒤섞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가오는 공소시효와 부족한 증거로 인해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되는데…

‘암수살인’은 색다른 소재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쇼박스 제공>

▲ 신선한 소재·실화의 힘 ‘UP’

‘암수살인’은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범과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실화극이다. 부산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2012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에피소드)로 한 ‘암수살인’은 감옥 안의 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살인범의 자백을 유일하게 믿고 사건의 실체를 쫓는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의 치열한 심리전을 그린다.

암수살인이란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일컫는 단어로 한국 영화에서는 이번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처음 다뤄지는 소재다. 신선한 소재와 실화가 주는 힘은 그 어떤 영화적 장치보다도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의문이 들법한 드라마틱한 실제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흥미를 자극하며 순식간에 극에 빠지게 만든다. 보태지도 더하지도 않는 깔끔한 전개가 ‘실화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암수살인’에서 형사 김형민으로 분한 김윤석 스틸컷. <쇼박스 제공>

피도 눈물도 없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고 베테랑 형사가 사건을 파헤치는 범죄를 다뤘지만, ‘암수살인’은 착한 영화다. 살인 과정을 잔인하게 보여주거나, 잔혹한 범죄 현장을 그리지 않는다. 노골적인 피해자의 감정 과잉도 없다. 불필요한 욕설도 적다. 그동안 범죄 영화에서 숱하게 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이다.

‘암수살인’이 착한 수사극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착한 형사 김형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형민은 범인이 아닌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무기로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고, 온갖 장애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찾는다. 살인범의 혐의를 입증하려는 목표로 수사를 밀어붙이는 김형민의 뚝심과 인간미는 이 시대가 원하는 바람직한 형사의 모습을 제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암수살인’에서 연쇄살인마 강태오로 분한 주지훈 스틸컷. <쇼박스 제공>

김윤석과 주지훈의 열연도 ‘암수살인’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김윤석은 형사 김형민을 통해 한국 형사 캐릭터의 새로운 장을 연다. 큰 액션이나 고함 없이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주지훈은 흔한 연쇄살인 소재 영화의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닌, 실제에 대한 감정조차 불가능해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희대의 살인범 강태오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 장르적 쾌감을 기대한다면 ‘DOWN’

현란한 액션, 숨 가쁜 추격전 등 장르적 쾌감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권선징악의 통쾌함도 덜하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개되던 스토리가 마지막에 다소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암수살인’에서 강렬한 시너지를 완성한 김윤석(왼쪽)과 주지훈 스틸컷. <쇼박스 제공>

◇ 총평

범죄 영화도 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그렇다고 장르적 재미가 반감된 것은 아니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묘사 없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용광로처럼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는 에너지는 아니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느리게 나아가는 김형민 형사의 모습은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깊은 울림을 전한다. 김윤석은 역시 김윤석이었고, 주지훈의 새로운 얼굴은 반갑지만 섬뜩했다. 오는 10월 3일 개봉. 러닝타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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