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장수(長壽)’는 미덕이자 축복으로 꼽혔다. 하지만, ‘100세 시대’로 불리는 현대사회에선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은퇴로 인한 경제활동의 중단, 이에 따른 노후대책 부재,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론 등 또 다른 고민거리와 과제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예외없이 맞게 될 은퇴 그 후.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될 수 없는 걸까. ‘100세 시대’,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시사위크>가 고민해봤다. [편집자 주]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온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의 노후대책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픽사베이>

[시사위크=장민제 기자] 퇴직 후 ‘노후대책’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는 1990년 초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발표한 ‘노후생활에 관한 의식 및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전국 1,500명의 가장을 대상으로 설문·작성된 보고서에선 응답자의 84.7%가 노후생활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반면, ‘준비가 잘 돼 있다’고 한 이들은 5.1%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44.5%가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응답했고, ‘준비가 전혀 없다’는 대답은 31.3%에 달했다.

또 1991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정옥분 교수팀이 서울시 소재 기업체 1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선 전체 응답자의 약 75%가 ‘정년을 60세 이상(당시 정년은 55세)으로 올려야 한다’고 답했다.

경제활동 종료 후 원활한 노년기 생활을 걱정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후생활을 위협하는 요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 변화된 기대수명과 경제구조, ‘노후불안’ 가중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82.4세로 집계됐다. 1990년 71.7세에서 매년 상승, 26년 만에 10.7세가 증가한 것으로, 과거보다 노후생활도 길어진 셈이다.

그러나 1997년 IMF, 2008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고령자가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건 더욱 어려워졌다. 통계청이 지난해 55~64세 767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선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시점의 평균 연령’은 49.1세로 나타났다. 수명은 늘었지만 고용환경의 변화 탓에 주요 경제활동에서 물러날 시기가 더욱 빨라진 것이다.

물론 정부는 법정 정년기간을 60세로 연장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희망퇴직자 접수 등 기업들이 근로자를 합법 또는 편법으로 해고할 수 있는 수단은 충분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도 1990년 70.3세에서 2015년 81.3세로 점점 증가 중이다. <자료=통계청, 그래픽/이선민 기자>
[사용된 이미지 출처:프리픽(Freepik)]

◇ 높아진 국민연금 의존도… 좌충우돌 정부정책에 불안감도 가중

이른 퇴직은 기존 노후를 책임졌던 퇴직금의 감소를 뜻하기도 한다. 과거엔 오랜 기간 근무한 직장에서 물러나는 대가로 목돈을 손에 쥐었지만, 이젠 불가능해진 셈이다.

이에 국민연금이 주요 노후대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1988년 만들어진 국민연금제도는 납입기간 동안의 평균소득 대비 일정비율을 월 연금액으로 지급받는 걸 골자로 한다. 당초 70%로 설계된 명목소득 대체율은 수차례 수정을 거쳐 40%로 하락한 상황이지만, 물가변동률이 반영되고 수급연령부터 평생 받는다는 게 장점이다.

실제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노후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고령자 비율은 73.2%, 그 중 국민연금을 주요 수단으로 꼽은 이들은 57%에 달한다.

연구원 측은 ▲국민소득 상승 ▲제도 인식 제고 ▲여러가지 제도적 보완 등으로 국민연금 납부부담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국민연금만을 노후대책으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는 인식도 확산 중이다. 우선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 40%는 40년 가입을 조건으로 한다. 하지만 늦어지는 취업, 그리고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상황에 30년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건 힘들다. 현재 국민연금의 실질소득대체율은 2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월급이 4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월 수령액은 약 80만원인 셈이다.

또 정부정책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불안요소다. 특히 최근엔 현 정부가 국민연금의 가입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고, 연금지급 개시연령도 2033년 이후 68세로 상향하는 문제를 놓고 논의 중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불안감은 사적연금의 증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종신연금과 장기저축성보험 등이 포함된 개인연금 적립금은 2013년 말 245조원에서 지난해 6월 321조원으로 증가했다. 다만 사적연금에만 노후를 맡기는 것도 탐탁치는 않다.

한 국민연금 가입자는 “국민연금만 믿고 있기엔 불안하다”며 “사적연금을 따로 가입했지만, 집세나 양육비 부담에 계속 납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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