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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의 낙인②] 음지로 내몰린 여성들
2018. 12. 18 by 은진 기자 jin9eun@sisaweek.com

낙태는 오래된 난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추정치에 따르면, 하루 평균 낙태를 하는 여성은 3,000명에 달한다. 낙태가 대부분 음지에서 불법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은 점점 늘고 있다. ‘낙태죄는 이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출산은 국가가 정책으로 관리할 만큼 개인과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낙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우리사회의 미래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낙태죄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 위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 위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위크=은진 기자] 인공임신중절을 ‘낙태죄’로 처벌하는 나라에서 여성은 사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특히 ‘출산장려정책’을 펴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대부분의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궁에 인위적으로 이물질을 삽입하거나, 여성이 독성이 있는 용액 또는 식물을 직접 섭취하는 등 위험한 낙태 시도가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유엔(UN)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안전하지 못한 낙태’를 여성 공중보건의 주요한 이슈로 다뤄왔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구트마허 인스티튜트의 ‘2017년 전 세계 낙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4년까지 매해 2,500만 건의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수술이 있었고 다수의 여성이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해당 보고서는 전 세계 산모 사망 중 8~11%가 임신중절과 관련이 있으며, 그 결과 매해 2만 2,800건에서 3만 1,000건에 이르는 ‘예방 가능한’ 사망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낙태 규제’가 폐지되면 모성사망(산모가 임신 또는 임신 관리로 인해 임신 또는 분만 중 사망하는 경우) 비율이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가 ‘낙태금지법’을 공표해 임신중절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가 모성사망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진 사례가 있다.

약 20년 동안 루마니아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66년 낙태금지법을 시행했다. 당시 루마니아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국가 생산력이 위기에 처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차우셰스쿠는 임신중절수술은 물론 콘돔 판매도 금지했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으면 세금을 물렸다. ‘낙태금지’를 넘어 출산을 강제한 이 정책은 1989년 12월 루마니아 혁명으로 폐기될 때까지 23년 간 지속됐다.

낙태금지법은 일시적으로나마 성공을 거뒀다. 이 법이 시행된 후 첫 4년 동안 여성 1인당 출산율은 2배 증가했고 인구 1,000명 당 태어난 신생아 수는 14명에서 21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피임과 임신중절을 금지할 뿐 여성과 아이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출산율은 4년 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1985년에는 법 시행 이전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루마니아 여성들은 의사에게 뇌물을 주면서 ‘위험한 낙태’를 감행했다. 1983년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낙태금지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1966년에 비해 7배 높아졌으며, 1989년에는 주변 국가인 불가리아나 체코보다 약 9배 높은 모성사망비를 보였다. 1989년 낙태금지법이 철폐된 다음해,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이전의 절반으로 감소한다. 낙태금지법과 모성사망의 직접적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통계다.

◇ 낙태유도제 불법판매량 증가율 ‘1위’의 의미

우리나라는 다를까. 독재자의 서슬 퍼런 ‘출산강제정책’은 없지만, 여전히 ‘낙태’는 범죄다. 그렇다보니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임신중절유도제로 눈길을 돌린다. 이 역시 불법이다. 제조·유통경로도 명확하지 않고 정식 의약품 여부도 알기 어려운 약물이지만, 선택권이 없는 여성들에겐 유일한 출구다.

자료제공=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제공=식품의약품안전처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출받은 의약품 온라인 불법판매 적발실적 자료에 따르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은 임신중절유도제(낙태유도제)다. 2016년에는 193건으로 전체 적발건의 0.8%에 불과했으나, 2017년에는 1,144건으로 6배 가량 급증해 4.6%를 차지했다. 올해(1~9월 기준)에는 이미 1,984건(9.2% 차지)이 적발됐다. 적발되지 않은 거래량을 감안하면 훨씬 많은 불법 약물이 유통되고 있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임신중절유도제 불법판매량의 급증은 2016년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복지부는 의사 면허 자격 정지 대상인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을 포함시켰다. 임신중절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자격을 12개월 동안 정지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후 산부인과 의사들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전면 거부하는 등 의료계의 반발이 있자 자격 정지 기간을 1개월로 축소했지만, 반발은 여전하다.

음성적인 방법으로도 임신중단을 할 수 없게 된 여성들이 ‘낙태유도제’를 온라인에서 구매하면서 2016년과 2017년 사이 해당 약물의 불법판매량이 급속하게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여성들의 건강이다. 남인순 의원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은 제조·유통경로가 명확하지 않아 부작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낙태유도제가 정식 의약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여성들의 건강에 위험이 되고 있다”며 “정부는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제도적 대책을 논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낙태죄 헌법소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 보낸 의견서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부정하는 행위는 여성 및 소녀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며 “낙태를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법률에 따라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하고 그 권리가 보호될 때 국제법상 의무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