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디지털 성범죄 수사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기존 유포자뿐 아니라 웹하드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방관자’ 역시 가해자로 인정받은 셈이다.
디지털 성범죄 수사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기존 유포자뿐 아니라 웹하드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방관자’ 역시 가해자로 인정받은 셈이다.

[시사위크=최수진 기자] ‘디지털 성범죄’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유포자뿐 아니라 이를 방관하는 플랫폼에 대한 수사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 같은 사회 변화가 일각에서는 ‘남녀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의 행보에 성 대결 프레임을 씌워 불필요한 논쟁을 낳고 있다.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 시작된 ‘플랫폼’ 수사, 이제야 인정된 ‘심각성’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에 ‘플랫폼’이 포함됐다. 불법촬영물의 유통 채널로 알려진 웹하드에 대한 수사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성범죄는 기존 유포자뿐 아니라 방관자까지 가해자가 됐다. 최근 자사 직원을 폭행해 논란이 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구속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경찰청은 ‘사이버 성폭력 사범 100일 특별단속’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8월 13일부터 시작된 단속은 이달 18일까지 진행됐다. 그 결과 △불법촬영자 △음란물 유포 사범 등 총 3,660명을 잡았고, 이 가운데 133명을 구속했다. 아울러 ‘플랫폼’에 대한 수사도 포함됐다. 경찰은 시민단체가 수사 의뢰한 536개의 △음란사이트 △웹하드 △헤비업로더 등을 집중 수사했다는 입장이다. 이 가운데 234개를 단속, 111명을 잡고 32명을 구속했다. 

특히, ‘국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에 대한 제재가 가해진 점도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간 해외에 서버를 둔 웹하드는 불법영상물 삭제 및 처벌이 어려워 피해자를 방치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수사에서는 국외에 서버를 둔 음란사이트 92개가 폐쇄됐다. 웹하드 운영자 역시 총 61명을 검거, 25명을 구속했다. 

웹하드 카르텔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자 나온 결과인 셈이다. 디지털 성범죄와 웹하드의 연관성 및 심각성이 최근 들어서야 인정됐다는 의미다. 경찰 역시 웹하드에 대한 문제를 ‘이제야’ 알게 됐다고 시인한 바 있다. 이날 민갑룡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불법 촬영 실태에 관심을 갖고 역량을 집중해 들여다보니 실태를 이제야 알게 됐다”며 “근절을 본격화할 수 있는 본궤도에 올랐다. 2단계 근절 대책을 세워 온라인에서 불법촬영물이 사라지는 날까지 역량을 보강, 발본색원하겠다”고 강조했다. 

◇ 웹하드 수사에 비판적 시각 존재… ‘여성’에 대한 인식 개선 필요

문제는 웹하드 수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불법영상물 유포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인터넷 검열’을 지적하고 있다. 일부는 ‘현실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혼자 해결을 하겠다는 건데 왜 처벌을 하느냐’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실제 성범죄를 일으키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영상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상황인 셈이다. 웹하드를 통해 다운받은 불법촬영물 영상이 실제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불법영상물 소비가 근절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실제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몰카 범죄에 대한 수사가 옳지 못하지 못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심지어 일부는 동영상에 나오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수사를 하냐는 질문까지 게재되는 상황이다. 인식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지난 7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을 대하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성문화에 대한 거시적인 측면에서도 인식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삭제, 처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여성’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대국민 인식 개선이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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