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 마련된 수유실 중 36.9%는 아빠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사용된 이미지 출처:프리픽(Freepik)]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지난 주말 ‘생후 100일’을 돌파한 제 딸에게 지난 주말은 또 한 번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보고, 백화점 및 대형쇼핑몰도 처음 다녀왔답니다.

막상 길을 나서보니 진땀이 줄줄 났습니다. 매일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지하철이지만, 유모차를 대동한 채 아기띠를 메고 타는 건 달랐습니다.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더군요. 문득 엄마들이 유모차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던 것이나, 장애인들이 마찬가지로 이동권 보장을 부르짖던 게 떠올랐습니다. 늘 그렇듯, 직접 겪을 때가 돼서야 실감하게 됐죠.

어려운 것은 이동만이 아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객실에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면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처음 보는 장소와 사람들, 시끄러운 소음,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 등 아이 입장에선 온통 낯설고 두려운 것뿐이었겠죠. 지하철 이동이 짧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 뻔했습니다.

생애 첫 백화점 나들이에 눈이 휘둥그레진 딸아입니다.

출퇴근시간이 아닌 낮시간대와 주말만이라도 유아동반칸을 운영하면 어떨까요? 유모차나 짐을 두기 편하고, 아이와 앉기 편하도록 객실을 구성하는 겁니다. 방음을 보강하고, 아이들의 흥미를 끌 캐릭터나 영상을 배치한다면 더욱 좋겠죠. ‘초보아빠’로서 직접 느낀 작은 소망입니다.

오늘의 본격적인 주제는 그 다음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 및 대형쇼핑몰 도착하자 아이는 한결 괜찮아졌습니다. 반짝반짝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많아서인지, 내내 두리번거리더군요. 그 틈에 아내와 함께 간단한 식사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조촐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 처음으로 한 세 가족만의 외식이었답니다.

그러다 아이의 기저귀를 교체하기 위해 수유실을 찾았습니다. 저희가 찾은 백화점은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이뤄져있었는데 수유실은 3층에 한 군데 마련돼 있었습니다. 기저귀를 교체하기 위해선 이곳 또는 화장실에 마련된 간이 기저귀 교환대를 이용해야 했죠.

그런데 수유실엔 ‘남성 출입금지’ 안내가 떡하니 붙어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아이만 들여보내고 기다리는 내내 물음표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기저귀를 교체해야 하거나 분유를 먹어야 하는 상황도 충분히 있을 텐데? 나중에 혼자 아이를 데려오게 되면 어쩌지?

떠오르는 이유는 모유수유 딱 한가지였습니다. 모유수유를 하는데 다른 남성이 불쑥 들어오면 당연히 안 되겠죠. 하지만 모유수유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두면 되지 않을까요? 별도의 방이나 칸막이, 최소한 커튼 정도만 있어도 될 텐데요.

수유실 앞에 붙은 남성 출입금지 안내가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17일, 보건복지부는 수유실에 대한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제가 느낀 의문이나 불편함이 역시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봅니다. 실제로 수유실을 둘러싼 민원이나 논란이 적지 않았더군요. 이 또한 현실로 다가와서야 실감하게 됩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3,259개 수유실 중 36.9%에 해당하는 1,202개의 수유실이 아빠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애초에 아빠들의 출입이 없는 시설의 수유실도 적지 않을 테니, 실제 체감도는 더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엄마들은 아빠들의 수유실 출입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만 육아를 책임지라는 것이냐”는 여성들의 반발도 적지 않더군요. 또한 육아휴직을 내고 육아를 분담 중인 남성들이 수유실 출입금지로 인해 겪는 불편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수유실에 아빠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공동육아와 거리가 멉니다.

어쩌면 ‘수유실=엄마(여성)를 위한 시설’이란 인식이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사회의 육아는 ‘엄마(여성) 전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할 때가 왔습니다.

저는 우선 수유실이라는 용어부터 바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수유실과 함께 기저귀교환대는 최소한 배치하도록 하고, 아빠와 엄마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육아실’, ‘육아휴게실’, ‘육아편의실’ 등으로 부르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아울러 모유수유를 위한 공간은 반드시 분리·독립되도록 해야 합니다. 좀 더 여유가 있는 곳이라면 엄마육아실과 아빠육아실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실제 일부 육아박람회에선 ‘아빠수유실’이 별도로 설치돼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합니다.

수유실 이용문화도 조금 더 좋아져야겠습니다. 수유실을 이용한 뒤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휴식시설까지 완비해놓은 수유실을 점거하는 등의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하네요.

머지않아 당당하게 수유실을 이용하고 후기를 전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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