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나영이 돌아왔다. /이든나인 제공
배우 이나영이 돌아왔다. /이든나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이나영이 돌아왔다. 그를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작품은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다. 탈북 여성으로 분한 그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로 더욱 깊어진 연기 내공을 발휘한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탈북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아픈 과거를 지닌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자(이나영 분)와 14년 만에 그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장동윤 분),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그의 숨겨진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젠첸이 아픈 과거를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둔 엄마와 재회를 통해 겪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과 그녀의 일기장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비밀을 통해 분단사회가 낳을 수밖에 없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 가족을 표현한다.

‘뷰티풀 데이즈’는 2012년 영화 ‘하울링’(감독 유하) 이후 공백기를 가졌던 이나영의 복귀작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나영은 2015년 배우 원빈과 깜짝 결혼식을 올린 뒤 그해 아들을 출산하고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았다. 같은 해 단편영화 ‘슬픈 씬’(감독 우문기)에 출연하긴 했지만, 장편 영화는 6년 만이다.

극중 이나영은 돈에 팔려 조선족 남편(오광록 분)과 결혼했던 탈북 여성 캐릭터를 연기했다. 엄청난 고통의 기억을 품었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의 여정을 지속하는 인물이다. ‘뷰티풀 데이즈’ 속 이나영은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 다른 결의 연기를 선보인다.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연기하며 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낸다. 별다른 대사나 설명 없이도 탈북 여성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건 배우 이나영의 힘이다.

스크린 밖에서 만난 이나영은 털털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도시적인 이미지에 어딘지 모르게 차가울 것 같고, 내성적인 성격일 것 같았던 이나영은 재치 있는 입담과 솔직한 매력으로 인터뷰 내내 분위기를 주도했다. 남편이자 배우 원빈에 관한 질문에도 ‘쿨’한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의외의 인간미로 마음을 흔든 이나영이다.

‘뷰티풀 데이즈’ 이나영 스틸컷. /콘텐츠판다, 스마일이엔티 제공
‘뷰티풀 데이즈’ 이나영 스틸컷. /콘텐츠판다, 스마일이엔티 제공

-‘뷰티풀 데이즈’ 출연 결정 후 공부하듯이 매달려서 준비했다고.
“공부하듯이 파고드는 성격인 것 같다. 연기를 할 때 잘 모르는 직업들은 생소한 것들이 많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 파고드는 편이다. ‘뷰티풀 데이즈’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공간과 생활, 말투 이런 것들이 있었다. (윤재호)감독님한테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연변 사투리 연기는 처음이었는데 ‘뷰티풀 데이즈’에 함께 나온 배우 김아라 씨가 실제 북한 출신이다. 그래서 그분을 괴롭혔다. 한 번만 더 만나달라고 하고 더 체크해달라고 했다. 처음에 남자 톤의 녹음을 받았다. 그거는 톤의 억양이 세더라. 아라 씨는 다 걷어내고 디테일이 있었다. 처음에 센 억양을 습득해버려서 톤을 다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말투나 비주얼이 평소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
“잘 어울리지 않았나?(웃음) 배우는 항상 다른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직업에 따라서, 연령에 따라서. 이번에는 또 다른 언어였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재밌었다. 시나리오도 워낙 재밌게 봤고 하고 싶었던 역할이기도 했다. 연변 사투리도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고 좋아했으니 보는 분들도 어색하지 않고,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나.
“이런 톤의 영화를 참 좋아한다. 시나리오 봤을 때 구성도 좋았고, 지문도 많지 않았다. 대본이 얇기도 했다. 담백하면서도 시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먹먹함이 느껴지는 표현들이 있었다. 나도 그 안에 있고 싶더라. 그걸 전달해드리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먹먹한 걸 좋아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먹먹하면 생각을 하게 된다. 아련한 느낌의 영화를 좋아해서 이 작품도 선뜻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쉽지 않은 캐릭터였는데, 어떻게 접근했나.
“워낙 굴곡 있고 상상하지 못한 삶이었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이입을 잘 할 수 있고, 진심을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전체적인 의상과 모습에서도 나타날  것 같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같이 상의하고 결정했다. 의상을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시장에 가서 구매를 했는데, 막 사면 예산이 올라가기 때문에 함부로 살 수도 없었다.(웃음)

연기적으로는 어린 시절을 연기할 때는 북한에서 오는 과정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힘들었을 텐데 그걸 겪어낸 어린 소녀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고, 20대는 동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영화에서 제일 색감도 많이 들어가고 표현도 많았다. 그리고 현재는 이 모든 것을 다 겪은 엄마는 어떤 태도와 표현들을 사람들한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큰 프로젝트 영화를 소화했었는데, 이번에는 예산이 적은 제작 환경에서 촬영을 했다. 다른 점이 있었나.
“막상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프로젝트는 없었다. 하하. 그래서 그런 부담은 없었다. 예산이 크고, 작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느 정도 이 영화 안에서 끌어갈 수 있고, 관객들과 소통을 하면서 얼마나 이입을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마음이 크다.”

이나영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작품은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다. /이든나인 제공
이나영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작품은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다. /이든나인 제공

-6년 만에 스크린 컴백이다. 공백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복귀한 소감은.
“뭔가 6년이라고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나는 그냥 똑같았다. 오랜만에 보니 ‘인터뷰는 어땠냐, 현장은 설렜냐’고 (기자들이) 물어보는데 사실 설렐 겨를도 없었다. 대본 보고 감정 이입하느라 이렇다 저렇다 할 여유가 없었다. 현장은 항상 같다. 굉장히 많은 감정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다. 나도 어떻게 연기할지 모르기 때문에 던져보기도 하고, 신을 끝냈을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아쉬움도 있을 거다. 많은 감정이 교차되는 곳이 현장인데, 예전과 같았던 것 같다.”

