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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요
[함께 살아요③] 불길 속 운전자 구한 알바생의 용기
2018. 10. 25 by 소미연 기자 pink2542@sisaweek.com

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불길 속을 뛰어든 청년이 있었다. 그는 승용차에 불길이 치솟자 문뜩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꼭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자를 구출해낸 청년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 소미연 기자
불길 속을 뛰어든 청년이 있었다. 그는 승용차에 불길이 치솟자 문뜩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꼭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자를 구출해낸 청년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 속 이재천 씨의 얘기다. / 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인천=소미연 기자] 이른 아침이었다. 아파트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인근 편의점에서 근무 중이던 아르바이트생,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전부였다. 두 사람은 아파트 단지 내 승용차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을 목격했다. 운전자는 주차된 다른 차량을 들이 받은 뒤 의식을 잃은 뒤였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급한 순간에 아르바이트생은 벽돌로 유리창을 깨 승용차의 문을 열었고, 경비원은 운전자를 끌어냈다. 운전자는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 2016년 5월 인천 송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 “사람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

그 날의 사건은 잊혀졌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했다. 당시 아르바이트생이던 이재천(25) 씨는 사고 현장과 멀지 않은 GS25 연수골드점에서 야간 시간대를 지키고 있었다. 신분이 점주로 달라졌을 뿐이다. 이씨의 선행을 알게 된 본사에서 그를 우수 매니저 창업추천제도의 첫 주인공으로 삼았다. 가맹비와 각종 보증금 없이 점포를 열 수 있도록 지원한 것. 점포 주변 사람들은 이씨를 착한 청년으로만 알았다. 그와 함께 운전자를 구한 경비원 현인수(66) 씨는 처음부터 자신을 드러내는데 부담을 표시해왔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아파트 주민이 촬영한 사고 당시의 모습은 KBS를 통해 보도돼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영웅이 된 청년은 인천시와 연수구, 인천남동소방서 등 7개 기관에서 표창을 받았다.
아파트 주민이 촬영한 사고 당시의 모습은 KBS를 통해 보도돼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영웅이 된 청년은 인천시와 연수구, 인천남동소방서 등 7개 기관에서 표창을 받았다.

물론 이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25일 <시사위크>와 만난 자리에서 “(사건 당시) 승용차 안에 있는 사람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만약 제가 잘못됐더라도 누군가를 구했으면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생각은 어떨까. 이씨는 “그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더니 온몸에 탄 냄새가 배여 (어머니께) 사건을 말씀드렸는데, ‘잘했다’고 해주셨다”고 답했다.

타인을 위한 희생이 모자(母子)에게 쉬운 선택은 아니다. 여느 가정도 마찬가지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전부와 다름없다. 이씨의 아버지는 그가 중학생일 때 세상을 떠났다. 급성백혈병으로 입원한지 보름여 만에 이별해야 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컸다. 이씨는 집에 홀로 계실 어머니가 걱정돼 항해사의 길을 접었고, 대학 진학 대신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지난 시간들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미안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견뎌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일이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야간업무 특성상 “오후에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꽤 적응이 된 편”이다. 도리어 “점포를 더 열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 그는 “매출이 높을수록 일은 많아지지만 그만큼 보람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의 또 다른 보람은 기부다. 점주가 되기 전부터 밀알복지재단에 매월 얼마씩 기부해오고 있다. 항해사로서 자신의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어린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싶달까.

이씨의 사연은 아르바이트생에서 점주로 인생 역전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그날 운수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는 그의 말처럼 성실히 보내온 시간들의 대가이자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결실이다. 여기엔 가족애가 있다. 사건 당시 KBS와 인터뷰에서 밝힌 이씨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화재 차량의 운전자는) 어느 한 가정의 아버지일 것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정말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다.
그래서 꼭 구해드리고 싶었다.
굳이 제가 아니어도 다들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