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영실 기자
인도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영실 기자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영상미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재치 있는 유머 코드에 유쾌한 웃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알 이즈 웰(All is well, 모두 잘 될 거야)’이라는 희망의 주문으로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교육·종교·미디어 등 현실 사회를 풍자하는 메시지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은 인도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세 얼간이’(2011) 감독으로 친숙하다. 명문대를 다니는 세 천재 공학도의 유쾌한 반란을 담은 ‘세 얼간이’는 물질만능주의, 성과주의 등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어내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영화 속 대사 ‘알 이즈 웰’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희망의 주문이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신작 ‘산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를 찾았다. ‘산주’는 발리우드 영화의 전설적 배우 산제이 더트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발리우드란 봄베이(Bombay, 1995년부터 뭄바이로 명칭 변경)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인도 영화 산업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산제이 더트는 슈퍼스타와 희대의 바람둥이에서 테러리스트로 엄청난 인생의 곡절을 겪었다. 영화는 전설적 배우의 성장과 영광, 그리고 몰락을 객관적으로 따라가며 관객들의 판단을 구한다. 뿐만 아니라 감독은 ‘가짜 뉴스’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미디어의 행태를 꼬집거나 풍자하며 관객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진다. 유머와 감동, 메시지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산주’다.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의 초청작 부문에 초청받은 ‘산주’ 외에도 데뷔작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2003) 등 총 두 편의 작품을 공개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영화제 참석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했지만 “여행 온 기분”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신작부터 데뷔작까지 두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
“축제 첫날부터 부산에 있었다. 행사의 화려함에 매우 놀랐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세 얼간이’를 많이 알고 있더라. 다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좋았다. 원래 내성적인 사람인데 이 행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행사는 하나지만 서너 개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부산에 첫 방문한 소감은.
“일로 출장 온 기분은 아니고 휴일에 여행 온다는 느낌으로 왔다. 부산에는 아름다운 해변들이 많고, 먹자골목에도 갔는데 인상적이었다. 굉장히 재밌었다. 다음에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 또 촬영하기에도 너무 좋은 도시다.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웃음).”

-‘산주’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실존 인물의 사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작을 하게 됐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나.
“캐릭터나 스토리를 연출할 때는 감정적인 마음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보통 영화를 시작할 때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1년은 집필을 하고 나머지 기간은 제작을 한다. 그러다 보면 공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주’에서는 산제이 더트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자간의 연결고리와 같은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전기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거다. 결말도 바꿀 수 없다. 각색은 할 수 있으나 스토리 자체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이 전기 영화를 만드는데 가장 큰 제약이었다.”

실존 인물인 산제이 더트를 연기한 란비르 카프르의 ‘산주’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실존 인물인 산제이 더트를 연기한 란비르 카프르의 ‘산주’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캐스팅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실제 인물인 산제이 더트는 생존해있고 현재도 활동을 하고 있다. 아주 유명한 배우의 대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적합한 배우를 찾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덜 알려진 배우여야 대신 연기하는데 애로사항이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란비르 카푸르를 캐스팅하게 됐는데 실제 산제이 더트의 외형을 닮게 하기 위해서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산제이 더트의 가장 최근 모습부터 젊은 시절로 역순으로 촬영을 진행했는데, 처음에 살을 찌운 다음에 최근의 모습을 촬영하고, 한 달 뒤에 살을 빼고 중년의 산제이 더트를 찍었다. 또 살을 뺀 다음 젊은 시절 산제이 더트의 모습을 담았다. 촬영을 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고 이 점이 가장 힘들었다.”

-산제이 더트가 논쟁적인 인물이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그에 대한 평가도 사람마다 다르다. 전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창작자의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균형감이나 중립성을 지키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산제이 더트에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25일간 들었다. 그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들은 뒤에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체포했던 경찰관의 이야기도 듣고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다음에는 산제이 더트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기자들 등 주변의 여러 가지 다른 시각을 통해서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이 과정만 6개월이 걸렸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여자 작가의 태도가 그렇다. 처음에는 산제이 더트를 의심하지만 마지막에는 완전히 믿게 된다. 감독도 그런 관점으로 산제이 더트를 바라봤나.
“그렇다. 정확히 기자의 역할이 내가 했던 거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그럼 네가 여자로 묘사된 거냐?’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내가 작업했던 과정이 영화에서 작가가 했던 것과 동일하다.”