-그동안 뭐하고 지냈나.
“그러니까 말이다. 쉬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계속 대본은 봤다. 시나리오들은 계속 읽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나 관객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작품들로 뵙고 싶었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많이 걸렸나? 하하. 자신 있게 내보이고 싶었다. 길어진다고 해서 더 애매한 걸 찾았다가 더 혼날 수도 있지 않나.(웃음) 어떻게 보면 속도의 차이일 것 같다. 빠를 때도 있고, 늦을 때도 있고. 계획할 수 없는 그때그때의 내 감성과 감정일 수 있고, 영화계의 상황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배우들이 실제 엄마가 되고 나면, 감정적으로 풍부해진다고 하더라. 이나영도 그런가.
“출산 후에 하필 ‘뷰티풀 데이즈’를 해서 잘 모르겠다. 하하. 엄마가 된 후라 이 작품을 할 수 있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였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분위기나 구성, 이런 것들이 좋았고, (엄마가 된 점이) 대본을 보는 데 있어서 영향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질문을 받고 생각을 해보면 마음에는 경험을 했던 것들이 있으니 들어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장동윤과 모자로 나왔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데, 엄마와 아들로 연기 호흡을 맞춰야 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게 어차피 떨어져 있는 아들이었고, 14년 만에 만난 어색한 관계라 괜찮았다. 그리고 각자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장동윤은 중국어 대사도 너무 많아서, 만나도 서로 대화할 시간이나 기회가 많지 않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라도 말을 걸면 장동윤의 감정에 방해가 될까 봐 하지 않았다. 첫 영화이기도 하고 더 긴장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을 시키기가 조금 그랬다. 오히려 연기하기에는 더 괜찮았다. 어차피 서먹한 관계니까. 하하. 끝나고도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최근 같이 방송 인터뷰를 했는데, (장동윤이) 잘 웃더라. 처음 봤다. 우리가 진짜 대화가 없었던 것 같다.(웃음) 오히려 이유준 배우나 오광록 선배랑 장난도 치고 편하게 지냈다.”

-후배보다 선배와의 관계가 더 편한 편인가.
“맞다. 집에서도 막내였고, 학교에서도 후배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나이 있는 분들은 내가 더 장난도 잘 치고 잘 친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어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괜히 더 존댓말 쓴다. 존댓말 하고, 극존칭 쓰고 그런다.”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는 후배 이종석과 함께 한다. 
“거기도 지금 극존칭 쓰고 있다. 하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부딪히는 신이 별로 없었다. 3회 차 같이 찍은 것 같다.”

-이종석이 이상형으로 이나영을 꼽아왔고, 최근에도 ‘성덕’(성공한 덕후를 줄여 부르는 말로,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해 있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이라는 표현을 했다.
“성덕이라고 얘기를 했나? 다행이다. 이상형이라고 얘기했다는데, 사실 옛날이야기고 이상형은 계속 바뀌는 건데 자꾸 몰아가면 (이종석이) 민망하지 않겠나 싶어서 (기자들한테) 자꾸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실망하지 않게 내가 더 열심히 하겠다. 실망하면 어떡하나.”

이나영이 남편이자 배우 원빈의 근황을 전했다. /이든나인 제공
이나영이 남편이자 배우 원빈의 근황을 전했다. /이든나인 제공

-남편 원빈도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다. 팬들이 궁금해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말이다. 그걸 왜 내가 자꾸 얘기해야 하는지, 억울하다. 하하. 그런데 원빈도 나랑 비슷했던 것 같다. 본인이 조금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시나리오들을 기다렸는데 그동안은 사실 많지 않았다. 본인도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올 거다.(웃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생활의 변화가 생길 텐데, 원빈의 반응은 어떤가.
“우리는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제일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내가 고민되는 지점들이 있거나 캐릭터에 대해 조언도 많이 구하는 편이다. 응원을 많이 해준다. 같이 대본도 잘 봤다.”

-실제 이나영은 어떤 아내고, 엄마인가.
“친구 같은 사람인 것 같다. 아기하고도 그렇다. 그냥 기본적으로 할 것을 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특히 양육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보니 주위 분들에게 그때그때 물어본다. 이 시기에 뭘 해야 하고 그런 것들. 알아가고 있다.”

-이나영 하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나 선입견이 있다. 말도 없을 것 같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털털한 모습이다.
“사람들이 다 내 목소리를 모르는 것 같더라. 하하. 사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배우이기 때문에 작품으로 보이는 것 같다.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내가 보이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진중하게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은 있다. 이미지 적으로는 예쁜 옷에 치마만 입고 말도 없을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편한 스타일이다. 사람을 만날 때 생각하면서 얘기하는 거 싫어한다. 그럴 거면 안 만난다. 하하.”

-연이어 두 작품으로 ‘열일’ 행보를 시작했다. 그런데 작품이 끝나면 또 공백기가 길어질까 걱정도 된다.
“내가 시나리오를 잘 잡아오겠다.(웃음) ‘뷰티풀 데이즈’ 같은 영화가 잘 되고, 한국 영화들이 한동안 안 그랬을 때가 있었지만, 지금 많이 다양해지고 좋아지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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