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추상미가 감독으로 돌아왔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서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배우 추상미가 감독으로 돌아왔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서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추상미가 감독으로 돌아왔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서다. 한국전쟁고아들의 비밀 실화를 다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 추 감독은 상처가 선하게 사용됐을 때 발휘되는 위대한 사랑을 말한다.

1994년 연극 ‘로리타’로 데뷔한 추상미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약을 펼친 실력파 배우다. 드라마 ‘맨발로 뛰어라’(1998), ‘초대’(1999), ‘노란손수건’(2003), 사랑과 야망(2006), ‘8월에 내리는 눈’(2007), ‘내 여자’(2008) 등과 영화 ‘꽃잎’(1996), ‘접속’(1997), ‘생활의 발견’(2002),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나 그는 2009년 방송된 드라마 ‘시티홀’을 끝으로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연출자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기 때문. 2010년 단편 영화 ‘분장실’로 첫 연출에 도전한 추상미 감독은 ‘영향 아래의 여자’(2013)를 선보이며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 후 출산으로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한국전쟁고아들의 비밀 실화를 다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 5년 만에 충무로에 돌아왔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비밀 실화, 그 위대한 사랑을 찾아 남과 북 두 여자가 함께 떠나는 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추상미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이자 한국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영화 ‘그루터기들’의 준비 과정을 담은 프리뷰 작품이다. 영화에서 추 감독은 ‘그루터기들’ 출연 배우이자 탈북 여성 이송과 함께 여정을 함께 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추상미 감독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쉽지 않은 소재였는데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산후우울증을 겪었는데 TV 속 아이들이 다 내 아이 같았다. 여기저기 다 감정이입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북한의 어린  아이들을 지칭하는 은어)와 관련된 방송을 봤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꽃제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호기심이 생겼고 조사를 했는데 되게 이상하게 다가오더라. 분단의 현실을 처음 느꼈다고 해야 할까.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아이들이 굶어죽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같은 민족이지만 개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꽃제비는 감정적인 모티브가 됐다. 조사하던 과정에서 폴란드로 간 북한전쟁고아에 대해 알게 됐고 장편 소재로 선택했다. 다른 소재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산후우울증을 겪었다고.
“영화 연출은 아이를 낳기 전부터 오래된 꿈이었다. 배우로서 회의감도 찾아왔고, 결혼한 지 4년이 됐는데 아이가 없어서 몸을 만들어야겠다 싶어 작정하고 쉬었다. 그런데 아이를 한 번 유산했다. 충격이 컸다. 그래서 연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학원에 갔고 단편 두 편을 만들어서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교수님들이 이제 장편영화를 만들면 되겠다고 했는데 덜컥 임신을 했다. 그러고 나서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극복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북한전쟁고아들에 대해 알게 됐고, 운명처럼 선택하게 됐다.”

추상미 감독이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다양한 이야기를 모두 다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추상미 감독이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다양한 이야기를 모두 다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어떤 점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나.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동경해서 연극부터 출발했다(추상미는 연극배우 고 추송웅의 딸이다). 계속하다 보니 영화를 했고, 드라마도 하게 됐는데 드라마는 판이 많이 다르더라. 연극할 때는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작품을 해서 좋았는데 드라마로 오면서 맡을 수 있는 역할들이 폭이 좁아지더라. 소모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역할을 했는데 잘하면 그 역할이 계속 들어왔다. 그런 부분에서 회의감이 들었고 (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는 탈북여성 이송과의 이야기를 통해 탈북자들의 애환이 담겼고,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의 모습이 담겼다. 세 가지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는 다큐멘터리인데, 이야기의 결이 다양한 탓에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감정 이입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런 구조의 틀을 만들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집요하게 파고들고 끌고 나가는 방식은 아니었다. 결국은 시대의 상처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물리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작품이라기보다 관념을 따라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선택이었다.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데, 우연히 얻어진 결과물 때문에 나중에 바꿨던 것 같다.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다가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폴란드로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 쪽과 접촉을 해보니 폴란드 선생님들이 연세가 너무 많았고, 양육원 원장님은 지병이 있으셨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이 역사를 기록할 영화를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극영화보다 사전 다큐멘터리를 먼저 만들게 됐고, 나 혼자 가는 것보다 이송을 데리고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스토리가 생길지는 몰랐다. 이송이 치유되고 변화되는 과정이 너무 리얼하고 생생한 이야기가 돼버렸다. 버릴 수 없었다. 나도 산후우울증이 치유됐다. 또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폴란드 선생님들이 그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에게 선하게 사용한 이야기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구조를 잡고 연결고리를 만들기 힘들었지만 이 이야기들이 소중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통적인 구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제목을 정하는 데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영어 제목이 ‘The Children Gone to Poland’다. gone(go의 과거분사)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went(go의 과거형)는 과거를 의미하지만 gone은 현재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는 나와 이송도 포함돼있다.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상징이기도 했다. 폴란드라는 곳은 상징적으로 나를 치유해주는 고향 같은 의미다.

