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은 1만여 건이었다. 20대 국회 전반기가 지난 지금, 계류된 법안만 벌써 1만 건이다. 국회의원들은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해당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또 새로운 법안을 내고 잊어버리기 일쑤다. 발의건수를 훨씬 밑도는 법안 처리율을 보면 이번 국회에서 폐기될 법안 건수가 또다시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 이대로 괜찮을까. <편집자 주>

 

데이트폭력이 사회문제로 인식된 지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관련 처벌 법안은 여전히 국회 상임위원회 책상 아래에서 잠자고 있다. 사진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 전경. <뉴시스>

[시사위크=최영훈 기자] 국회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데이트폭력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데이트폭력이 사회문제로 인식된 지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관련 처벌 법안은 여전히 국회 상임위원회 책상 아래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미투 운동(me too·‘나도 성폭력을 당했다’면서 고발하는 운동)까지 사회문제로 번지면서 여야 의원들은 너 나할 것 없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또한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모두 149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데이트폭력범죄 처벌과 관련한 법안은 모두 5건이다. 여기에 여성폭력방지기본법까지 포함하면 모두 6건에 달하는 법안이 발의만 된 상태다.

문제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만 14일,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점이다. 나머지 데이트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법안은 모두 여가위에 계류돼 있다. 앞서 19대 국회에서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데이트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대표발의 했지만 이 또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국회 상임위원회 책상에 잠들다 폐기된 스토킹 관련 법안 리스트. 15대 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현황. <그래픽=이선민 기자>

◇ 국회, 스토킹·데이트 폭력 ‘무관심’

데이트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법안은 지난 1999년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 최초다. 당시 스토킹이 사회적 문제였지만 관련 법 규정이 없어 국회에서 스토킹 범죄 처벌에 대한 특례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5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16~19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처벌에 대한 법안(표 참조)은 꾸준히 발의됐지만, 철회하거나 임기만료 폐기로 모두 공중으로 흩어졌다. 20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이 모두 5건에 달하지만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결국 1999년 이후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이 사회문제로 늘 이슈화 됐지만, 결국 그 때 뿐이었다. 사실상 국회가 20년 가까이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에 무관심하게 반응했던 셈이다.

◇ ‘주취감형’ 비판은 많지만 대안 오리무중

‘주취감형’ 또한 해결해야 할 법안으로 떠오른 지 벌써 9년째다. 주취감형은 ‘술에 취해서 변별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형량을 줄여주는 법 조항이다. 현행 형법 10조에는 술을 많이 마셔 심신상실이나 심신장애에 해당하면 그 행위를 처벌하더라도 형은 줄여준다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감형한다는 것이 국민 법감정에 반한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주취감형 폐지 논의가 시작됐고, 14일 기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135건에 달하는 폐지 청원이 올라와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일, 삼육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조사한 ‘음주문화 특성분석 및 주류접근성 개선’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응답한 시민 3,015명 가운데 96.2%가 주취감형 폐지를 주장했다

이에 발 맞춰 국회도 주취감형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 발의에 나섰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은 지난 7월 ‘주취감형’ 폐지와 함께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2배까지 추가 가중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도 주취감형 폐지와 관련한 형법 개정안은 모두 7건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우리나라 법 3대 원칙 중 하나인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고, 강압적인 환경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술이나 약물을 마시는 등 비자발적인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일괄적으로 '음주 감형'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법안 개정은 쉽지 않은 상태다.

이외에도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주취감형’ 폐지가 골자인 형법 개정안을 비롯해  모두 1,050건(14일 기준)에 달하는 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1,000여건에 달하는 법률안이 법사위에 계류중인 이유는 주취감형 폐지와 같이 법률상 논란이 돼 처리가 어려운 상태도 있지만, 여야간 정치적 입장차로 계류 중인 것도 다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