-‘산주’에서 캄리(비키 카우샬)의 역할이 산제이 더트 못지않게 중요하다. 산제이와 아버지 사이에도 캄리가 있었고 산제이와 그의 여자친구 사이에도 캄리가 있었다. 영화에서 캄리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해석했는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실존 인물이다. 산제이에게 얘기를 듣고 친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후 직접 미국에 가서 그를 만났다.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3일 동안 그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는데, 핑키 얘기는 하지 않더라. (핑키는 산제이 더트와 하룻밤을 보낸 캄리의 여자친구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핑키 얘기를 꺼냈더니 그가 ‘산제이가 핑키 얘기를 했냐?’고 묻더니 ‘나쁜 놈’이라고 딱 한마디 하더라(웃음). 개봉하기 전에 그 친구에게 ‘산주’ 영화를 보여줬는데 내내 펑펑 울었다. 많이 울더라. 그는 산제이를 많이 사랑한다. 여전히 두 사람은 좋은 친구다.”

-‘세 얼간이’나 ‘산주’ 등을 보면 우정이나 가족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우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영화이기 때문에 갈등이 있는 거다. 현실에서는 이런 갈등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그러나 스토리상에서는 갈등이 있어야 연출이 되고 영화가 될 수 있다. 인간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이번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부자관계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경쟁관계였다가 동경하기도 하고, 무시했다가 또 좋은 분이었다고 추억하기도 한다. 이 관계의 변화의 여정과 복잡한 갈등을 영화에 그려보고 싶었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웃음과 감동, 묵직한 메시지를 모두 담아낸다. (왼쪽부터) ‘세 얼간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산주’ 포스터. /네이버 영화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웃음과 감동, 묵직한 메시지를 모두 담아낸다. (왼쪽부터) ‘세 얼간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산주’ 포스터. /네이버 영화

-‘세 얼간이’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다루고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2015)는 가짜 신을 섬긴다. ‘산주’에서는 가짜 뉴스를 담았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루는 이유가 있나.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니 거짓된 신분, 거짓된 신, 거짓 뉴스를 전하는 언론들 이런 점들이 모두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다. 싫어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소재화한 것 같다. 내가 거짓과 가식을 싫어하지 않았나 싶다. 항상 영화 소재는 내부에서 나오는 건데 평소 관심사에서 소재화한 듯하다.”

-작품을 통해 인도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새로운 시각을 전한다. ‘산주’에서는 인도 사회의 어떤 점을 날카롭게 짚고 싶었나.
“각본을 쓰기 시작할 때는 비판하려고 하지 않는데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루게 되는 것 같다. 다만 ‘산주’에서 한 가지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은 언론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항상 물음표를 통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실제 산제이 더트도 테러를 하려고 한 적도 없는데, 한 기자가 한 줄짜리 기사를 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버렸다. 언론의 태도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 산제이 더트와 그를 연기한 란비르 카푸르가 노래를 부르는 신도 인상적이다. 언론을 향해 경고를 날리는 내용이 담겼는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고 연출을 하게 됐나.
“보통 전기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에는 실존 인물의 사진이나 영상을 싣게 되는데 실존 인물이 배우이다 보니 노래를 섞어서 표현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산제이 더트가 실제로 인도의 언론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불렀는데 그 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원곡에는 욕설도 많고 표현이 다소 과격했기 때문에 순화시켜서 다시 녹음했다. 원곡을 들으면 기분 나빠질 거다(웃음).”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낯설어하는 관객들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발리우드 영화의 특징은 영화, 뮤지컬, 콘서트, 무용이 합쳐져 나타나고 반복되는 스토리와 자주 등장하는 뮤지컬적인 요소 등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모든 영화에 노래가 들어가야 했다. 인도 자체가 일할 때도 노래를 부르고 사람이 죽어도 노래를 부르고, 항상 노래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영화도 노래로 시작을 하는 것이다. 노래가 없는 영화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인도인들은 이런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는데 서구권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요즘은 많이 바뀌고 있다. 음악이 없는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산주’에 뮤지컬적 요소를 넣은 이유 중 하나는 음원 자체가 큰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음원만 팔아도 취급하는 회사들이 있기 때문에 넣게 됐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영화 외에도 다수의 인도 영화를 보면 매우 상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만들 때 예술성이나 상업성 혹은 작가 정신 등에서 균형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할 텐데,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균형감을 맞추고 있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맞추려고 하는 순간 망치게 된다. 상업적 요구가 들어오지 않게 솔직하고 아주 담담하게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든다. 그 후에 남들이 좋아해 주길 바랄 뿐이지, 그들이 좋아하는 걸 맞추기 위해서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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