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IMF 당시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을 통해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전 국민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IMF 당시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을 통해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1997년 11월 21일,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IMF는 구제금융 지원 대가로 한국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꿔 놓을 개혁 조치를 요구했다. 12월 3일, 한국은 IMF로부터 550억 달러를 긴급 지원받으며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날은 한국 경제의 ‘국치일( 國恥日)’로 기억되고 있다.

전 국민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IMF 당시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을 통해서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경제 재난, 그 직전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담아낸 ‘국가부도의 날’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전한다.

1997년 최고의 경제 호황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그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곧 엄청난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을 예견하고, 정부는 뒤늦게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한 비공개 대책팀을 꾸린다.

곳곳에서 감지되는 위기의 시그널을 포착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분)은 국가부도의 위기에 투자하는 ‘역베팅’을 결심하고 투자자들을 모은다.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작은 공장의 사장이자 평범한 가장 갑수(허준호 분)는 대형 백화점과의 어음 거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

‘국가부도의 날’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전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국가부도의 날’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전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대책팀 내부에서는 위기대응 방식을 두고 시현과 재정국차관(조우진 분)이 강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시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IMF 총재(뱅상 카셀 분)가 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입국한다.

실제 외환위기 당시 비공개로 운영됐던 대책팀이 있었다는 한 줄의 기사에서 시작된 ‘국가부도의 날’은 ‘OECD 가입, 경제 선진국 반열,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등 온통 호황만을 알리는 지표 속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경제 재난과 그 직전 긴박했던 순간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일주일에 담아 재구성했다.

영화는 국가부도까지 남은 일주일의 시간 동안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 등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또 당시를 대변하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과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공감대를 자극, 몰입도를 높인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국가부도의 날’  허준호·유아인·뱅상 카셀·조우진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국가부도의 날’ 허준호·유아인·뱅상 카셀·조우진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IMF를 온몸으로 겪은 세대가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다. 고용불안, 청년실업, 빈부격차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알려주며 동시대적 공감대를 자극한다.

또 운명의 갈림길에 선 다양한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특히 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시현의 모습이 마음을 흔든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장 한시현은 모두가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이야기할 때 국가부도의 위기를 가장 먼저 예견하고 대책을 세운 인물이다.

한시현은 보수적인 관료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에 맞서 강한 신념과 전문성으로 위기 대응에 앞장선다. 현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소신을 내세우지만 반대에 부딪혀 좌절을 거듭한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 소시민들의 편에 서 촌철살인 직언을 내뱉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위기를 막으려는 한시현의 모습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한다.

‘국가부도의 날’ 한시현은 배우 김혜수를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국가부도의 날’ 한시현은 배우 김혜수를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시현을 여성 캐릭터로 설정한 점도 흥미롭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 관료사회였던 90년대에 이에 맞서 분투하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통해 영화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연출을 맡은 최국희 감독은 한시현을 여성 캐릭터로 설정한 것에 대해 “97년에는 여성의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게 더 보수적이었다”면서 “그래서 오히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여성 캐릭터라면 영화적 재미가 더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한시현은 배우 김혜수를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의지를 굽히지 않는 모습부터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김혜수는 한시현 그 자체다. 영화 말미 가슴을 치며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도 인상깊다.

김혜수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차관 역의 조우진은 흠잡을 곳 없는 연기력으로 악역을 완벽히 소화, ‘리얼’ 분노를 유발한다. 정학으로 분한 유아인도 특유의 에너지로 생생한 캐릭터를 완성,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서민 갑수 역을 연기한 허준호는 인간적인 모습부터 벼랑 끝에 선 가장의 위태로움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묵직한 여운을 안긴다. 러닝타임 114분, 오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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