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짓고’는 오랫동안 우리 건축사를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낡은 건물이 있으면 깨끗이 밀어버린 후 최신식 건물을 올리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문화생활과 휴식, 친환경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으면서 기능을 잃은 산업시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폐산업시설 재생사업’이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에선 이제 막 기지개를 켠 폐산업시설 재생사업의 현주소를 <시사위크>가 살펴봤다. [편집자주]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업사이클 전시실과 교육장은 물론, 업사이클 상품을 판매하는 '업사이클 마켓'과 방문객을 위한 휴게시설도 갖추고 있다. /시사위크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업사이클 전시실과 교육장은 물론, 업사이클 상품을 판매하는 '업사이클 마켓'과 방문객을 위한 휴게시설도 갖추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경기도 광명시의 업사이클아트센터는 지난 5년여 간 문화체육관광부의 주관으로 시행된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중 ‘유일하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5년 6월 개관한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그 독창성을 바탕으로 SNS를 통해 인지도를 넓히는데 성공했고, 지금은 국내 업사이클러들의 메카로 통한다. 아트센터는 플라스틱 제품을 활용한 전시회는 물론,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건축 체험실습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시실 한편에는 지역 활동가들이 만든 업사이클 상품을 판매하는 ‘업사이클 마켓’도 마련돼 있다.

성공의 배경에는 재생사업의 주제를 분명하게 이해한 총괄기획자와 건축가의 노력이 있었다. 강진숙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장은 광명시 자원회수시설 내의 재활용센터를 업사이클아트센터로 개조하는 작업을 총괄했고, 개관 후에는 센터장으로서 운영 전반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강진숙 센터장을 만나 아트센터의 설립 배경과 국내 업사이클 문화의 현주소, 그리고 폐산업시설 재생사업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강진숙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장. 오른편의 코뿔소는 망가진 장난감으로 만들어졌다. /시사위크
강진숙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장. 오른편의 코뿔소는 망가진 장난감으로 만들어졌다. /시사위크

-우선 ‘업사이클’이라는 주제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폐산업시설 재생사업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공모를 할 때부터 광명시에서는 업사이클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주제를 선정하는 데는 문체부 컨설턴트 분들의 도움도 있었고, 광명시의 의지도 있었다. 센터 뒤편에 있는 광명동굴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리모델링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재생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고, 건물 바로 옆에는 자원회수시설이 있다. 이 장소 전체가 재생이라는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보니 자연스레 업사이클이라는 주제를 선택하게 됐다.”

-업사이클 자체가 한국에서는 생소한 주제인데, 운영상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제가 가지고 있는 지론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 똥 싸는 것밖에 지구에 도움 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숨만 쉬어도 이산화탄소가 나오고, 어떤 행동을 하면 항상 쓰레기가 배출된다. 하지만 똥을 싼다는 건 이화작용이다. 음식물이 썩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퇴비를 땅에 내려주면 땅이 건강해진다. 업사이클은 이런 생각을 좀 더 거시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저는 평소에 제 옷이나 아이들 옷도 만들어 입고, 오래된 가구를 CD보관함으로 만드는 등 업사이클 활등을 늘 해왔다. 앞서선 다소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막상 전시관을 만들려고 하면 별 것 아닌 소품 하나 가져다 두는 일부터 막힐 때가 많다. 잘 모르니까. 일례로 재봉틀만 해도 하나에 몇 십 만원씩 하는데, 어떤 종류와 레벨의 상품을 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저는 업사이클러로서 그런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업사이클 아트센터를 기획·운영하기가) 좀 더 수월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기획자이자 건축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건축물이 갖는 무의식적인 시각과 소리, 울림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사람들이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 딱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환경에 따라서 작품을 볼 때 받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내부 자재부터 벽지·조명 하나하나까지 모두 저와 로랑 페레이라 건축가가 같이 골랐다. 예를 들자면, 센터 내의 강의실과 교육실의 책걸상은 모두 이동식이다. 저는 (센터를 구상할 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공간이면서 언제든지 나눠질 수 있는 ‘움직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의자도 책상도 늘 움직이고 다시 만들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건축사무소에서도 같은 의견을 냈다.”

-업사이클 전시회뿐 아니라 학생‧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도 하고 있다.

“업사이클이든 문화공간이든 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전시회는 결국 일회성 소비인데, 이 소비가 사람들에게 체화되고 다시 순환이 될 수 있어야한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넓은 전시장은 확보했지만, 건물의 구조를 살리다보니 교육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전시장 뒤편에 교육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별관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업사이클 프로그램이 열리는 실습장과 지역 활동가들이 사용하는 공방이 있다. /시사위크
별관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업사이클 프로그램이 열리는 실습장과 지역 활동가들이 사용하는 공방이 있다. /시사위크

-광명시를 시작으로 업사이클 센터를 만들려는 지자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바라는 바가 있다면.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의 경우는 '아트'라는 코드를 넣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프로파간다(선전·홍보)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업사이클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 지역에서 업사이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으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데 집중했다.

현재 다수의 지자체들이 업사이클 센터를 열 준비를 하고 있거나, 계획을 갖고 있다. 업사이클 인프라가 넓어진다는 것은 너무 반가운 일이다. 대신에 조금 더 각자의 특색을 가졌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갯벌의 쓰레기를 원하는 업사이클러가 있다면 항구도시의 업사이클센터를 통해서 재료를 공급받고, 광명 같으면 재건축 자재를 모아놨다가 필요한 지역에 공급하고(웃음). 업사이클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것이 제 주장이다.”

파라솔과 돗자리, 자투리 천으로 만든 옷들.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개최한 2018 전국 학생대전의 수상작이다. /시사위크
파라솔과 돗자리, 자투리 천으로 만든 옷들.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개최한 2018 전국 학생대전의 수상작이다. /시사위크

-꼭 업사이클이 아니더라도, 여러 목적을 가진 문화재생사업들에서 사업계획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예산 활용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획자들이 많다. 문체부에서 2017년 예산을 배정하면 그 예산을 2018년까지 써야 한다. 그런데 문화재생사업이라는 게 어떻게 1년 만에 완성되나. 사람 뽑고 기획하고 프로그램 만들고……. 저희는 예산활용기간을 1년 더 늘려달라고 요청했더니 (그러도록) 해 주더라.

또 다른 문제는 총괄기획자의 불안정한 고용이다. 이건 단순히 ‘정부 측에서 사람을 잘랐다’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문제점들이 많겠지만, 이런 공공자본 투자로 이뤄지는 공간재생은 공공기관의 생리와 문화예술적 담론 사이를 잘 조율할 수 있는 실행력 있는 총괄기획자의 확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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