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인성이 영화 ‘안시성’(감독 김광식)을 통해 연기 변신에 도전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강력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기보다 소탈한 인간미로 마음을 흔든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낮은 곳에 서서 따뜻한 정을 나누고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배우 조인성이 그려낸 리더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조인성이 영화 ‘안시성’(감독 김광식)에서 안시성을 지키는 성주 양만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안시성’은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로 전해지는 88일간의 안시성 전투를 그린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다. 양만춘 장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동안 스크린에서 깊게 조명하지 않았던 고구려 시대를 담아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에서 조인성은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성민들과 함께하는 양만춘을 연기하며 이 시대가 바라는 새로운 리더상을 구현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극에서 봐왔던 장군의 모습이 아닌 색다르고 젊은, 매력적인 리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우려도 있었다. 그동안 다수의 현대극과 멜로 장르에서 활약했던 조인성이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었다.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외모도 사극에서는 걸림돌이었다.

조인성이 ‘안시성’ 출연을 고심했다고 밝혔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조인성은 영화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나 이러한 점을 이유로 ‘안시성’ 출연을 고심했다고 밝혔다.

“사실 양만춘과 제가 어울릴까라는 궁금증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 편견에서부터 시나리오를 봤으니까요. 처음에는 ‘말도 안 돼.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라고 생각했어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서 두 번 정도 거절했던 과정도 있었고요. 전쟁신도 너무 많으니까 찍다가 죽자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또 제작비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면 더 부담스러워요.(‘안시성’ 총 제작비는 220억 원이다.) 그래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울리지 않는다는 명분을 잡아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번의 거절 끝에 조인성은 결국 ‘안시성’을 받아들였다. 실패를 하더라도 부딪혀보자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양만춘 )장군의 나이가 제 나이 때라고 하더라고요. 새롭고 젊은 사극을 만들어보자는 기획 의도가 확실히 있었기 때문에 재벌집 아들 역할만 하다가 끝내는 것보다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복제를 하면서 연기생활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똑같은 불안함을 갖고 있다면 (도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갖게 됐죠.”  

하지만 중압감은 컸다. 많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했지만 주인공 조인성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그는 “여러 가지 중압감 속에서 진행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오늘 하루만 신경 쓰면서 살자고 위로하면서 견뎌냈다”고 밝혔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2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안시성’에 대해 언론들은 호평 일색이다. 배우들의 열연과 실감 나는 전투 장면, 잊힌 역사 속 위대한 승리 등이 관객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조인성도 한숨은 돌렸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영화를 끝내고 느낀 것은 ‘살았다’였어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았다, 살았다’ 정도의 느낌. 감사하게도 호평을 해주시니까 일단 큰 산을 하나 넘은 것 같은데 최종적인 큰 토산이 남아 있잖아요. 관객과의 만남이 남아있어요. 2차 전투까지는 괜찮게 끝난 것 같은데 마지막 큰 토산이 남았습니다.”

조인성이 연기한 양만춘은 새로웠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조인성이 연기한 양만춘은 확실히 새로웠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하고 센, 강렬한 카리스마가 아닌 소탈하고 따뜻한 매력으로 카리스마의 정의를 다시 썼다. 전형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조인성만이 할 수 있는 양만춘이 탄생된 셈이다.

“전형성에서 탈피하고 싶은 제작 의도가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제가 그 캐릭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죠. 다른 사극처럼 묵직하고 서사가 더 강한 작품이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됐겠지만, 액션에 중점을 둔 사극이다 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렸던 것 같아요.

카리스마가 사전적 의미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신께서 주신 특별한 능력’을 카리스마라고 하더라고요. 힘, 강함, 센 것을 카리스마라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예라고 사전에 나와 있고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특별한 능력이 있었겠죠. 빠른 판단력과 전술, 전략을 짤 수 있는 능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캐릭터 그대로의 모습이 카리스마이지 않느냐는 거죠. 성민들과 공감하고 형제처럼 지낼 수 있는 것도 카리스마이지 않을까요. 신께서 주신.”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변신을 꾀한 조인성의 ‘안시성’ 스틸컷. < NEW 제공>

‘잘생김의 대명사’ 조인성은 이번 영화에서 긴 머리와 얼굴에 흑칠을 하고 등장한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수염 분장과 주근깨까지 그려 넣었다. 그의 ‘잘생김’을 모두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노력은 가상했다.

“(정)우성 형이 그랬거든요. 잘생긴 게 최고라고.(웃음) 사실 잘생긴 건 큰 매력이죠. 근데 여러 가지 다른 매력으로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나요? 어떤 특정한 모습이 괜찮을 때 그 사람이 잘생겨 보이잖아요. 그래서 (잘생김을 내려놓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고, 임무를 잘 수행해서 캐릭터가 잘 쌓이고 결과물로 보인다면 그 모습이 잘 생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매력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2차 전쟁에서 열심히 싸울 때 제가 잘생겨 보이던데요. 사실 이제 잘생긴 건 (남)주혁(사물 역)이가 가져가는 게 맞아요.” 

1998년 한 의류 브랜드 광고 모델로 데뷔한 조인성은 2000년 KBS 2TV 청소년 드라마 ‘학교3’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방송된 MBC 시트콤 ‘논스톱 2-뉴 논스톱’으로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드라마 ‘피아노’(2001~2002), ‘별을 쏘다’(2002~2003), ‘발리에서 생긴 일’(2004), ‘봄날’(2005),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괜찮아 사랑이야(2014)’, ‘디어 마이 프렌즈’(2016) 등과 영화 ‘클래식’(2003), ‘비열한 거리’(2006), ‘쌍화점’(2008), ‘더 킹’(2016)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어느덧 데뷔 20년 차가 된 배우 조인성은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지만,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똑같은 표정과 말투, 자신의 비슷한 연기를 보며 지쳐갈 때쯤 ‘안시성’을 만나 도전을 택하게 됐다.

조인성이 ‘안시성’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이 작품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장르 전환을 해봤던 거예요. 드라마를 통해서 멜로를 많이 했잖아요. 한도 초과가 왔어요. 자기 복제를 하게 된 거죠. 똑같은 표정이 많이 나오면서 제가 제 연기가 지루하게 보이고, 스트레스가 많아지더라고요. ‘장르를 바꿔보자, 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금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선택한 결과예요.”

그런 의미에서 ‘안시성’은 조인성에게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조인성은 추석 극장가 대전에서 한국 영화의 선전을 기원하면서도 ‘안시성’을 향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안시성’을 꼭 지켜내겠다는 강한 의지도 내비쳤다. 안시성을 지켜낸 양만춘처럼.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물괴’에 이어 영화 ‘협상’, ‘안시성’, ‘명당’ 등이 ‘안시성’과 같은 날인 19일 개봉했다.)

“영화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요. 다 각자 영화에 대한 자부심들이 있겠죠. 쉬운 상대는 아니잖아요. 추석 시장에 들어온다는 건 자신이 있기 때문에 들어온 것일 테니 그런 부분에서  공통된 마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시성을 지키는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겠느냐, 내가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한걸(‘안시성’ 양만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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