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수는 연기 인생 32년을 자랑하는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배우 김혜수는 연기 인생 32년을 자랑하는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잠깐 방심해도 다 드러난다.” ‘대배우’ 김혜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연기 인생 32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해온 그는 이제 여유를 부릴 법도 한데, 여전히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매 작품, 맡은 역할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을 불태운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김혜수. 그가 오랜 시간 대중들에게 신뢰받는 비결이 아닐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은 또다시 진화한 김혜수의 진가를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국가부도까지 남은 일주일의 시간 동안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 등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국가부도의 날’에서 김혜수는 강렬한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극중 김혜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 팀장 한시현 역을 맡았다. 1997년 국가부도의 상황을 처음으로 알리고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김혜수는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 관료사회였던 당시 상황에서 굳건한 신념으로 의지를 굽히지 않는 한시현으로 완전히 분해 극을 이끈다. 김혜수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냉철한 연기력, 마음을 흔드는 눈물 연기와 능숙한 영어 실력까지 다채로운 매력으로 한시현을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해냈다.

김혜수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김혜수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개봉을 앞두고 <시사위크>와 만난 김혜수는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며 ‘국가부도의 날’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앞서 진행된 제작보고회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전율이 돋았다고 했다. 스크린으로 ‘국가부도의 날’은 만난 소감은.
“언론배급시사회 때 작품을 처음 봤다. 당연히 아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만들기로 시작하면서 끝까지 놓지 말자고 약속했던 부분이 지켜져서 좋았다. 노력한 점이 느껴져서 제작진들한테 고마웠다. (약속한 부분이) 하나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당시 상황을 뭔가에 치우치지 않게 그리면서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들에 중점을 맞추자고 했다. 그 아픈 시대를 소환하면서까지 왜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당시 IMF로 아픔을 겪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아픔을 다시 꺼내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
“그 당시 나는 괜찮았다고 느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 집도 타격이 있었고, 또 이유 없이 뭔가 막혀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거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다 받았던 것 같다. 자유로웠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조금 힘들었다가 아니라 이 일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갑자기 이사를 가거나 이민을 간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삶이 곤두박질치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영화로 다시 얘기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꼭 했으면 좋겠고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 누구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IMF를 지나왔고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때의 내막을 아는 분들은 많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그런 고통을 겪었는지, 아픈 시기를 복기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협상 내용도 시나리오를 보고 알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건 가공된 것이 아니었다.”

김혜수는 ‘국가부도의 날’에서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 한시현으로 완전히 분해 열연을 펼쳤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김혜수는 ‘국가부도의 날’에서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 한시현으로 완전히 분해 열연을 펼쳤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소재 자체가 주는 어려움도 있다.
“맞다. 경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생소한 용어와 단어로 구성돼 있어 걱정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말들이고 이해하기 힘든데, 보는 관객들이 따라와 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정확히 다 이해하고 가는 건 어렵겠지만, 감정이 있고 정황이 있으니 ‘저런 얘기를 하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작품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용어에 대한 부담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체할 수 없는 말이 아닌 것들은 경제 용어 중에서도 조금 더 읽힐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는 단어들로 교체했고, 평상시에 쓸 수 있는 말들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바꾸는 작업을 했었다.”

-실제 IMF 협상 팀에는 여성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한시현은 여성 캐릭터로 설정됐다.
“한시현 캐릭터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여성이 하게 됐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위주의 권력 구조 속에서 전투적인 입장을 취한다거나 하는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차관의 대사나 한국은행 선배들의 언행 등으로 이미 그려졌다. 그게 단지 여성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운 그 시대상 중  하나였다. 나는 한시현이 단지 자신의 자리에서 정말 묵묵하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그 캐릭터가 여성이 된 것뿐이다. 실제로 우리 영화는 제작자도 여성이고 현장 PD도 여성이었다. 주요 캐릭터도 여성이었는데 우리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단 한 번도 ‘멋있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자’고 얘기한 적은 없다. 한시현처럼 묵묵하게 우리의 일을 하다 보니 나름 괜찮은 여성 캐릭터가 남게 된 것 같다.”

-한시현이란 인물은 우리 사회에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멋진 캐릭터였다. 김혜수를 만나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된 것 같은데, 실제 본인의 의견이나 아이디어가 반영된 부분이 있나.
“당시 경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시현 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 같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조금 더 많았다면,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에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많은 의견들이 교환된다. 캐릭터에 대해서도 그렇고, 장면 전반에 대해서도, 감정이나 수위, 또 다른 가능성이나 이 상황을 벗어난 다른 것들 등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오간다. 나도 어떤 작품이든 최선을 다해서 의견을 많이 내고 듣는 편이다. 그리고 모두의 의견을 거쳐서 작품에 투영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내 의견이 아니지만 내 캐릭터를 구성하는데 좋은 단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김혜수가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밝혔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김혜수가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밝혔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조우진이 연기한 차관 역이 너무 얄미웠다. 실제 연기하면서 참기 힘든 장면이 있었나.
“눈물이 나온 적이 있었다. 한시현은 죽었다 깨도 울지 않았으면 했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감독한테 (눈물을 보인 장면을) 쓰지 말자고 했었다. ‘IMF 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온몸이 벌벌 떨리고 이가 갈렸다. ‘저런 인간(재정부 차관)을 고위 관료라고 상대하고 있구나’라는 감정도 있었고 치가 떨렸다. 또 조우진이 워낙 잘했다. 눈물이라는 건 너무 명확한 것이기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여자들은 감성적’이라는 차관의 대사처럼 말이다. 감정이 포함이 안 될 수 없지만,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어 연기도 인상 깊었다. 할리우드 진출 계획은 없나.
“크게 관심 없다. 빈말이 아니라 여기서 내꺼(내 것) 잘 하기도 힘들다. 자기 것 잘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잠깐 방심해도 다 드러난다. 해외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또 와도 못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목적이 있거나 그걸 염두에 두고  그러지 않는다. 그냥 나랑 별로 상관없는 얘기 같다.”

-‘국가부도의 날’를 본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를 안고 갔으면 좋겠나. 
“외환 외기 당시에 많은 분들이 그 시대를 관통했고, 그 시대를 모르고 성장한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우리가 모르는 내막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보는 분들마다 다채롭게 읽힐 수 있을 거 같다. 어떤 부분에 중점적으로 마음이 가는 분들도 있을 거고, 현실 감각이 깨어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 한 편을 통해서 나의 경험, 나의 생각, 나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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