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헌법엔 계급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수저계급론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도 ‘주식금수저’는 꼼수 승계와 같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식금수저’ 실태를 <시사위크>가 낱낱이 파헤친다.

조부모가 자식을 거치지 않고 손자에게 바로 증여하는 방식은 절세를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조부모가 자식을 거치지 않고 손자에게 바로 증여하는 방식은 절세를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사용된 이미지 출처:프리픽(Freepik)]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재벌 오너일가의 최대과제는 승계 및 증여 비용을 아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방법이 동원되고, 이 과정에서 각종 불법과 탈법, 편법 행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편법 중 하나는 세대를 건너뛰는 증여다. 어차피 2세를 거쳐 3세로 향하게 될 재산을 곧장 넘겨주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두 번의 증여를 한 번으로 줄일 수 있고, 증여세 납부도 한 번만 하면 된다.

지난해 삼양그룹 오너일가 사이에서 벌어진 증여도 이러한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삼양홀딩스 주식 9만8,000만주를 가족에게 증여한 바 있다. 당시 시세로 약 88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주목할 점은 증여의 대상이다. 자신의 두 아들은 물론 그들의 자녀인 손자 총 3명에게도 주식을 증여했다. 두 아들에겐 각각 3만3,000주와 3만주를 증여했고, 손자 3명에겐 각각 1만5,000주와 1만주 등 총 3만5,000주를 물려줬다.

이러한 증여는 철저한 계산 속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먼저, 두 아들에게 건넨 주식은 삼양홀딩스 내에서 두 형제의 입지를 한층 높여줬다. 최대주주였던 김원 부회장은 지분율을 소폭이나마 끌어올렸고, 동생 김정 부회장은 사촌형 김윤 부회장을 제치고 2대주주로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다. 3만5,000주를 손자들에게 직접 증여하면서 오너일가 4세들의 미래도 챙겼다. 만약 이 주식까지 두 아들에게 증여했다면 향후 4세 승계·증여 과정에서 또 다시 비용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런 고민을 조금이나마 던 것이다. 여기엔 김상하 회장이 아흔을 넘긴 고령이고, 손자들이 대부분 20대에 접어들었다는 점 또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시세 기준으로 약 9억원 상당의 주식을 물려받은 손자 중엔 2000년생 미성년자 A군도 포함돼있었다. A군은 주가가 다소 떨어진 지금도 34억원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직접 재산을 증여하는 경우 일정한 가산세가 붙기도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아버지에서 자녀로 두 차례 증여를 실시할 때보다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때문에 적잖은 오너일가들이 할아버지로부터 손자에게 주식을 증여하곤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이 올해 국감을 통해 지적한 내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조부모가 손자에게 직접 증여한 규모는 4조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5년간 이 같은 증여 방식이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김두관 의원은 “세대생략 증여의 경우 세금을 가산하더라도 두 번 증여보단 줄일 수 있어 절세 및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세대생략 증여에 대한 증여세 인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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