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오래된 난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추정치에 따르면, 하루 평균 낙태를 하는 여성은 3,000명에 달한다. 낙태가 대부분 음지에서 불법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은 점점 늘고 있다. ‘낙태죄는 이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출산은 국가가 정책으로 관리할 만큼 개인과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낙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우리사회의 미래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낙태죄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임신중절시술을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 처벌 형법 조항. / 그래픽=이선민 기자
임신중절시술을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 처벌 형법 조항. / 그래픽=이선민 기자 [사용된 이미지 출처:프리픽(Freepik)]

[시사위크=은진 기자] 6년 전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첫 번째 판단은 ‘합헌’이었다. 2017년 2월 낙태죄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재의 두 번째 판단은 2018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나오지 않았다.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췄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중략) 나아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 (2012년 헌재 결정문 일부 발췌)

6년 후.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2012년 합헌 결정을 내렸던 헌법재판관들은 모두 퇴임했다. 유남석 헌재소장은 후보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 초기 중절을 의사나 전문가 상담을 거쳐 허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입법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에 대한 국가의 태도도 전과는 다르다. 지난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3만명이 동의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청원 답변을 통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둘 중 하나만 택해야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며 “현행 법제는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있다”고 보다 진전된 입장을 내놨다. 다만 약속했던 임신중절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헌재 판단도 미뤄지면서 멈춰선 상태다.

◇ 비웨이브, 18차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비웨이브’(BWAVE)는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익명 여성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운동권도 아니고 정치적 세력과도 연대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모인 익명의 여성들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2016년부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11월 17일 열린 집회는 18번째 집회이자 2018년 마지막 집회였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3,000명이 참가했다.

드레스 코드는 ‘검정’이다. 여성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었던 폴란드의 ‘검은 시위’와 같은 맥락을 띤다. 이른 겨울이 시작된 데다 몇 시간을 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어야 하는 집회 특성상 롱패딩을 입은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익명의 여성단체 '비웨이브'(BWAVE)는 지난달 17일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18차 집회를 열었다. / 은진 기자
익명의 여성단체 '비웨이브'(BWAVE)는 지난달 17일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18차 집회를 열었다. / 은진 기자

주된 구호는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my body my choice)’다. 출산과 임신중단 모두 여성인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여성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출산하면 오로온다 8주 동안 피나온다’와 같은 임신·출산의 구체적인 경험을 담거나, ‘정부가 하면 배아폐기, 여성이 하면 낙태범죄’ ‘인간이 될 가능성이 낙태의 처벌근거?’처럼 낙태죄를 둘러싼 각종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이들의 요구는 낙태죄 폐지, 정확히 말하면 임신중단 합법화와 ‘미프진’ 도입이다. 참가자들은 ‘낙태약물 미프진을 도입하라’ ‘전세계가 사용하는 미프진을 수입하라’고 외쳤다. 미프진은 한 프랑스 제약회사가 개발한 경구용 임신중절약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미프진 복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구입과 복용 모두 원천 금지돼있다.

이들은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와 경구용 임신중절약인 '미프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 은진 기자
이들은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와 경구용 임신중절약인 '미프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 은진 기자

비웨이브 측은 “낙태죄는 세포에게 생명이라는 가짜 당위를 부여함으로써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의 개입과 통제를 허용하였다. 낙태죄 폐지는 여성해방을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인 경로”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임신중단이 전면 합법화되고 낙태죄가 폐지될 때까지 집회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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