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기 쉽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각종 공익단체나 활동가들은 늘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와 공익의 맹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와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에선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시사위크>가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마켓인유는 중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좋은 소비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는 사회적기업이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고층빌딩이 늘어선 서울 학동역 6번 출구 근처엔 재미있는 공간이 숨어있다. 팻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여느 백화점 매장 못지않은 세련된 옷가게를 만나게 된다. 사회적기업 자락당이 운영 중인 마켓인유 학동역점이다.

잘 꾸며진 매장엔 화려한 여성원피스부터 초가을에 입기 딱 좋은 남성셔츠, 유행에 뒤지지 않는 모자와 신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류 및 잡화들이 종류별로 전시돼있다. ‘직원들이 살까말까 고민 중인 옷’, ‘미리보는 가을! 가을 가을해~’ 등 재치 있는 소개팻말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옷이 딱 한 벌 뿐이라는 것. 모두 누군가와 함께하다 이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켓인유는 서울대학교 학내에서 시작된 ‘세컨핸드샵’이다. 조금 더 익숙한 말로 소개하자면 ‘중고의류매장’이다. 서울대학교 내에 있는 매장 외에도 망원동에 매장을 운영 중이며, 이곳 학동역점은 가장 최근 새로 문을 열었다.

마켓인유는 백화점이나 셀렉트샵 못지않게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이 역시 중고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한다. <시사위크>

마켓인유의 사업구조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중고의류를 매입해 판매한다. 다만 헌옷더미에서 보물찾기를 해야 하고, 사라진 단추나 약간의 얼룩 등은 감수해야 하는 일반적인 ‘구제가게’와는 다르다. 철저한 검수를 통해 퀄리티 높은 옷만 매입하고, 판매한다.

그렇다고 비싼 옷만 매입해 파는 것은 아니다. 계절에 맞고 너무 오래되지 않으면서, 오염이나 훼손 등이 없는 옷을 엄선한다. 따라서 마켓인유 매장에 걸린 옷들은 하나 같이 멀쩡하다. 새 옷이나 다름없는 옷들도 있다. 또한 유명한 브랜드의 옷이나 ‘명품’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대신 가격은 새 옷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물론 ‘동묘 앞’에서처럼 “골라잡아 천원”은 아니다.

일반 고객들도 회원가입만 하면 자신의 의류나 잡화를 마켓인유에 파는 것이 가능하다. 단, 이 역시 매입기간과 검수가 까다롭게 진행된다. 오는 22일부터(오프라인은 10월 1일부터)는 겨울의류만(매입 기준은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확인 가능) 매입하는 식이다. 검수를 통과하면 매겨진 매입가격만큼 포인트가 쌓여 마켓인유 매장에서 쓸 수 있다. 검수를 통과하지 못했을 땐 다시 회수해가거나 장애인을 위한 기증품 매장인 ‘굿윌스토어’에 기부할 수 있다.

마켓인유를 찾은 한 남성이 자신의 의류를 매입 의뢰하고 있다. <시사위크>

매장에서 만난 지후석 팀장은 “중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좋은 소비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라고 설명했다. 매장을 가능한 세련되게 꾸며놓은 이유도 중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물론 사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후석 팀장은 “외국의 경우 세컨핸드 문화가 많이 활성화돼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렇지 않은 편이다. 또한 검수를 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주관적인 요소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검수에 통과하지 못해 항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요즘 날씨 역시 마켓인유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보통 여름옷은 초여름에 구입하고, 겨울옷은 늦가을에 구입한다. 마켓인유 역시 이에 맞춰 매입을 진행하고, 판매도 한다. 그런데 요즘엔 봄과 가을이 무척 짧아졌을 뿐 아니라, 날씨를 예상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매입과 판매의 균형 역시 중요하다. 마켓인유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으로 매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루 평균 200~300점의 의류가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매입만 많아질 경우 그에 따른 비용 및 공간 문제가 발생한다. 매입과 판매가 원활하게 돌아가며 선순환구조를 이뤄야 사업 또한 원만히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세컨핸드 문화가 자리 잡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마켓인유는 검수를 무척 꼼꼼하고 깐깐하게 진행한다. 때문에 판매하는 옷들의 퀄리티도 준수하다. <시사위크>

전망은 밝은 편이다. 지금까지 가입한 회원 수가 1만 명에 달하고, 재방문율이 높다. 특히 자주 이용하는 회원들의 경우 마켓인유가 추구하는 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어 검수를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그만큼 적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도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는 마켓인유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자생력이다. 과거엔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매장을 운영해보기도 했고, 온라인샵도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료가 저렴한 곳은 손님이 없었고, 온라인샵은 단 한 벌 뿐인 세컨핸드 제품 특성상 마진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생활가전 등을 취급하지 않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아울러 학동역점을 오픈하고, 다른 방식의 온라인샵(마켓인유 포인트로 다른 사회적기업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을 준비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금은 오프라인 매장을 5개까지 확장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고 한다.

지후석 팀장은 “사회적기업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좋은 의미’에만 몰두하면 안 된다. 수익화구조를 어떻게 구축하고 유지할지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것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의미라 해도 오래 갈 수 없다. 그렇게 사회적기업이 하나 없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타격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해 만들어진 대안 하나가 그대로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다가오는 겨울을 맞아 마켓인유를 통해 ‘겨울옷 장만’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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