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한국정치는 여전히 불모지다. 39세의 대통령을 탄생시킨 프랑스의 사례는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젊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게 아니라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유력 정치인들이 ‘청년’이라는 타이틀로 인재를 영입하지만 병풍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청년’ 타이틀을 거부하고 바닥부터 ‘상향식 정치’의 길을 걷는 젊은 정치인들도 있다. 좌충우돌한 이들을 통해 한국정치의 현실을 진단해봤다. <편집자주>

김빈 대변인은 20대 총선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뒤 민주당 더 컸 유세단에 합류해 지원유세에 나섰었다. /뉴시스
김빈 대변인은 20대 총선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뒤 민주당 더 컸 유세단에 합류해 지원유세에 나섰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김빈 민주당 허위조작정보 대책특위 대변인의 정치입문은 화려했다. 디자인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인데다가 나이도 81년 생으로 젊었다. 훤칠한 키와 시원한 마스크는 주위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가 20대 총선승리를 위해 준비한 영입인재였기 때문에 ‘뒷배’가 누구보다 든든했다. 김빈 대변인이 민주당 청년 몫 비례대표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당시에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에서도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신인에게 정치판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권력다툼이 극심했고, 그 와중에 김 대변인은 공천탈락이라는 유탄을 맞았다. 심사위원의 첨삭지도 논란으로 비례대표 공천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지만, 그래도 끝내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참신한 이미지로 정치권에 잠깐 왔다가 조용히 자신의 생업으로 떠나는 그렇게 흔한 용두사미식 결론으로 끝날 줄 알았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김 대표는 정치판을 떠나지 않고, 낙천자들이 모여 만든 ‘더 컸 유세단’에 합류했다. 개인적 이익은 없었지만 당의 승리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후 문재인 대선캠프, 민주당 디지털 대변인,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캠프 대변인, 민주당 허위조작정보 대책 특별위원회 대변인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방송에 출연해 상대진영 논객들과 논쟁을 벌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 공직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지 역시 분명하다.
 

“제 외모가 조금 차가운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시쳇말로 ‘싸가지 없을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실제 제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평소 무서워했던 중진 의원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공천 못 받고 바로 정치 그만둘 줄 알았는데, 계속 얼굴이 보인다. 다음에는 잘 됐으면 좋겠다.’ 일단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나. 더 겸손한 자세로 꾸준히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빈 대변인 /시사위크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빈 대변인 /시사위크

당원들과 부대끼며 얻은 밑바닥 정치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교훈이다. 정치의 기본은 당원·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임을 몸으로 배웠다. 사실 당 지도부나 유력 정치인에 의해 내리 꽂히는 정치인의 생명력은 길지 않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성공률이 그 방증이다.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중 20대 국회에 생환한 정치인은 5명 정도에 불과하다. 기본기와 내공은 하향식 정치 혹은 여의도 정치로는 결코 쌓을 수 없다는 게 정치판 진리다. 

“유세를 나갔는데 서울에서 뵀던 분이 먼 지방유세 때도 보였다. 알고 보니 트럭운전을 하시는 당원이신데 선거 때마다 생업도 놓고 지원을 해주시는 분이라고 하더라. 우리가 목이 마를 것 같으면 어느 새 음료수를 주시고, 출출하다 싶으면 김밥을 사다주셨다. 거친 일을 하셔서 그런지 손이 새까맣더라. 이런 분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게 정치의 기본이 아닐까. 요즘은 비례대표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이 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이 됐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경험을 많이 한다.”

최근에는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보다 명확하게 다듬고 있다. 장기를 살려 지자체들이 추구하는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계획에 자문을 하는 일이다. 작지만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처음부터 정치를 디자인해보겠다고 뛰어들었던 그다. 철학, 미학, 편의성 등의 관념을 현실로 구현하는 작업이 디자인이라면, 정치도 디자인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일반 당원으로서 당 조직에 대한 고민도 깊다. 정무조직과 운영조직이 함께 있는 현재 당 구조에서는 정무적 판단으로 인해 다른 문제까지 함께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비효율적인 구조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당원이다. 따라서 정무조직과 운영조직을 분리하고, 유능한 인재를 키워내는 양성시스템을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그는 말한다.

“민주당이 오래된 정당이지만 정치인 양성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저는 생계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기회도 있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역량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스템을 당이 갖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청년정치’라고 해서 특별한 취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설익었다’는 선입견과 함께 프레임에 갇혀 버린다. 나이를 떠나 정치인으로서 동등하게 기본을 쌓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