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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말하다
대한민국 남녀 임금차별, 이대로 괜찮나
[인권을 말하다 - 페이미투④] 남자보다 적은 임금… 여자인 당신은 왜 침묵하는가
2018. 11. 06 by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똑같은 일을 하는데 받는 임금은 다르다.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 그 피해자다. 같은 일을 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임금을 주는 이도 딱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법으로도 금지돼 있지만 작동이 멈춘지 오래다. ‘불평등’이 당연한 듯 똬리를 튼 이유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행되는 차별. 뭔가 잘못됐다. 대한민국 남녀임금차별, 이대로는 안된다. [편집자주]

한국은 남녀 임금격차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더뎌도 너무나 더디다. ‘페이미투’의 목소리도 작다. 차별인 걸 알면서도 정작 침묵하는 여성들이 많다. 페이갭의 원인을 여성의 능력부족으로 여기거나, 차별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한국은 남녀 임금격차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더뎌도 너무나 더디다. ‘페이미투’의 목소리도 작다. 차별인 걸 알면서도 정작 침묵하는 여성들이 많다. 페이갭의 원인을 여성의 능력부족으로 여기거나, 차별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영국은 ‘남녀 임금차별’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의회가 나서 ‘페이미투(#PayMeToo)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영국 공영방송 BBC였다. 지난 1월 BBC 중국 편집장이었던 캐리 그레이시(Carrie Gracie)가 남녀 임금차별을 지적하며 편집장 자리를 내놓은 것이 영국 페이미투 운동에 불을 댕겼다. 

◇ 캐리 그레이시의 ‘나비효과’

당시 캐리 그레이시는 BBC가 공개한 고액 연봉자(15만 파운드, 약 2억2,000만원 이상) 96명 중 여성이 3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런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업무의 차이’를 설명해 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 BBC는 설명 대신 큰 폭의 연봉 인상을 제안했지만, 그레이시는 거절했다. 

그는 회사 측에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같은 일, 또는 같은 가치를 지닌 일을 하는데 남성이 임금을 더 받는 건 차별이고 불법”이라고 지적하며 편집장직에서 사퇴했다. 2010년 제정된 영국 평등법(Equality Act 2010)에 따르면 같은 업무를 하는 남성과 여성은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 1월 BBC 중국 편집장이었던 캐리 그레이시(Carrie Gracie·사진)는 남녀 임금차별을 지적하며 편집장 자리를 내놓았다. 이 행보는 영국 페이미투 운동에 불을 댕겼다. / BBC 

나는 더 높은 연봉을 받고자 하는 게 아니다.

동일한 일을 하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 노동의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그에 따른 동등한 임금을 지급해야 진정한 성평등이다. 

캐리 그레이시의 결단은 ‘변화’를 불러왔다. SNS에서는 BBC 직원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나는캐리를지지한다(#IStandWithCarrie)’라는 해시태그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성별 임금격차는 차별’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내외적으로 큰 반향이 일었다. 

당장 수십 명의 BBC 여직원들이 사내 임금문제에 대해 고충처리를 신청했고, 120여명은 전국언론인연합회(National Union of Journalists)를 통해 단체 항의서를 제출했다. 영국의 독립기관인 평등인권위원회(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 EHRC)는 BBC 측에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BBC 내부에서도 자성의 움직임이 일었다. BBC의 남성 뉴스 진행자 몇 명은 임금을 자진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토니 홀 BBC 사장은 직접 사과하면서 연봉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약속했다. 2020년까지 생방송 인력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캐리 그레이시의 결단 이후 영국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스텔라 크리시 노동당 하원의원 등 당적이 서로 다른 여성 의원 10명은 ‘페이미투닷컴(좌)’ 사이트를 개설해 페이미투 운동을 시작했고, 영국 정부는 지난 4월 기업의 남녀 근로자 평균 임금을 공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회사 이름만 입력하면 남성과 여성의 평균 임금 격차, 보너스 격차 등이 공개되는 사이트(우)도 개설됐다. / 영국 '페이미투닷컴', '젠더 페이갭 서비스' 사이트 갈무리.
캐리 그레이시의 결단 이후 영국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스텔라 크리시 노동당 하원의원 등 당적이 서로 다른 여성 의원 10명은 ‘페이미투닷컴(좌)’ 사이트를 개설해 페이미투 운동을 시작했고, 영국 정부는 지난 4월 기업의 남녀 근로자 평균 임금을 공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회사 이름만 입력하면 남성과 여성의 평균 임금 격차, 보너스 격차 등이 공개되는 사이트(우)도 개설됐다. / 영국 '페이미투닷컴', '젠더 페이갭 서비스' 사이트 갈무리.

