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지민이 강렬한 변신에 도전했다.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을 통해서다. / 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한지민이 강렬한 변신에 도전했다.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을 통해서다. / 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한지민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강렬한 변신에 도전했다.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을 통해서다. 탈색 머리에 짙은 메이크업, 담배까지 입에 물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낯선’ 얼굴이지만, 한지민의 새로운 도전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을 흔들었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미쓰백’은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 분)가 세상에 내몰린 자신과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맞서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아동 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미쓰백’은 때로는 불편하고 보기 힘든 진실이지만,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날선 시선으로 짚으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한지민은 ‘미쓰백’에서 험난한 세상에 상처받았지만 강인함을 간직한 백상아로 분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과감한 외적 변신뿐 아니라 척박하게 살아온 상아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층 깊어진 감정 연기도 마음을 울린다.

한지민의 새로운 얼굴은 낯설지만, 반가웠다.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환기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 그는 본인이 가진 목소리의 힘과 영향력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한지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으로서 책임감으로 ‘미쓰백’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미쓰백’에서 험난한 세상에 상처받았지만 강인함을 간직한 백상아로 분한 한지민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제공
‘미쓰백’에서 험난한 세상에 상처받았지만 강인함을 간직한 백상아로 분한 한지민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제공

-파격적인 변신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데, ‘미쓰백’을 선택할 때 어떤 점이 가장 끌렸나.
“파격 변신을 위해서 시나리오를 선택했던 건 아니었다. 시나리오 전체를 읽었을 때 영화의 느낌보다는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처럼 다가왔다. 백상아와 김지은이라는 인물이 나이는 다르지만 닮아있는 상처를 갖고 있는데, 두 사람에 대해서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도 들고 미안함도 생겼다. 되게 아팠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백상아라는 인물을 만들어가는 데 오랜 작업을 거쳤다. 상아는 날이 서있는 인물인데 그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보이지 않아야 했다. 의상이나 얼굴뿐 아니라 행동, 말투 등 비주얼적인 부분으로 인해서 불편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또 상아라는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나하나 쌓지 않으면 표현해내기가 버거울 것 같았다. 세상에 대한 창구를 닫고 살아가는 상아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사를 쌓아가는 작업이 오래 걸렸다.

상아라면 이렇게 행동하고 시선처리도 이렇게 하지 않을까가 그다음 작업이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가 너무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백상아라는 인물과 살아온 삶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런 그녀를 내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했다. 감정 상태,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했고 그 점에 가장 많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동학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연기하면서 실제로 욕이 나왔을 정도였다고. 
“아이 문제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의 분노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다 보니까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는 생각과 화는 갖고 있는 것 같다. 선진국이랑 비교했을 대도 제도적으로 보호되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붕괴하는 부분이 있다.

주미경(김지은 친부의 내연녀, 권소현 분)이라는 캐릭터를 시나리오로 봤을 때도 너무 화가 났는데, (권소현이) 연기를 너무 잘 하니까 저절로 욕이 나오더라. 이 친구가 어떤 대사를 할지 아는데 그럼에도 (욕이 나왔다). 그 배우가 보여준 에너지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백상아로서는 감사한 지점이다. 김일곤(김지은 친부) 역할을 연기한 백수장 씨도 그랬다. 찍으면서 친부가 더 나쁜 것 아닌가 싶었다. 아동학대를 들여다보면 계모에다가 친부일 때가 현실적으로 가장 많은 학대가 일어나는 형태다. 그런 점들이 배우한테 저절로 몰입이 될 수 있게 많이 해줬다. (권)소현 씨랑은 너무 힘든 신들이 많아서 끝나고 편의점 파라솔 밑에 멍하니 앉아 맥주 한 잔하면서 그날그날 소비한 에너지를 풀어냈다.”

-남다른 조카 사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조카가 있기 때문에 아동학대 문제가 더 예민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조카가 없을 때보다 있고 나서 그 문제를 바라봤을 때 더 크긴 하다. 어떤 아이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이게 내 조카였으면 어쩔뻔했지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바도 달랐다.”