영화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선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개인의 상처이자 역사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는데 선하게 사용됐던 것에 초점을 많이 맞췄고 우리의 상처를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증오와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하는 데 사용이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상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개인도 살면서 젊었을 때 엄청난 상처와 시련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관점이 바뀌지 않나.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라고 회상할 수 있듯이 우리도 역사의 상처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상미 감독이 배우는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추상미 감독이 배우는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영화에서 추상미 감독이 이송에게 ‘배우가 되려는 사람에게 상처가 어떤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송 배우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인 것 같고, 추상미 감독은 배우로서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유년 시절에 상처가 많았다. 가장 큰 상처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다. 사춘기  때 사랑하는 대상이 갑자기 죽어버렸고 그 상처가 컸다. 그게 잠재돼있던 것 같다. 배우를 하면서 좋았던 것이 10년 정도 연극무대에 섰는데 심리적인 부분이 많이 치료됐다. 상처 입은 자아를 가진 역할들을 많이 맡았는데 연기를 하면서 풀어진 것 같다. 이송은 굉장히 강인하다.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인데 좋은 점도 있겠지만 나쁜 점은 상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다. (이송은) 상처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상처를 감추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부딪히게 된다. 또 그런 상처들이 나중에는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얘기를 (이송에게) 많이 해줬다.”

-상처를 밖으로 꺼내는 것이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억지로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것을 추궁할 수 있는 권리도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본인의 관점에서, 본인한테는 언젠가 상처를 오픈하고 그것을 마주하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 객관화시키는 과정이 굉장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되면 스스로 삐쳐있는 상태와 다름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배우가 되려는 사람인데 그 상처에 함몰돼있으면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 자체가 안 된다. 사람이 건조해지고 배우로서는 힘든 점이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남성 배우와 감독의 비율이 여성 영화인보다 확연히 높다. 배우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생각은.  
“배우를 할 때도 남성 감독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남자의 프레임에서 만들어지는 여자 캐릭터들이 많았다. 피상적이고 너무 이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게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는데 영화계를 떠나있어서 잘은 모르지만, 지금 멀리서 봐도 그런 게 보이더라.

앞으로 연기를 계속할 것이냐는 것에 대한 답일 수도 있는데 리얼하고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계획은 있다. 혹시 너무 리얼해서 캐스팅이 안 된다면 그런 역할은 내가 소화할 생각이다(웃음).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의 아그네스 자우이 감독을 좋아하는데, 그 감독이 자기 영화에 개성 있는 조연으로 출연을 많이 한다. 정말 좋아 보였다. 그 작품에서 가장 주제적인 한 마디를 날릴 수 있는 역할들을 주로 하는데 재밌더라. 그런 것은 생각해봤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 진이 빠진다는 혹독한 경험을 하면서 배우와 감독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극영화는 언제 촬영에 들어가나.
“폴란드의 여정을 통해 그곳으로 보내진 고아들 중 남한고아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원래는 디테일만 수정하면 바로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전폭적으로 수정하는 상황이 생겼다. 빠르면 내년, 늦으면 내후년 정도에는 촬영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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