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청운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청운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아침 7시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굵었고, 날은 잔뜩 찌푸렸다. 예정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기자단 산행이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행은 취소되고 오찬만 하길 내심 바랬다. 지난해 ‘마크맨들과의 산행’의 무시무시한(?) 뒷얘기 때문이다. 상당수가 필드에서 뛰는 젊은 기자들이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따라가기 벅찼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대통령의 일정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다음 일정들이 줄줄이 있어 이번에 연기되면 또 언제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산행도 한 차례 연기된 일정이었다. 다행히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고 산행 예정시각을 약 한 시간 여 앞둔 시점에 청와대는 ‘강행’을 결정했다. 비구름이 남하했다는 것이다.

등산코스는 삼청동에서 출발해 청와대 뒤편 북악산 성곽코스를 따라 부암동 윤동주 문학관까지 이어지는 3.4km의 길이었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전면 통제됐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때인 2007년 일부가 개방됐다. 지금은 일반인들도 등산이 얼마든지 가능한 지역이다. 등산로 초입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으로 북악산 개방을 기념하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은 표지석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주영훈 경호처장 등의 경호를 받으며 올라오는 문 대통령의 얼굴은 매우 밝아 보였다. 표지석 앞에서 출입기자들과 기념촬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직전까지 비를 뿌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해를 비추고 있었다.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를 방문했을 때 김영철 부위원장이 “백두산의 주인을 천지가 알아 본 것”이라고 했었는데,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의 주인이 나타났기 때문에 날씨가 좋아졌다는 가벼운 농담들이 나왔다.

선두에서 기자들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선두에서 기자들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악’자가 붙을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는 북악산이지만 등산로 정비가 잘 돼 있었다. 성곽까지 오르는 길은 계단이 설치돼 있어 적당한 대화와 함께 등반이 가능했다. 이날 등산에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정태호 일자리 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윤종원 경제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한병도 정무수석 등 참모진들까지 총출동해 모처럼 기자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일일 안내원을 자처했다. 1.21 사태 때 총격의 흔적을 간직한 소나무, 숙정문 촛대바위, 노무현 대통령 시절 통제해제 배경, 옛 성벽터, 북악산을 ‘주산’으로 놓고 터잡은 경복궁 등등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산행 중 한 점의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는 문 대통령의 모습에서 강건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평소 참모들이 특전사 출신의 강철체력이라 표현했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등산객들 덕에 숨 돌릴 시간을 얻었다. 등산객들은 예상치 못한 문 대통령과의 만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악수와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졌고 문 대통령은 기꺼워했다. 충남 서산에서 왔다는 한 등산객은 “오늘 계 탔다”고 소리쳤고, 지지층으로 보이는 젊은 또 다른 등산객은 악수 후 “손을 씻지 말아야 겠다”며 즐거워했다. 청운대에서 휴식을 취하던 등산객 20여 명은 단체로 박수를 치며 문 대통령의 등장을 반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북악산 옛 성벽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북악산 옛 성벽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운대에서는 간단히 기자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격무에서 한 발 벗어나 능청스러운 농담과 함께 다소 가벼운 주제의 대화가 오갔다. 문 대통령은 “날씨가 좀 좋지 않아서 ‘아이고 취소되는가 보다. 잘됐다’ 그랬는데 기자님들이 비가 오더라도 가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고 했다. 일동 웃음이 터졌다. 그럴리 없다. 문 대통령이 누구보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굳이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니라도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다고 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가보고 싶다. 꼭 산이 아니라도 예를 들면 동학농민혁명 기념지 우금치라든지 황토현이라든지 이런 것을 역사에서 배우면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문 대통령의 퇴임 후 모습이 그려졌다. 운이 좋다면 명산 유적지에서 퇴임한 문 대통령을 만나 지역의 역사와 유래를 자세히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찬은 부암동 자하손만두에서 열렸다. 이 곳 만두를 한번쯤 기자들에게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막걸리 때문이었을까. 오찬을 끝내고 청와대로 복귀하는 문 대통령의 얼굴은 다소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평양정상회담부터 미국순방, 유럽순방까지 최근 문 대통령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이번 산행과 오찬이 격무에 시달리는 문 대통령에게 조금의 활력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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