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오래된 난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추정치에 따르면, 하루 평균 낙태를 하는 여성은 3,000명에 달한다. 낙태가 대부분 음지에서 불법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은 점점 늘고 있다. ‘낙태죄’는 이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출산은 국가가 정책으로 관리할 만큼 개인과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낙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우리사회의 미래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낙태죄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국가는 인구통제를 목적으로 임신중절에 대한 허용범위를 조정해왔다. 하지만 여러 통계가 보여주듯 임신중단율과 출산율은 관계가 없다. / 뉴시스
국가는 인구통제를 목적으로 임신중절에 대한 허용범위를 조정해왔다. 하지만 여러 통계가 보여주듯 임신중단율과 출산율은 관계가 없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앞서 루마니아의 사례처럼 ‘낙태죄’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국가의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프로라이프’(Pro-Life) 진영에서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를 쉽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인공임신중절을 낙태죄로 규제하고 있는 나라와 허용하고 있는 나라의 출산율만 비교해 봐도 이 같은 인식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중 25개국이 여성의 요청으로 인한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처럼 임신중단 시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한 국가는 스페인, 일본, 캐나다, 터키, 핀란드 등 5개국 뿐이다.

프랑스는 착상 후 10주까지 본인 요청에 의한 임신중단이 가능하며 10주 이후부터는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 스웨덴의 경우 임신 18주까지는 여성이 원할 경우, 이후에는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으면 낙태가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아예 기간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의 합계출산율(2016년 기준)은 1.79~1.89명으로 한국(1.17명)보다 높다.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의 수를 말한다. ‘낙태죄’를 저출산 대책으로 활용해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낙태죄’는 지금껏 국가가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이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에서 드러나듯 ‘산아제한’ 정책은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암암리에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OECD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유럽·미국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임신중단을 인구문제가 아닌 여성인권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성이 살기 편한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2016년 기준 OECD 회원국 합계출산율 비교표. '낙태죄'를 두고 임신중절을 불법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비해 여성의 요청에 의한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의 출산율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뉴시스​
​2016년 기준 OECD 회원국 합계출산율 비교표. '낙태죄'를 두고 임신중절을 불법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비해 여성의 요청에 의한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의 출산율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뉴시스​

◇ ‘낙태’를 하고 싶은 여성은 없다

“‘낙태’를 처벌하지 않으면 ‘낙태’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낙태죄 폐지 반대 진영의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오히려 인공임신중절을 불법화하고 있는 남미 등지에서 성교육 부재와 피임도구 미비로 인한 불법 임신중단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구트마허 인스티튜트가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임신중단 실태를 분석한 2017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낙태죄’로 임신중단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나라의 임신중단율이 가장 높았다. 여성 1,000명당 임신중단 건수를 비교했을 때 스위스는 5건으로 가장 적었다. 스위스는 임신 10주까지 여성의 선택에 따라 임신을 중단할 수 있다. 반면 ‘낙태죄’를 두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28건으로 높았다. 역시 임신중단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50건으로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강한 규제는 낙태를 없애지 못한다. 단지 위험한 낙태를 만들 뿐이다”라며 “낙태 경험이 불임 위험을 높이지 않는다. 임신성 고혈압, 이상 태반형성증, 유방암, 조산 등의 확률을 높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낙태죄’로서 임신중단을 불법화하고 있는 국가들은 정확한 통계가 없어 비교가 어렵지만,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국가들의 임신중절 비율은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오스트리아는 1.2%, 네덜란드는 10.1%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15.8%보다 낮았다. (우리나라 임신중절 추정 건수는 2010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따름)

임신중단율, 즉 ‘낙태율’은 낮은 피임률, 성차별적 사회구조, 비혼인 부모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 과도한 양육비용, 실질적인 보육 지원 제도의 부재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 ‘낙태죄’는 임신중단을 음지로 몰아넣어 ‘위험한 낙태’를 만들뿐 임신중단 자체를 막지 못한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올해 발간한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현행법상 낙태는 거의 전면적으로 금지되기에 상담제도 등의 마련은 물론 낙태 관련 규정의 정비도 부족할 뿐 아니라 비의료기관 혹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의료적 환경에서 음성화된 시술이 만연됨으로써 임부의 건강·생명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며 “결국 강력한 낙태 규제가 위험한 방법으로 낙태를 하도록 내모는 형국이라 볼 수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임신중단을 제도적 관리의 영역으로 ‘양성화’하는 것이 임신중단비율을 낮추고 여성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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