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녀 임금차별, 이대로 괜찮나

똑같은 일을 하는데 받는 임금은 다르다.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 그 피해자다. 같은 일을 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임금을 주는 이도 딱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법으로도 금지돼 있지만 작동이 멈춘지 오래다. ‘불평등’이 당연한 듯 똬리를 튼 이유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행되는 차별. 뭔가 잘못됐다. 대한민국 남녀임금차별, 이대로는 안된다. [편집자주]

벨기에는 사용자의 법적의무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입법 노력을 통해 성별 임금격차를 2000년 13.6%에서 2016년 4.7%로 대폭 줄였다.
벨기에는 사용자의 법적의무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입법 노력을 통해 성별 임금격차를 2000년 13.6%에서 2016년 4.7%로 대폭 줄였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영국을 비롯해 미국,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세계 선진국들은 남녀 임금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정부는 기업의 성별 임금격차 보고를 의무화했고, 프랑스에선 2020년부터 남녀 임금 격차를 해소하지 않는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독일은 올해부터 남성 동료의 임금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임금공개법’을 도입했다. 

이들 국가의 남녀 임금격차는 OECD 평균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낮은 곳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는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법안을 계속해서 발의하거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등 실질적 효과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와 벨기에, 독일의 사례는 보다 적극적인 입법 노력이 왜 필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사용자 법적의무 강화한 벨기에, 성별 임금격차 13.6% → 4.7%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는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기반으로 꼽힌다. 이 제도는 전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법률에 그 원칙을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최근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관련법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이 닿아있다. 

실제 벨기에는 다양한 입법 노력을 통해 성별 임금격차를 2000년 13.6%에서 2016년 4.7%로 대폭 줄였다. 

벨기에는 이미 성별을 이유로 한 일체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마련해 시행중이다. 1975년 중앙노사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합의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성 중립적 직무평가·분류 기준을 만드는데 합의했다. 2008년에는 성 중립적 관점에서 직무를 평가하고 분류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에서는 노동인권을 다루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그것이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받는 것, 성별이나 인종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권리다.

2015년부터 시행(2007년 제정) 중인 ‘남녀임금격차와 싸우기 위한 법률(Loi visant à lutter contrel’écart salarial entre hommes et femmes)’은 50인 이상의 기업이 2년마다 ‘임금구조 분석보고서’를 작성해 노사협의회에 제공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제공한 임금을 비롯해 사회보장 기여금 등 각종 혜택에 관한 정보가 모두 포함돼야 한다. 임금 등에 관한 정보는 △근로자의 지위 △직무등급 △근속년수 △교육·훈련·자격 수준별로 상세히 구분돼 제공돼야 하고, 사용자는 임금구조를 분석할 때 성중립적(gender neutral) 직무평가·분류 점검표(checklist)를 사용해야 한다. 

만약 임금구조 분석 결과, 양성 간 임금격차가 확인되면 이를 시정하기 위한 행동계획을 보고서에 포함시켜야 한다. 행동계획에는 구체적 목표, 목표달성 방법, 달성기한, 모니터링 방법 등을 명시하도록 법률로 규정했다. 노사협의회는 이 보고서에 기초해 사용자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논의한다.  

벨기에는 이 밖에도 2007년부터 성별 임금격차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성별 임금격차 축소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성별 임금격차를 분석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르웨이나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는 △근로자의 임금정보에 대한 접근권 강화 △사용자의 임금정보 공개의무 강화 △분쟁 시 사용자의 입증책임 강화 △성 중립적이고 체계적인 직무분류 및 평가기준의 마련 등 사용자의 적극적 노력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시행을 강화하는 등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다. 

◇ 성별 임금격차 최고인 한국, 이제야 발 뗀 정부

이에 비해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대한민국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거의 전무하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이 명기돼 있고, 그로기준법에도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야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제도 마련에 나섰다. ‘성평등 임금 실천 가이드라인’을 제작·배포하는가 하면, 내년부터 5인 미만 전 사업장에 대해서도 직장 내 남녀차별 금지를 적용하기로 했다. ‘성평등 임금 공시제’ 도입 및 성별임금격차 지표 관리 등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단순한 지침 수준에 머물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벨기에나 노르웨이 등의 사례처럼 보다 과감하고 근본적인 법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대한민국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거의 전무하다. 법으로도 남녀평등과 동일임금에 대한 원칙이 명시돼 있지만 사실상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 / 뉴시스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대한민국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거의 전무하다. 법으로도 남녀평등과 동일임금에 대한 원칙이 명시돼 있지만 사실상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 / 뉴시스

여성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동일임금의 날’을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 남녀 임금격차 문제 해결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성별 임금격차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고, 그렇게 사회적 인식이 확대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005년 벨기에를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에서 동일임금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행동하는여성연대, 한국YWCA, 미래여성네트워크, 역사여성미래, 한국청년유권자연맹 등은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동일임금의 날’ 제정을 촉구해왔다. 

이들은 5월 23일에 이어 지난달 5일에도 ‘동일임금의 날’ 지정을 골자로 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고평법)’ 입법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매해 전년도 성별임금격차 비율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1년간의 임금이 동일해지는 날을 다음해 동일임금의 날로 지정·선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주와 공공기관의 장은 매년 성별임금격차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은경 행동하는여성연대 상임대표는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개정안 발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실제로 이 법안이 현실에서 작동되는 것이 중요하다. 실질적 제도가 수반되지 않는 선언적 평등법이 얼마나 허망한 구호에 그치는지, 지난 20년간 지속돼 온 참혹한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남녀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선 과감하고 근본적인 법제도 개선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