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추석 극장가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가 있다. 바로 매력 넘치는 여성 캐릭터들의 대결이다. 일차원적으로 소비되는 ‘도구’가 아닌, 스토리에 직접 개입해서 활약하는 ‘주역’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 ‘협상’ 하채윤

먼저 ‘협상’(감독 이종석)은 추석 극장가 중 유일하게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협상’은 태국에서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제한시간 내 인질범 민태구(현빈 분)를 멈추기 위해 위기 협상가 하채윤(손예진 분)이 협상을 시작하는 범죄 오락물.

극중 하채윤은 서울지방경찰청 위기 협상팀 소속 협상가다. 어떤 긴박한 상황 속에도 침착하고 냉철한 태도로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해내는 인물이다. 인질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능동적인 캐릭터로 극을 이끈다. 그동안 다수의 범죄 오락물에서 성(性)적, 범죄의 도구로만 소비됐던 여성 캐릭터들과 달리 ‘협상’은 하채윤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체적 인물로 그려내 호평을 받고 있다.

하채윤은 배우 손예진을 만나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됐다. 청순한 매력을 벗고 냉철함과 카리스마를 입은 손예진은 눈빛만으로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전달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손예진의 ‘협상’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 ‘안시성’ 백하·시미

‘안시성’(감독 김광식)에 등장하는 백하(김설현 분)와 시미(정은채 분)도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캐릭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먼저 백하는 쇠뇌(삼국시대 활에 기계장치를 연결해 화살을 쏘는 무기)를 다루는 여성 군인들로만 구성된 조직 백하 부대를 이끄는 리더로 활약한다. 민첩하고 후방에서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적들을 교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백하는 안시성주 양만춘(조인성 분)에게 충성을 다하면서도 소신은 버리지 않는 진취적인 인물로 새로운 여장군 캐릭터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백하를 연기한 가수 겸 배우 김설현은 “백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누가 뭐라 해도 자기만의 길을 가는 당찬 매력이 있어 매력적이다”라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구려의 미래를 내다보는 신녀 시미는 백하와는 전혀 다른 결로 매력을 발산한다. 전쟁에 나서 싸우는 액션보다는 카리스마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낸다. 특히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킨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 분) 앞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고구려인의 기개를 느끼게 만든다.

◇ ‘물괴’ 명·‘명당’ 초선

‘물괴’(감독 허종호) 명(이혜리 분)도 빼놓을 수 없다. 중종 22년 역병을 품은 괴이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공포에 휩싸인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 ‘물괴’에서 명은 수색대장 윤겸(김명민 분)의 외동딸로 수색대에 합류해 누구보다 먼저 물괴를 찾아 나서는 당찬 인물이다. 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가 하면, 위기의 순간에도 물러서지 않는 진취적인 캐릭터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명당’(감독 박희곤) 초선(문채원 분)도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양 최고 기방 월영각의 대방 초선은 수려한 기품이 배어나는 자태와 담대한 기개를 가진 인물이다. 명당을 차지하려는 세도가 장동 김씨 일가와 몰락한 왕족 흥선 사이에서 비밀을 품고 있는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단아한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도 문득 그 안에 감춘 속내를 궁금하게 만드는 초선은 인물들 사이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드는 캐릭터로 활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