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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만나다
[사회적기업을 만나다⑦ 도서출판 점자] ‘6개의 점’으로 만드는 함께 사는 세상
2018. 11. 16 by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기 쉽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각종 공익단체나 활동가들은 늘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와 공익의 맹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와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에선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시사위크>가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점자책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점자>는 최근 한화그룹과 함께 점자달력을 제작하는 일로 분주하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모든 문자를 표현할 수 있는 6개의 점. 우리 주변 곳곳에 있지만, 우리에겐 잘 보이지 않는 점.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겐 한 줄기 빛과 다름없는 점. 바로 ‘점자’다.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 중 하나다. 사회적기업 <도서출판 점자>는 점자책, 점자 생활용품 등을 만들며 시각장애인과 세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3일 방문한 <점자>는 무척 분주한 모습이었다. 사무실 및 작업장 밖 복도는 쌓인 물건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바삐 움직였다. 박영자 <점자> 부장은 “1년 중 요즘이 가장 바쁜 시기”라며 기자를 맞이했다.

점자는 한화그룹과 함께 19년째 점자달력을 제작해오고 있다. 요즘은 내년도 달력 제작이 한창이다. 복도에 쌓인 물건들은 완성된 달력 또는 원자재였고, ‘한화봉사단’이라고 적힌 주황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달력 뿐 아니라 정부에서 제작하는 각종 점자안내책자 등도 연말인 이 시기에 물량이 집중된다고 한다.

작업장의 풍경은 연중 가장 바쁜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대형 출력기계는 점자가 찍힌 달력 낱장을 연신 내놓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맡은 일에서 눈과 손을 떼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점자가 찍힌 달력 낱장을 1년 치씩 모아 제본하는 일을 맡았고, 재단을 맡은 직원은 두껍게 쌓인 종이를 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눈에 봐도 숙련자로 보이는 <점자> 직원들은 묵점자혼용 ‘어린이 건강수첩’을 찍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해당 페이지를 점자 원판에 끼우는 손의 빠르기가 대단했다. 점자 명함을 찍어내는 작업 역시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층에서는 사전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필요한 내용을 점자로 변환하고, 점자 원판을 만들고, 완성된 점자 원판을 최종 확인하는 작업 등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렇게 <점자>에는 현재 약 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 중엔 여성의 비율이 높고, 장애인도 함께 한다.

바삐 돌아가는 작업장의 모습들. 주황색 조끼를 입은 이들은 한화봉사단 소속 자원봉사자들이다. /시사위크

<점자>는 크게 두 가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각종 점자책을 선보이는 출판브랜드 ‘BF북스’와 생활용품·문구브랜드 ‘따닥’이다.

점자책하면 일반인은 읽을 수 없는, 점으로만 가득한 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글자와 함께 점자가 찍혀있는 묵점자혼용책이 있고, 애초에 일반도서로 출판된 책에 투명한 점자 라벨을 부착하는 방법도 있다.

‘따닥’이 선보이는 제품들은 좀 더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점자샴푸통과 점자린스통이 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비슷하게 생긴 샴푸통과 린스통을 구분하기 힘들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생활 속의 크고 작은 불편함을 조금씩 덜어주고, 비장애인과의 격차를 좁혀주는 것이 ‘따닥’의 브랜드 정체성이다. 아울러 점자를 디자인화한 각종 문구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도 도모한다.

시각장애인인 김동복 <점자> 대표는 “점자가 우리 주변에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일반인들이 인지하지 못하듯, 시각장애인의 불편함과 어려움도 마찬가지”라며 “단순히 그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진정으로 함께 사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점자 명함을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점자 명함 갖기 운동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에요. 사실, 일반인들이 시각장애인을 만나서 명함을 줄 일이 많지 않겠죠. 하지만 비장애인들끼리도 점자 명함을 주고받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함께 사는 세상 아닐까요. 장애인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것을 넘어, 자연스럽게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이니까요.”

김동복 <점자> 대표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위크

하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다. 국내의 점자 수요는 5만 명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요는 적고 제작비용은 많이 들어 일반적인 시장논리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다. 사실, 점자 분야는 국가가 책임져야하는 영역에 더 가깝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민간영역이 이를 담당해왔다. <점자>역시 시각장애인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자체적으로 점자책을 만들어오다가 2009년 점자책 출판부문을 분리해 사회적기업으로 설립한 것이다.

<점자>의 수익구조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사회공헌 및 기부 활동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전반적인 인식 자체가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김동복 대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점자는 그저 형식적으로 기본만 갖추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을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며 “KTX나 비행기를 타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비치된 잡지책을 보곤 한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없지 않나. 도서관에 가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동복 대표는 “현재는 그래도 근근이 버티는 수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점자>는 설립한지 10년 가까이 되면서 모든 지원이 끊긴 상태다. 이들이 경영에 대한 걱정 없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을 만들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보다 세심하고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