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은 1만여 건이었다. 20대 국회 전반기가 지난 지금, 계류된 법안만 벌써 1만 건이다. 국회의원들은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해당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또 새로운 법안을 내고 잊어버리기 일쑤다. 발의건수를 훨씬 밑도는 법안 처리율을 보면 이번 국회에서 폐기될 법안 건수가 또다시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 이대로 괜찮을까. <편집자 주>

 

고 노회찬 의원의 사건으로 국회 내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뉴시스>
고 노회찬 의원의 사건으로 국회 내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국회가 지구당 시스템 부활과 정치 후원금 제도 개선작업에 나섰다. 원외정치인들의 정치활동 편의를 제공하고 자유로운 후원금 모금의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에서다. 고 노회찬 의원의 사건이 직접적인 논의 계기가 됐다.

◇ ‘형평성’과 ‘공정’ 내세우며 발의

지난 3일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치자금법 일부개정안’을 살펴보면, 구·시·군당도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각 정당의 당헌당규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소속당원이 납부한 당비의 일정 비율을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원외 지역위원장 혹은 당협위원장도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구·시·군 단위에 당별로 ‘사무소’를 두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현행법상 정당은 중앙당과 시도당을 두고, 자치구 등에는 당원협의회를 두되 사무소는 둘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개정하자는 얘기다.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2016년 8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당법 일부개정안’을 제출했으며, 현재 위원회 심사 중인 상태다.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은 형평성 차원에서 꾸준히 논의됐던 내용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후원계좌를 통한 정치자금 모금은 물론이고, 지역구 사무소 운영도 가능하다. 후원금 모금도 어렵고 사무소도 없는 원외 인사들은 조직과 자금에서 항상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전당대회 때마다 후보들은 원외 위원장들의 표심을 잡기위해 너도나도 지구당 부활과 후원금 모금을 공약했다.

정치개혁 관련 주요 개정안 발의내용과 처리 현황 <국회의안정보>

국회에 발의된 법안도 적지 않다. 19대 국회에서는 조해진 의원, 함진규 의원, 이원욱 의원 등이 비슷한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냈고, 중앙선관위도 같은 취지에서 개정 제안을 할 정도로 공감대가 있었다. 17대와 18대 국회 때도 마찬가지다. 원외시절 드루킹과 경공모로부터 후원금 4,000여 만원을 받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던 노회찬 의원에 대해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진영 인사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던 이유다.

◇ 발의 후 임기만료 폐기만 3대 째

하지만 목소리만 높았을 뿐 실제 개정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역 국회의원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지역 내 만만치 않은 경쟁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심 반대하는 의원이 적지 않았다. 한 전직의원은 사석에서 “원내외를 모두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경쟁력에 천양지차가 있다”며 “자기에게 마이너스임을 알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원은 얼마나 있겠느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소위원회로 내려가면 기득권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고 했다.

정치제도 관련해서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선거구 조정과 선거제도 개편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18대 국회 당시, 선거구획정 문제가 불거지자 여야는 막판까지 줄다리기 끝에 299석이던 의석을 한 석 늘리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현역의원들이 기득권 사수에 나선 결과였다.

19대 국회에서는 아예 헌법재판소가 선거구획정 기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기득권을 깨지는 못했다. 국회는 헌재가 지정한 개정 시한을 훨씬 넘길 때까지 반목만 거듭하다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지역별 선거구획정은 국민들의 편의성 보다 현역의원들과 유력인사들의 땅따먹기 대상이 됐다.

당시 정개특위에 몸담았던 한 정치인은 “참석했던 의원들 거의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지역구를 오롯이 보존할까에 관심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정개특위 실무에 참여했던 한 보좌관은 “처음부터 정개특위 내에서 합의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욕은 덜 먹으면서 현행유지를 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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