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기 쉽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각종 공익단체나 활동가들은 늘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와 공익의 맹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와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에선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시사위크>가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정은현 툴뮤직 대표는 음악을 통해 수익사업과 소셜미션을 동시에 수행하며 사회적기업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시사위크
정은현 툴뮤직 대표는 음악을 통해 수익사업과 소셜미션을 동시에 수행하며 사회적기업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클래식 음악과 사회적기업. 선뜻 연결고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회적기업을 만나다>에 소개할 사회적기업을 찾던 중 알게 된 ‘툴뮤직’의 첫 인상은 ‘물음표’였다.

궁금함을 풀기 위해 지난 7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예술공작소 툴’을 찾았다. 툴뮤직이 운영 중인 음악 연습실이자, 툴뮤직의 사무실이 마련된 곳이다. 기자를 맞이한 정은현 툴뮤직 대표는 클래식 음악에 어울리는 세련된 외모를 자랑했다. 이후 툴뮤직을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과 향후 계획을 말할 땐 어떤 사회적기업가 못지않은 열정과 의지가 드러났다.

툴뮤직은 클래식 음악과 관련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인 사회적기업이다. 2015년 예비 사회적기업에 이어 지난해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사업영역은 크게 공간사업과 신진·장애인 음악가 발굴·육성사업으로 나뉜다.

정은현 대표는 공간사업은 ‘수익사업’으로, 신진·장애인 음악가 발굴·육성사업은 ‘소셜미션’이자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소개했다.

툴뮤직의 대표 수익사업인 예술공작소 툴. 개인적인 연습 및 연주는 물론 단체 이용도 가능하다. /툴뮤직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피아니스트인 정은현 대표는 졸업 후 취직도 해보고, 개인적으로 공연기획 일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공연기획 일은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비수기가 문제였다.

이때 떠올린 아이디어가 연습실 사업이었다. 후배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사고도 둘 곳이 업어 고민하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음악 연주 공간을 대여해주는 사업은 연습 공간과 비용 부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혼자만 쓰는 연습실을 마련하려면 비용 부담이 상당했지만, 연습실 사업을 하면 연습 공간도 얻고 수익도 챙길 수 있었다.

물론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다. 첫 연습실에 피아노를 들여오기 위해 계단을 부숴야했고,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찾는 이가 없기도 했다. 그때마다 본인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덕분에 공간사업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나갔다. 연습 및 연주 공간이 필요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찾기 시작하더니 이내 꽉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리 잡은 연습실은 인수희망자까지 등장해 매각했고, 가파르게 성장해 5호점까지 늘어났다. 또한 소규모 실내 공연장인 로로스페이스의 위탁운영도 맡고 있다. 스스로 니즈를 느껴 시작한 사업이 블루오션을 제대로 공략하게 된 것이다.

툴뮤직의 수익사업은 공간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평가회 및 여름음악캠프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수익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 정은현 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도 놓지 않았다. 클래식이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공연기획 사업과 젊은 신진 음악가 및 장애인 음악가 발굴·육성 사업이 그것이다. 다수의 유능한 아티스트들이 툴뮤직 소속으로 세계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툴뮤직 소속의 장애인 아티스트 노영서 군. 그는 독일 투어를 성황리에 마치는 등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툴뮤직

특히 정은현 대표는 장애인 음악가 발굴·육성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장애인 음악가들에게 소중한 기회가 될 콩쿠르를 개최하고, 유능한 인재에겐 음반 발매 및 공연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툴뮤직이 키운 대표적 장애인 음악가로는 노영서 군이 있다. 시각장애인인 노영서 군은 지난해 독일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해나가는 중이다.

정은현 대표가 장애인 음악가에게 관심을 갖게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TV 방송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하는 아이들을 레슨해주는 역할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쭉 이어지면서 장애인 음악가들의 어려운 현실을 알게 됐다.

“장애인 음악가들은 악보를 보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혀요. 악보가 제시되면 바로 연주해야 하는 콩쿠르에서 일반인들과의 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렇다고 재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더 뛰어난 능력과 감성을 갖고 있어요. 이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도움을 주고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을 전공한 젊은 청년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진로를 제공하는 것도 정은현 대표가 추구하는 미션 중 하나다. 또한 기존의 틀을 벗어난 다양한 공연기획을 통해 클래식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수익이 필요했다. 그렇게 정은현 대표와 툴뮤직은 자연스럽게 사회적기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처음부터 사회적기업을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수익사업과 소셜미션이 뚜렷하게 자리 잡은 건강한 사회적기업의 표본이 됐다.

정은현 대표는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구차해질 수밖에 없어요. 지원이 끊기면 명맥을 이어갈 수 없고요. 그래서 돈을 잘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손 벌리기도 싫고,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돈을 벌자고요. 그래서 수익사업은 절대 허투루 하지 않아요. 철저하게 수치를 분석하고, 끊임없이 연구하죠. 지원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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