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李씨네
[한국영화 속 여성, 이렇게 변했다③-上] 이언희 감독, ‘편견’에 맞서다
2018. 12. 3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올해 한국 사회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여성’이었다. 성차별과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 전반을 흔들었고, 이를 시작으로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성범죄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출판계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흐름은 영화계로도 이어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여성주의 영화들이 다수 등장했고, 이러한 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지지가 쏟아졌다.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이름도 여성에게는 박하기만 했던 한국 영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편집자 주>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중 하나인 이언희 감독은 ‘탐정: 리턴즈’로 315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사진=김경희 기자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중 하나인 이언희 감독은 ‘탐정: 리턴즈’로 315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탐정: 리턴즈’에 대해 ‘굳이 여성 감독이 하지 않아도 될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어떤 면에서는 여자가 해야 되는 영화들만 할 수 있는 ‘환경’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중 하나인 이언희 감독은 2015년 개봉해 260만 관객을 동원한 ‘탐정: 더 비기닝’(감독 김정훈)의 속편인 ‘탐정: 리턴즈’ 연출을 맡아 315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약 180만 명으로 알려진 손익분기점을 크게 웃도는 결과다. 이 작품으로 이언희 감독은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2002)와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에 이어 여성 감독 흥행 3위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이언희 감독은 ‘탐정: 리턴즈’로 상업적 성취를 이뤄냈을 뿐 아니라, 여성 감독들이 장르 영화에 취약하다는 편견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제19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언희 감독은 이러한 평가에 대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장르 영화를 했기 때문에, 여성 감독이 잘 시도하지 않은 장르의 영화를 했다’라고 말을 해주셨는데, 어떤 면에서는 잘 모르겠는 거예요. 방은지 감독님도 스릴러를 하셨고, 임순례 감독님의 ‘제보자’는 사회 고발 드라마이긴 하지만 장르적인 색채가 있었고요. (여성 감독이) 장르 영화를 하지 않았던 게 아닌데… ‘탐정: 리턴즈’는 코믹 영화죠. 어떤 분이 ‘탐정: 리턴즈’ 시사 후에 ‘굳이 여성 감독이 하지 않아도 될 영화’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저는 그게 어떤 면에서는 여자가 해야 되는 영화들만 할 수 있는 ‘환경’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이언희 감독은 상대적으로 여성 감독들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 ‘기회’가 자신에게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제가 받아야 될 상이라기보다 그런 기회를 준 분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영화라는 것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도 해야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누군가가 기회를 줘야 하거든요. 특히 ‘탐정’같이 기획 영화이고, 심지어는 꼭 굳이 여성 감독이 하지 않아도 될 영화를 누군가에게 맡길 때, 수많은 남자 감독이 아니라 저한테 왔을 때 그것을 결정해준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2007년 ‘어깨너머 연인’ 이후 공백기를 가졌던 이언희 감독은 2016년 ‘미씽: 사라진 여자’로 9년 만에 충무로에 돌아왔다. 아이와 함께 사라진 보모를 찾아 나선 한 여자의 5일간의 추적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미씽: 사라진 여자’는 손익분기점 돌파에는 실패했지만, 스릴 있는 드라마와 사회를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탐정: 리턴즈’를 선택한 이언희 감독의 행보는 의아함을 자아냈다. / ‘탐정: 리턴즈’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탐정: 리턴즈’를 선택한 이언희 감독의 행보는 의아함을 자아냈다. / ‘탐정: 리턴즈’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러한 가운데 남성 투톱의 코믹 추리물을 선택한 이언희 감독의 행보는 의아함을 자아냈다. 이 감독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탐정: 더 리턴즈’를 기획·제작한 크리픽쳐스 정종훈 대표다. 하지만 그의 선택에 우려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언희라는 감독이 ‘뻔뻔스러울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탐정’이라는 영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뻔뻔스러울 수 있을 것이냐라는. 그래서 제가 바로 똥 기저귀 장면을 쓰고 방귀를 두 번 넣었죠. ‘이거면 되는 거예요?’ 이러면서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종훈 대표는 이언희 감독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편견’ 없는 정종훈 대표의 ‘무모함’ 덕분에 ‘탐정: 리턴즈’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전작보다 나은 속편이라는 호평도 받았다.

“제작자(정종훈 대표)가 편견이 없는 분이에요. 다른 제작자와 다르게 남자는 이거, 여자는 저거 이렇게 나누는 분이 아니었던 거죠. 제가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결국 결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다행인 것은 모두가 불만족스럽지 않게 흥행 결과가 나왔고, 이 영화의 목적이 확실히 달성됐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연말에 이렇게 앉아있을 수 있는 거죠. 아니었으면 하하. ‘탐정’ 개봉하고 나서 제작자와 같이 인터뷰를 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그랬어요. ‘제작자가 무모해서 할 수 있었다’ 라고요.”