정치권에선 ‘페이미투(#PayMeToo) 운동’이 본격화됐다. 스텔라 크리시 노동당 하원의원 등 당적이 서로 다른 여성의원 10여명은 ‘페이미투닷컴’ 사이트를 개설하고, 페이미투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성별 임금격차에 항의하고 기업들에 남녀 임금격차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이들 여성 하원의원들은 페이미투닷컴 사이트를 통해 여성들이 현장에서 마주한 임금 불평등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또,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나 여성단체와 연대하도록 제안하는 등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안내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해 분석한 BBC방송의 20대 고액 연봉자. 이 중 여성은 4명뿐이다. / 영국 가디언 보도화면 갈무리
영국 가디언이 지난해 분석한 BBC방송의 20대 고액 연봉자. 이 중 여성(노란박스)은 단 5명에 불과했다. / 영국 가디언 보도화면 갈무리

◇ ‘미투(#MeToo)’의 성공을 기억하라

BBC가 촉발한 임금차별 논쟁은 영국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4월 기업의 남녀 근로자 평균 임금을 공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영국 내 직원 수 250명 이상의 기업은 남녀 직원의 임금·보너스 격차를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성별 임금격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도 개설됐다. 회사 이름만 입력하면 남성과 여성의 평균 임금 격차, 보너스 격차 등이 공개된다. 

영국의 이 같은 변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아주 더디더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OECD가 가장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6.7%다. 남성이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은 같은 일을 하고도 고작 63만원만 받는 셈이다. 반면 영국은 16.8%로, 한국의 절반 이하다. 사실 ‘페이미투’ 운동은 한국에서 훨씬 먼저 시작됐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은 더뎌도 너무나 더디다. ‘페이미투’의 목소리도 작다. 차별인 걸 알면서도 정작 침묵하는 여성들이 많다. 연봉은 그저 ‘주는 대로 받는 돈’으로 받아들이고, 동등한 처우를 요구하는데 있어서도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괜히 나섰다가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결국엔 “한국의 캐리 그레이시가 된다 한들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이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다수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여성들 스스로 변화를 이뤄낼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한 이들이 용기있게 목소리를 냈고, 고발의 주체로 함께 나서 결국 변화의 움직임을 이끈 ‘미투(Me, Too) 운동’의 성공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 뉴시스
다수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여성들 스스로 변화를 이뤄낼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한 이들이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고, 고발의 주체로 함께 나서 결국 변화의 움직임을 이끈 ‘미투(Me, Too) 운동’의 성공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 뉴시스

그런 점에서 다수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미투(Me, Too) 운동’의 성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올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분노는 여성들의 행동 연대로 이어지며 변화의 동력에 힘을 실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한 이들이 용기있게 목소리를 냈고, 고발의 주체로 함께 나섰다. 싸움을 멈추지 않고 연대를 확장해나간 이들의 노력은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에 균열을 냈고, 결국 변화의 움직임을 이끌었다.

국내에서 페이미투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처럼 여성들 스스로 변화를 이뤄낼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용기있게 목소리는 내는 것만이 남녀 동일임금 문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시작이라는 것이다.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행동은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딸들 역시 

당신과 똑같은 미래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