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47개의 병상을 갖춘 ‘영리병원’ 허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관광산업과 지역사회 활기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주장과 국내 건강보험체계를 무너뜨릴 구멍이 될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16년에 달하는 영리병원 도입 연혁부터 찬반 논란까지 이슈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지난해 말 착공까지 마치고 제주도의 마지막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녹지국제병원. /뉴시스
지난해 말 착공까지 마치고 제주도의 마지막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녹지국제병원.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영리병원 찬성 측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 활성화다. 저가덤핑 관광이 아닌, 고급 의료관광을 통해 부가가치를 키우고 일자리 창출 등 파급효과를 이어갈 수 있다는 논리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사드 배치 이후 크게 감소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제주도청과 제주개발공사(JDC) 등 찬성 측의 자료를 먼저 살펴보면, 녹지국제병원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전체 건축면적은 5,546㎡다. 1층에는 미용·성형 센터, 2층 국제검진센터를 두고 3층에는 총 47병상의 병실을 구비했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로 한정했으며 기본적으로 외국인만 진료가 가능하다. 전체 운영인력은 의사 9명, 약사 1명, 간호사 28명을 포함해 총 134명이며 이미 일부 인력을 운용 중이다. 투자비는 녹지국제병원에 한정해 약 778억원이다.

◇ 의료관광객 1만 명 vs. 가격경쟁력 없다

타깃은 미용의료와 관광을 동시에 즐기려는 목적의 ‘의료관광객’이다. 47병상을 100% 가동한다는 가정 하에 연 1만 명의 의료관광객이 제주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에 더해 이들이 쇼핑과 관광을 즐길 경우,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힐링호텔, 안티에이징 센터, 쇼핑몰 등을 결합한 1조5,000억원 규모의 헬스케어타운 사업을 추진 중인데, 녹지병원은 그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예상되는 전체 경제적 파급효과는 5조5,000억원이며 직접고용 4,108명을 포함해 고용유발효과가 3만 명을 넘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47개 병상이 1년 내내 가동이 되면 1만 명 정도가 오게 된다. 피부, 성형, 건강검진 등을 하려는 고급 관광객이 온다”며 “녹지그룹이 국제적인 기업인데 임직원들만 와도 유지가 가능하다는 게 대략적인 계산이다. 너무 크게 시작했다가 실패할 수 있을 것을 염려해 보건복지부에서 허가할 당시 47병상으로 규모를 최소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약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의 예측은 비관적이다. 병원의 가격경쟁력이 태국, 인도 등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 떨어진다는 게 첫 번째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나은 한국의 경제수준과 높은 인건비, 물가 등이 원인이다.

영리병원의 수익모델은 제조업 공장과 마찬가지로, 지대와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 의료기술을 접목해 외국의 환자들을 유치하는데 있다. 고가의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미국의 시민들이 비슷한 의료서비스를 받으면서도 저렴한 동남아를 찾았기 때문에 태국과 싱가포르의 영리병원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

제주도 천혜의 관광자원과 결합하더라도 그 효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치료를 목적으로 해외 영리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특성상, 가격경쟁력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요인은 크게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싱가포르 최대 영리병원인 파크웨이 그룹이 태국의 영리병원 등에 밀려 더 이상 싱가포르에 영리병원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그 근거로 든다.

영리병원 공론조사 당시 JDC(찬성 측)에서 제시한 헬스케어센터 경제유발 효과 및 예상 고용효과
영리병원 공론조사 당시 JDC(찬성 측)에서 제시한 헬스케어센터 경제유발 효과 및 예상 고용효과. /녹지병원 공론화 자료집

◇ 소송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가운데, 적어도 경제효과와 관련해서 어느 쪽도 확답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국부유출 금지 명령으로 녹지그룹의 국내 투자가 막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주도 측의 낙관적 전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큰 경제효과를 바라기에는 47석의 병상 규모도 너무 적다. 반대 측 역시 경쟁력 분석에 한류문화와 국내 성형 의료기술 등 요인을 반영하지 않은 면이 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제주도의 국제 신뢰도를 지키고 녹지그룹으로부터의 손해배상 소송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정부의 허가를 내고 외국인 투자를 받은 사업을 중단시킬 경우, 다른 투자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녹지그룹은 명확한 사유 없이 개설허가를 내지 않을 경우 제주도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손해배상액은 대략 800억 원 내외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 내용을 취재해온 제주지역의 한 언론인은 “1호 영리병원이라고 해서 전국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실은 병상 47개의 아주 작은 규모다. 헬스케어타운 사업 전체예산의 10%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우리 당국의 요구대로 법적 절차를 밟아온 녹지그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조그마한 녹지병원 한 개 때문에 전체 사업의 발목이 잡히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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