이 감독이 ‘무모하다’고 표현한 것처럼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서 여성 감독에 대한 투자는 매우 박하다. 순 제작비 50억원이 투입된 ‘탐정: 리턴즈’는 이언희 감독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기록했고, 국내 여성 영화감독 작품 가운데서도 굉장히 큰 규모에 속한다. 하지만 범위를 넓혀보면, 이것도 적은 예산이다. 최근 백억원이 훨씬 넘는 대작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은 사정이 더하다. 올해 개봉한 여성 주연 영화들을 살펴보면 ‘리틀 포레스트’가 15억원, ‘미쓰백’이 16억원의 순 제작비가 투입됐다. ‘허스토리’의 순제작비는 30억원이다.

이언희 감독도 ‘탐정: 리턴즈’를 만나기 전까지 주로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이야기를 그려왔다. 2003년 영화 ‘…ing’로 데뷔한 후 ‘어깨너머의 연인’, ‘미씽: 사라진 여자’까지 세 작품 모두, 여성 캐릭터가 온전히 이야기를 끌고 가는 흔치 않은 ‘여성 서사 영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탓에 이 감독도 제작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에 대해 그는 “항상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이라고 토로했다.

“창작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 자아가 이입이 안 될 수 없거든요.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 내가 이입이 되는 대상을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에는 같은 성별이 훨씬 더 유리해지잖아요. 그렇다 보면 여성 창작자 입장에서는 여성을 주연으로 얘기를 만드는 것이 더 많아지는 거고, 보통 여성 감독이 영화를 찍었을 때 여성 주연의 영화가 되는 거고요. 저 역시도 계속 그렇게 찍어왔고요.

시장에서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아무리 투자사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시장의 논리에 대해서 편협하다고 얘기를 하지만 결국에는 통계를 봤을 때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영화가 천만을 넘죠. ‘미쓰백’도 쓰백러들이 힘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정말 유의미하지만 결국 숫자로 얘기하면 15~16억 정도의 예산 밖에 안 된단 말이죠. 시장에서 작은 영화 취급을 받고 큰 영화만큼 밀지 않고요. 이런 것이 돌고 도는 거예요. 돈을 대는 사람들은 굉장히 냉정하거든요. 돈이 된다고 하면 결국 할 거예요. 하지만 돈이 되는 것을 보여줬느냐, 보여줄 수 있느냐의 문제인 거죠.

이언희 감독은 2003년 영화 ‘…ing’로 데뷔한 뒤 ‘어깨너머의 연인’, ‘미씽: 사라진 여자’를 연출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이언희 감독은 2003년 영화 ‘…ing’로 데뷔한 뒤 ‘어깨너머의 연인’, ‘미씽: 사라진 여자’를 연출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직업인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제게도 이 문제가 항상 크게 놓여있는 장애물이에요. 운이 좋게 ‘탐정’이라는 작품을 만나서 나의 능력치를 조금 키워보겠다 했지만요. 제가 일을 하는 입장에서 저는 디폴트(별도의 설정을 하지 않은 초기값)예요. 저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나라는 상수를 두고 다른 것을 바꿨을 때 결과치가 어떻게 나오는지, 또 다른 것을 바꿨을 때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었죠.” 

반대로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감독이기에 얻는 장점은 없을까.

“있으면서도 없고 이게 참 애매한 게, 제가 ‘탐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에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그렇고 저한테 연락이 올 때 딱 첫마디가 ‘여성 감독으로서의 섬세함이 필요한 작품이에요’거든요. 여성 감독의 섬세함이 필요한 거면 꼭 이언희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누구나 되는 거잖아요. 남편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서 약간 발끈했더니 ‘그래도 장점이라고 얘기하는데 뭘 그래’라고 해서 ‘그래서 오빠한테 연락 올 때는 남성 감독의 대담함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라고 했어요.(웃음) 아니잖아요. 계속 부정적이야. 하하.

‘탐정’이 여성 감독 흥행 순위 3위인데, 비교 대상이 없어서 높은 순위이기도 한 거잖아요. 역대로 따지면 까마득할 테니까요. 여성 감독이 받았던 예산 중에서도 제일 많거든요. 50억. 그다지 큰 예산이 아닌데도 여성 감독으로서는 가장 많이 받았다는 타이틀이 붙는 거죠. 조금 잘했는데 조금 더 화제성이 있어 보이는 거랄까.

하지만 반대로 경쟁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무기가 주어졌을 때 결과치에 대한 거요. 나에게 조금 더 좋은 무기들이 주어졌을 때 내가 어떤 걸 보여줄 수 있느냐에 대한 기대감이 스스로 있어요. 조건이 중요하잖아요. 그 좋은 조건을 확보하고 싶다는 거죠.”

(*下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