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몰카가 유포되고 있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가 놀이의 일종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뉴시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몰카가 유포되고 있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가 놀이의 일종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뉴시스

[시사위크=최수진 기자]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나섰다. 처벌을 강화하고 국민인식개선 캠페인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불법영상물을 죄책감 없이 온라인에 유포하는 상황이다. 한 인간의 삶을 망치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놀이’에 불과한 상황이다.

◇ 또 발생한 몰카 범죄… ‘일베’서 불법촬영물 유포돼 

이른바 ‘몰카’로 불리는 불법촬영물 유포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6일 성폭력처벌법 위반(비동의촬영, 유포 및 동의촬영, 비동의유포) 혐의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사용자 1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발생한 , 이른바 ‘일베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다. 

문제를 일으킨 사용자들은 지난 11월 18일부터 다음날까지 일베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강조 촬영한 사진을 올린 바 있다. 일베 내에서 ‘여친 인증’ 혹은 ‘전여친 인증’이라고 불리며 해당 시간대에만 수십명의 사용자가 몰카를 유포했다. 일베에 게재된 여성의 나체 사진을 본 또 다른 사용자가 피해자에 대한 성적인 발언을 하는 등 2차 가해까지 이뤄졌다. 이후 11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일베 몰카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하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20만2,548명의 동의를 받는 등 사태가 심각해졌다. 

경찰은 11월 22일 내사에 착수, 일베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이후 몰카를 유포한 이용자 15명을 특정했고 이 가운데 13명을 검거했다. 나머지 2명은 추후 조사를 통해 추가 입건한다는 계획이다. 검거된 피의자들은 모두 남성으로 확인됐다. 연령대별로는 △20대 8명 △30대 4명 △40대 1명 등이다. 직업은 대학생이거나 회사원이다. 검거된 13명 중 6명은 직접 촬영한 여자친구의 사진을 유포했고, 나머지 7명은 인터넷에 게재된 여성의 사진을 일베 사이트에 재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 몰카, ‘놀잇감’ 된 실태… 인식 개선 필요한 까닭

문제는 이들 피의자가 일베에 몰카를 유포한 이유다. 경찰에 따르면 13명의 사용자 모두 온라인에서 관심을 받고, 사이트의 회원 등급을 상향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단순 재미를 위해 누군가에 영구적인 피해를 준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로 풀이된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가 ‘놀이’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 영구적인 피해를 안긴다. 인터넷의 빠른 전파성 탓이다. 삭제된 영상이 다른 사이트에서 재유포될 가능성이 높아 한번 유포된 몰카의 완전한 삭제는 어렵다. 이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피해는 평생 지속되며,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에 피의자 처벌 강화뿐 아니라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8월부터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국민인식개선 캠페인 ‘불법촬영은 범죄입니다. 보는 순간 당신도 공범입니다’를 경찰청,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전개하고 있다. 최창행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은 지난 8월 “국민들께서 불법촬영물을 내려 받거나 보는 행위 자체에도 심각한 경각심을 가져야 정부가 불법촬영물 촬영과 유통의 고리를 끊고 디지털 성범죄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다”며 “온 국민이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사회적 해악을 고려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반드시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베에서는 ‘여친 인증’ 사태 이후 이들 피의자들이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무혐의 매뉴얼’까지 공유됐다. 몰카 유포로 여성의 삶에 피해를 입혔지만 반성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류혜진 팀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일베뿐 아니라 다양한 성인사이트에서 영상이 유포되고 있다”며 “성폭력 피해촬영물이 온라인에서 포르노처럼 소비된다. 피해영상물을 통해 성적 판타지를 펼치고 있다. 남성들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번 일베 사태에서도 확인 가능하듯 단순 재미, 유명세 등을 이유로 무작위로 몰카를 유포한다. ‘몰카 유포’ 자체가 놀이 문화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류혜진 팀장은 “10대 사이에서도 이런 행위가 벌어진다”며 “이런 영상들은 한번 퍼지면 영구 삭제가 불가능하다. 온라인 공간에 한번 게시된 영상은 계속되지만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못한다. 그들이 행위가 한 여성의 인격에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법, 정책 보완뿐 아니라 디지털 윤리교육, 디지털 젠더 감수성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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