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이 일부 네티즌들의 ‘놀이터’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청와대는 ‘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개편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시사위크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이 일부 네티즌들의 ‘놀이터’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청와대는 ‘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개편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시사위크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청와대가 국민청원 게시판 개편에 나선다. 한 달여간 개선 방법에 대해 논의한 청와대는 ‘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개편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그동안 청원 게시판이 일부 네티즌들의 ‘놀이터’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장난식 청원’은 물론 윤리적 논쟁을 낳은 글들도 왕왕 있었다. 국민 아이디어 공모 발표가 있기 전인 지난 11월, 청와대는 대략적인 개선 방향을 밝힌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현행 게시판을 유지하되 ▲청원인 실명 확인 ▲청원 내용 공개 기준 강화 ▲권한 외 사안에 대해 답변 거부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원 실명제는 지속적으로 요구돼 왔던 내용이다. 이외에도 청원 자동 입법화 도입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만 아이디어 공모 방식으로 개편 방향이 결정된 만큼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짚어볼 필요는 있지만... 분노가 만든 청원들

하루에도 1,000여건의 청원이 올라오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때문에 일부 청원 중에는 청원 사안으로 부적절하거나 황당한 내용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아무리 부적절한 청원이라도 20만 명의 동의를 얻을 경우, 청와대는 답변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청원의 답변은 대부분 “정부가 할 수 없다”거나 “현행법상 불가하다”,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답변뿐이었다.

현행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용 요건. 욕설이나 명예훼손 등 명백히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내용상 제안은 없다. /시사위크
현행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용 요건. 욕설이나 명예훼손 등 명백히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내용상 제안은 없다. /시사위크

대표적 사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항소심 재판장의 판결문에 대한 특별감사 청구가 20만 명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당시 청와대는 이 같은 내용을 법원에 전달, 사법부 독림 침해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평창올림픽에 출전했던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 청원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 청원 ▲국회의원 급여 최저시급 책정 청원 ▲네이버 수사 촉구 청원 ▲TV조선 종편 허가 취소 청원 등도 모두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던 청원들이다. OOO 의원(또는 장관) 사퇴 촉구, OOO 회장 구속 촉구, 갑질 제보형 청원 등도 대부분 분풀이 청원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갑질 제보형의 경우 작성자도 아닌 사람이 청원자로 의심받아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외에도 20만 건 동의를 받은 청원 중 디스패치 폐간 청원이 ‘황당 청원’으로 꼽히고 있다. 문제는 장난 식 청원을 포함해 하루에도 워낙 많은 청원이 쏟아지면서 정작 중요한 청원이 묻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글이나 극단적인 정치적 주장글도 문제가 되고 있다. ‘다음 정권은 극우정당이 들어서야 한다’는 청원글도 이에 해당한다. ‘이수역 폭행사건’은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20만명에 돌파,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사건은 쌍방 폭행으로 결론 났다.

실명제? 자동 입법화?... 달라질 청원 게시판

이런 문제 때문에 최근 청원 게시판을 실명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도 일부 청원자들은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글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익명으로 올리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폭로글이나, 장난식 청원, 황당 청원들이 난무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현재의 20만 명보다 동의자 기준을 높이되 기준에 충족될 경우 정부 입법으로 법안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그간 2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 중에도 청와대 권한 밖이라는 이유로 의미 없는 답변을 반복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일각에서는 형사사건 피해자들의 청원은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만큼, 답변을 거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리얼미터가 조사한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한 설문조사. 60% 이상의 응답자가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들 중 40%는 운영 방식이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시사위크
지난 6월 리얼미터가 조사한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한 설문조사. 60% 이상의 응답자가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운영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 중 40%는 운영 방식이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시사위크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의 개편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상담 역시 해결해주기 위해 듣는 게 아니고 공감하고 위로해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나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도 없고, 국민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윤창호법 같은 경우 국민청원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처럼 술 권하는 사회에서 통과가 됐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면 그렇다고 답하면 된다. 해결은 못해줘도 민심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만 반드시 답변을 정부 부처가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다양한 전문가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말하는 것을 막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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