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운영 1년 4개월을 맞아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그간 청원 게시판은 수많은 이슈를 낳았고, 실제 법안까지 끌어내는 등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운영 1년 4개월을 맞아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그간 청원 게시판은 수많은 이슈를 낳았고, 실제 법안까지 끌어내는 등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하겠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도입 초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식부터 파격행보를 이어갔던 문재인 정부는 그해 8월 청와대 홈페이지를 대대적으로 개편, 지금의 국민청원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민들이 청원을 올리고, 일정 기준(20만 명)의 동의를 얻을 경우 관련 정부 부처에서 청원에 답변을 한다는 것.

‘소통’만 본다면 과거에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 있었다. 수차례 개편으로 지금은 볼 수 없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게시판이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 직전까지 시민들과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국정현안에 대한 개인적 의견은 물론 사회문제와 세상살이까지 주제는 제한이 없었다.

물론 해당 게시판 글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관심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전직 대통령과 네티즌들의 소통은 과거엔 본 적 없던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출범한 정권들에서는 재임 시절에도, 퇴임 후에도 소통 부재로 줄곧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의식하듯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 투명한 국정운영을 약속했다. 수석 회의에서도 ‘받아쓰기’가 금지되고 토론이 열렸다.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운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을 도입했다. 청와대 내에서도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보고를 해야 했던 ‘밀폐 정치’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것. 국민청원 제도는 국민들이 지적·제안하는 각종 현안에 청와대가 직접 답변을 함으로써 ‘개방 정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 청원에 답변한 장관, 수석, 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의 명단. /시사위크
국민 청원에 답변한 장관, 수석, 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의 명단. /시사위크

20만 명 기준 충족해 답변 받은 청원 68건
“민의 수렴 장점... 과잉 민주주의 문제도”

시민들의 관심은 정말 뜨거웠다. 20만 명 동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기준을 충족해 청와대의 답변을 받은 청원글은 지난 26일 기준 68건이나 된다. 답변에 나선 정부 부처 관계자만 총 25명. 일부는 비슷한 주제의 청원마다 재차 출연해 답변을 하기도 했다.

장관부터 민정수석, 경찰청장 등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단독으로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장면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열리는 브리핑 자리나 청문회 등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더욱이 국민청원 답변 자리는 ‘아니면 말고’식 공약을 하는 자리도, 상대의 질책에 ‘잘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청문회도 아니다. 답변된 청원 내용은 곧 개선이 될 것이란 기대가 형성이 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감은 아직까지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도입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하루 평균 약 1,000개의 청원글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청원 게시판은 하루 한 번씩은 방문하는 곳이 됐다. 다룰만한 내용은 동의수와 관계없이 기사화되기도 한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온라인 여론의 바로미터’로 불렸던 다음 ‘아고라’ 게시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4년 만이다. 아고라는 토론 게시판과 대표 서비스인 청원 게시판을 운영했다. 카카오 측은 “온라인 환경 변화로 소통방식이 변함에 따라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관심이 지나치다보니 여러 문제점들도 나타났다. 장난식 청원글과 분풀이 청원글, 황당한 청원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글, 청와대 권한이 아닌 사안 등 무분별한 민원들이 대표적인 예다. 청와대 역시 현재 국민청원 게시판 개편에 돌입한 상태다. 내년 초에는 달라진 게시판을 이용하게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청원게시판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 측면은 있다면서도 자칫 ‘청원 만능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보통 선거가 끝나면 민의 수렴 노력이 많이 떨어지는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선거와 관계없이 여론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심신미약에 대한 논쟁이나 윤창호법 도입 등 사회에 경종을 불러일으킨 점은 분명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그간 진전돼온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행태를 보였던 점에서 긍정적인 기대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체계적이지 않은 운영은 자칫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과잉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청원 1호 답변에 나선 조국 민정수석. 진행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맡았다. 이날 조국 수석 외 김수현 당시 사회수석(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참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국민청원 1호 답변에 나선 조국 민정수석. 진행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맡았다. 이날 조국 수석 외 김수현 당시 사회수석(현 청와대 정책실장)도 참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는 순기능은 적극 수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나쁜 친구 온다고 놀이터 문을 닫을 순 없다”는 비유를 들었다. <시사위크>는 ‘국민청원 그 후’ 기획을 통해 청와대 청원게시판의 순기능과 특이점, 문제점을 돌아보고 개편될 청원게시판의 새로운 모습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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