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Beauriful Days, 감독 윤재호)가 베일을 벗었다. /콘텐츠판다, 스마일이엔티 제공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Beauriful Days, 감독 윤재호)가 베일을 벗었다. /콘텐츠판다, 스마일이엔티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Beautiful Days, 감독 윤재호)가 베일을 벗었다. 단 한순간도 행복한 시절이 없었을 것 같은 한 탈북 여성의 처절한 생존기가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펼쳐진다. 생존을 위한 시간은 고통과 고난, 그리고 희생으로 가득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남는 것은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다. ‘뷰티풀 데이즈’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이 가슴 깊이 와 닿는 이유다.

중국의 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 분)은 병든 아버지(오광록 분)의 부탁으로 오래 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이나영 분)를 찾아 한국에 온다. 죽기 전 아내를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 14년 만에 만난 엄마의 모습은 기대와 달랐다. 술집에서 일하고 있고 건달처럼 보이는 한국 남자(서현우 분)와 같이 살고 있다. 게다가 젠첸에게 무심하기까지 하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향한 원망을 갖고 있던 젠첸은 더 큰 실망만 얻는다. 엄마의 직업을 이해할 수 없고, 엄마의 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충동적으로 엄마의 애인을 때리고 엄마에게는 욕설까지 내뱉는다. 하지만 엄마는 담담하다. 애인의 생명엔 지장이 없다는 소식을 전하며 병원에 함께 가자고 한다. 좋은 사람이니 모두 이해해줄 거라고.

젠첸은 안도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엄마는 그런 젠첸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젠첸은 어린 아이처럼 엄마 품에 안겨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낸다. 짧은 만남 후 중국으로 돌아간 젠첸은 엄마가 남긴 공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숨은 진실과 마주하며 엄마의 아픈 과거를 알게 되고 마침내 그를 이해하게 된다.

‘뷰티풀 데이즈’는 조선족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간 엄마와 그런 엄마를 미워하던 아들의 재회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나영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뷰티풀 데이즈’는 조선족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간 엄마와 그런 엄마를 미워하던 아들의 재회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나영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탈북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아픈 과거를 지닌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자와 14년 만에 그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그의 숨겨진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뷰티풀 데이즈’는 조선족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간 엄마와 그런 엄마를 미워하던 아들의 재회를 담담하게 그려내며 분단국가의 혼란과 상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묘사 없이도 탈북자의 고난과 고통을 담담하게 그려낸 점이 돋보인다.

젠첸이 엄마의 일기장을 펼치면서 2017년, 2003년, 1997년까지의 이야기가 역순으로 공개되는데, 영화는 젠첸의 시선을 통해 탈북 여성이 생존을 위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희생의 시간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단순히 피해자의 고난과 희생을 전시하는 방법은 아니다.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탈북민의 고단한 삶이 담담하고, 절제된 톤으로 표현돼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엄마의 삶은 ‘아름다운 시절’이 존재하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절하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나면 그들의 삶에 이제는 행복한 시절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만든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뷰티풀 데이즈’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이 와닿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뷰티풀 데이즈’에서 모자 호흡을 맞춘 이나영(왼쪽)과 장동윤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뷰티풀 데이즈’에서 모자 호흡을 맞춘 이나영(왼쪽)과 장동윤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나영은 변함없는 진가를 발휘한다. 금발 가발에 진한 메이크업, 파격 의상 등 외적 변신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음에도 삶에 지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간이자 여성으로 완전히 분해 깊은 감정 연기를 펼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고 안정적으로 표현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별다른 대사나 설명 없이도 이나영 특유의 건조한 표정과 공허한 눈빛은 탈북 여성의 고단한 삶을 전달하기에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다.

극중 유일하게 이름을 갖고 있는 젠첸 장동윤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전개 속 중심을 잡으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 연기와 혼란스러움과 분노, 충격과 후회 등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닮은 듯 비슷한 외모는 두 사람의 모자 ‘케미’에 힘을 보탠다.

‘뷰티풀 데이즈’는 단편과 다큐멘터리로 두각을 나타낸 윤재호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윤재호 감독은 단편 ‘히치 하이커’와 다큐멘터리 ‘마담B’ 두 작품으로 2016년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와 취리히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작품상, 2017년 우크라이나키에프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연출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윤 감독은 ‘뷰티풀 데이즈’를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그려낸 가족의 모습은 혈연의 굴레를 벗어난, 인간애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인생에 앞으로 펼쳐질 ‘뷰티풀 데이즈’를 암시하기도 한다. 오는 11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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