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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익숙해도 질리지 않는 ‘유해진’의 힘
2018. 12. 27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유해진이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로 ‘열일’ 행보를 이어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유해진이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로 ‘열일’ 행보를 이어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킬러에서 형사로, 형사에서 택시 운전사로, 택시 운전사에서 변호사로….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 맡은 작품마다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들어 인물, 그 자체가 된다. 이번엔 까막눈이다. 소매치기를 일삼는 건달에서 ‘우리말 지킴이’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스크린 속 그의 얼굴은 새롭지만, 익숙하고 익숙하지만 질리지 않는다. 어떤 역할이든 ‘유해진스러움’을 잃지 않기 때문. 배우 유해진이 빛나는 이유다.

유해진이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로 ‘열일’ 행보를 이어간다. 올해 ‘레슬러’(감독 김대웅)와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으로 관객과 만난 그는 내년 1월 9일 개봉하는 ‘말모이’로 돌아온다.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로 조선말 큰 사전의 모태가 된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자 극중에서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비밀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극중 유해진은 감옥소를 밥 먹듯 드나들다 조선어학회 사환이 된 까막눈 김판수 역을 맡았다. 한심한 가장이면서 먹고사는데 급급했던 판수는 조선어학회에 들어가면서 글에 눈을 뜨게 되고, 누구보다 열심히 우리말 지키기에 임한다. 그의 변화와 뭉클한 성장은 ‘말모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럭키’(2016)·‘공조’(2017)·‘택시운전사’(2017)·‘완벽한 타인’(2018)까지 이미지 반복 없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온 유해진은 ‘말모이’에서도 판수 그 자체로 분한다.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매력은 물론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유해진은 ‘말모이’에서 감옥소를 밥 먹듯 드나들다 조선어학회 사환이 된 까막눈 김판수 역을 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해진은 ‘말모이’에서 감옥소를 밥 먹듯 드나들다 조선어학회 사환이 된 까막눈 김판수 역을 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유해진은 “어떤 작품이든 잘 녹아드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영화는 만족스러웠나.
“비밀이다. 하하. 좋게 본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것도 있다. 알고 보니까 객관적으로 평가는 못하는 시간인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것을 다른 분들 그렇게 안 느끼더라. 너무 다 알고 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잘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작품이 그렇긴 하다. ‘말모이’는 엄유나 감독이 나를 그리면서 썼다고 하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하면 괜찮겠다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서 하게 됐다.”

-배우로서 도전 의식이 생겼던 작품은 아니었나 보다.
“어느 작품이든 잘 녹아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매 작품이 도전이다. 특별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 작품이 도전이었다고 하는 것보다, 남들이 보기에 ‘유해진의 모습 같아’라는 것 역시 나한테는 도전이다. 매 작품이 그렇다. ‘안 어울리던데, 따로 놀던데’라는 소리가 제일 위험하다. ‘잘 녹아있었다, 그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라는 말을 듣고, 좋은 얘기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엄유나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첫 작품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것도 많고 그랬는데 마음을 열고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엄유나 감독은) 항상 본인을 낮춘다. 귀는 열려있고,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영화(‘말모이’)하고 색깔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든다. 뚝심 있고, 뚝배기 같은 느낌이 있다. 연출은 아무나 못한다고 생각한다. 창작도 그렇지만, 부딪혀야 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것을 다 이겨내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유해진은 ‘말모이’에서 윤계상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해진은 ‘말모이’에서 윤계상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말모이’는 김판수라는 인물의 성장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글을 몰랐던 사람이 (글을) 알게 되는 것과 무지하고 한심한 사람이 아버지로서 변화하는 과정, 두 가지에 초점을 뒀다. 알아가는 과정이 무리하지 않게 그려지길 바랐고 그러면서 글을 지키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또 아버지로서의 역할들, 그런 것에 중점을 뒀다.”

-판수와 정환의 관계도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다. 윤계상과 ‘소수의견’ 이후 두 번째 만남인데 호흡은 어땠나.
“판수는 평면적인 인물이다. 감정을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 됐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그런 인물이었다. 윤계상이 연기한 정환은 감정을 숨겨야 하는 인물이라서 쉽지 않았다. (윤계상이) 상당히 독하게 파고들더라. 내가 도움을 준 건 없는 것 같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본인이 나서서 다시 하더라.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구나 생각했다. ‘소수의견’ 때보다 훨씬 깊이감이 생긴 것 같다. 더 익은 것 같다.”

-판수가 정환에게 조선어학회에 나오지 못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두 배우의 연기가 마음을 울렸다.
“힘든 촬영이었다. 감정적으로. 꺼내기가 힘든 말이다. ‘미안해요, 힘들 때 이래서’라는 그 말을 찾아낸 게 나름대로 좋았다. (대본에 있었던 대사가 아니었나?) 다른 건 다 대본에 있었는데, 그 대사는 내가 만든 거다. 그 말을 찾고 나서 기분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상대한테 미안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고 그 말에 많은 미안함이 담겼다고 생각이 들었다.”

-‘말모이’는 다른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들과 달리 말을 모은다는, 정적인 소재를 담았다.
“우리 것, 우리의 정신, 우리의 말, 무형의 것을 소재로 해서 독립운동의 또 다른 면을 그렸다는 게 되게 매력적인 것 같다. 항쟁도 중요하고, 투쟁도 중요하지만, 이런 또 다른 면의 투쟁이 있었다는 것도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지키는 거였으니까.”

유해진이 ‘말모이’를 찍으면서 우리말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해진이 ‘말모이’를 찍으면서 우리말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촬영을 거듭할수록 사명감을 느꼈다고.
“되게 소중하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시나리오에) 쓰여있는 것만 보다가 원고가 없어졌을 때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절망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촬영이 끝났는데도 안 움직여지더라. 주저앉는 모습을 봤을 때 진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말 힘들게 우리말을 지켜왔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니까 저 정도지 훨씬 더 많이 희생했을 거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보다 촬영을 하면서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하게 됐다.”

-판수의 성장과 함께 배우 유해진도 성장한 게 있다면.
“크게 없다. 하지만 한글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가끔은 한다. 현장에서만큼이라도 덜 써야지 했다. 나름대로 매번 했던 것 같다. ‘말모이’ 촬영할 때는 다들 외래어들을 덜 쓰자고 했었다. 워낙 많지 않나. 엄청 많은데 안 쓰려고 노력했다. 웃으면서 시작했다가 자리 잡은 경우다.”

-‘말모이’만의 매력을 꼽자면.
“순한 영화인 것 같다. 내 딸 순희(박예나 분) 같은 영화, 순둥이 같은 영화. ‘말모이’가 새해 첫 영화더라. 하루로 쳤을 때 아침이다. 아침은 자극적인 거 말고 순한 거 먹어야 한다. 순두부 같은 거 든든하게 드시고 출발을 하는 게 좋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