한지민이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에 출연한 소감을 밝혔다. /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지민이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영화에 출연한 소감을 밝혔다. /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제공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촬영하면서도 감정적으로 힘들었겠지만,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았을 것 같다.
“영화를 끝내고 나서 아프다는 감정보다는 상아랑 지은이가 다시 만나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이지원) 감독한테도 뒷이야기를 물어봤었다. 두 사람의 뒤가 계속 걱정이 되는 거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는 학대당한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보호소조차 미흡하고 제도적인 측면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됐지만 전과자로 찍힌 상아도 너무 걱정이 되는 거다. 어딘가에 살고 있을 상아, 그리고 상아와 같은 친구들에게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어른으로서 미안함이 있다. 영화는 끝났지만 뉴스로 계속 접하게 될텐데 영화가 끝났다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문제 같지는 않다.”

-아동 학대 장면이 영화 속에서 다수 등장한다. 아역 배우 김시아의 분량도 꽤 많았는데, 수위가 조금 세다는 평가도 있다.
“촬영을 하면서 시아 양에 대한 심리적인 보호가 제일 중요했다. 촬영 전부터 상담사랑 선생님을 옆에 두고 촬영했을 정도로 시아 양을 지켜주려고 노력했던 것이 현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다. 연출적인 면에서도 (이지원) 감독이 수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시사회를 통해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순간 장면이 넘어가기는 하지만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감정도 힘들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기 힘든 분들이 많은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영화를 빗대서 현실은 이렇다고 알려주려고 했던 부분은 아니지만 학대의 노출 정도가 빠졌을 때 상아의 감정이나 지은이가 처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조금 모자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한 것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뉴스로 접했을 때는 ‘저런 일이 또 일어났네’ 정도의 감정이라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가 힘을 얻고 사람들이 감정의 깊이가 같이 들어갔을 때는 누가 목소리를 내서 얘기하는 것보다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소재가 조금 어렵더라도 부모가 내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평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사회사업학과 전공을 했다. 원래는 아이가 너무 좋아서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다. 아동 복지도 있고 노인 복지도 있고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라서 좋았고 더 포괄적이어서 사회복지를 선택했다. 할머니 손에서 컸기 때문에 노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때는 우연한 계기에 빈곤 어린이 돕기라는 모금에 참여하게 됐었다.

그때 자원봉사자들과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천 원을 모금하는 거였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아무리 외쳐도 잘 오는 거다. 그런데 내가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쳐다보게 되고 귀를 기울이더라. 배우라는 타이틀이 목소리를 내는데 힘이 있다는 것을 그런 활동을 통해 알게 됐다. 1년에 정기적으로 두 번 하는데 이 약속을 빼먹지 않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11년째 하고 있다.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조금씩 누군가 목소리를 내고 같이 관심을 가지면서 변화를 꿈꿔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한지민이 천사 이미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지민이 천사 이미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지민 천사설’에 대해 본인은 ‘과대포장’이라고 표현했지만, 행보를 보면 공인으로서 가져야 할 모범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모금을 하면서 내가 너무 못난 사람이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순간순간 되게 많은 감정이 든다. ‘저 사람은 왜 천 원을 안주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나라서가 아니라 ‘어린이날인데 어린이들을 위해서인데 왜 천 원도 안주지’라는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하고, ‘커피 한 잔 들고 있으면서 왜 저걸 못주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금할 때마다 그런 많은 감정들이 올라온다. 모금활동 후에 (참여한 사람들과) 다 같이 솔직한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데, 그동안 불평불만을 가졌던 내 삶에 대해서 조금은 정화시키는 작업이 된다. 그래서 사실은 내 만족을 위해서 가는 것도 크다.

(천사 이미지에 대해서는) 착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어디까지 둬야 할지 모르겠으나 예전의 나는 마음이 여리고 순했던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착한 사람한테는 같이 착하고 아닌 사람한테는 나도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대중들이 생각하고 있는 맑고 투명한 천사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천사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했던 캐릭터들로 인해 쌓였고 그간의 일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한 부분이다.”

-남의 주머니에서 천 원 한 장 꺼내는 것도 힘든데 영화는 무려 만 원이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일인데 ‘미쓰백’은 소재가 주는 불편함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쓰백’을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으면 좋겠나.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중에서는 2시간 동안 웃고 싶어서 오는 분들도 있을 거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오는 분도 있을 거다. 각자 너무 다를 거다. ‘미쓰백’이 힘든 부분이나 감정적으로 고통을 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주는 잔상은 단순한 감정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한 번쯤은 내 주변에 저렇게 상아나 지은이 같은 사람이 누군가의 시선도 받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누구나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이지만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한테 물려줄 세상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비참한 현실보다는 조금은 덜한 현실을 주려면, 관심이 모아지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아픈 공감 속에서도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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