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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통계⑭] ‘82년생 김지영’이 말하는 ‘보통 여성’의 삶은 무엇인가
2019. 01. 10 by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책표지 뒷면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공포·피로·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는 소개 문구가 적혀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책표지 뒷면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공포·피로·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는 소개 문구가 적혀 있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비극적인 삶을 사는 인물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삼은 문학작품은 흔하디흔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난의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듯, 햄릿과 같은 비운의 영웅들부터 ‘전쟁과도 같은 생활에서 날마다 지기만 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시민들까지 주인공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예로부터 작가들은 이들이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거나 혹은 현실 앞에서 무너지게 함으로써 독자의 카타르시스를 효율적으로 불러일으켜 왔다.

지난 2년여 간 국내 최고의 문제작으로 떠오른 <82년생 김지영> 역시 마찬가지다. 남존여비 사고를 가진 할머니부터 도끼병에 걸린 남학생과 성희롱을 일삼는 면접관까지, 김지영 씨는 인생의 모든 무대에서 좌절을 겪으며 ‘가해자’는 남성 혹은 남성 중심적 사회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김지영 씨의 편에 서는 것은 같은 여성인 어머니와 언니뿐이다. 이를테면 문학의 탈을 쓴 고발장인 셈이다.

◇ 르포와 문학 사이에서 길을 잃다

'82년생 김지영'의 책표지(민음사). /뉴시스
'82년생 김지영'의 책표지(민음사). /뉴시스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이 ‘일반 여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많은 장치를 마련해뒀다. 그녀의 가정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배를 곯지도 않는 소득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고, 일주일에 네 시간만 어머니가 구해 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의 대학생활 역시 사회적으로 평균 이하라고 보기는 어렵다.

<82년생 김지영>을 구성하는 뼈대는 일반 여성의 삶에 대한 통계자료다. 통계를 통해 만들어진 ‘김지영’의 성장배경에 모난 곳이 없는 것은 모두 그녀가 겪는 고통이 경제적 형편이나 비정상적인 주변 인물들 때문이 아닌, 오로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사회적 성향 때문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위한 설정이다. 그러나 정작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김지영’의 삶은 항상 뒷면만 나오는 동전과 같다. 그녀의 아버지가 IMF로 실직한 후 재기에 성공하고, 어머니가 42평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던 행운이 그녀에게는 따르지 않았던 것일까.

김지영 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같은 해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자 설문조사에서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대답이 44퍼센트였고 ‘여성을 선호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조남주 지음,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취업시장은 학교를 마친 김지영 씨가 사회에서 만나는 첫 번째 남녀차별의 현장이다. 글 속에서 인용된 통계에 따라 ‘남성을 선호한다’를 100으로, ‘여성을 선호한다’를 0으로 두면 김지영 씨가 일자리를 찾던 2005년 취업시장의 남녀차별지수는 72점이 된다. 그러나 ‘남녀차별’을 100으로, ‘남녀평등’을 0으로 두면 지수는 44점으로 바뀐다. 김지영 씨가 통계적인 삶을 살았고, 18개 기업의 면접을 봤다고 가정한다면 그 중 8곳의 인사담당자들은 남성을 선호한다는 정도다. 물론 나머지 10개 기업은 글 속에서 묘사되지 않는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표기하고, 페이 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통계(2014~2016년)에 따르면 의사는 전문직 중 동질혼 경향이 가장 강한 직종이다. 육아를 위해 국내 최고인 1억720만원의 평균연봉(한국고용정보원, ‘2015년 한국의 직업정보’)과 커리어를 포기했다는 이 정신과 전문의의 아내에게 정말 다른 길은 없었을까.

<82년생 김지영>은 비극으로 분류될까, 다큐멘터리로 분류될까. 전자로 본다면 순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지 않고, 후자로 본다면 ‘일반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는 취지에 어긋난 듯하다. 한편 김지영 씨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의 독백에서는 계몽소설의 모양새도 취하고 있는데, 해당 대목에서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우월의식마저 느껴진다.

◇ <92년생 김지혜>는 유효할까

채용공고를 사진으로 찍고 있는 구직자. /뉴시스
채용공고를 사진으로 찍고 있는 구직자. /뉴시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성 평등에 대한 1980~90년대 한국사회의 인식이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지영 씨보다 10살 어린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한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보통명사의 성격을 담기 위해 전 국민의 21%를 넘는 김씨와 82년 당시 가장 흔했던 여자아이의 이름인 지영을 합해 만들어졌다. 같은 작명법을 적용한다면 92년생 여성인구를 대표하는 이름은 ‘김지혜’가 된다.

소설 속에서 남아선호현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사용됐던 남녀성비(여성 출생아 100명당 남성 출생아의 수)는 1990년 116.5에서 2016년 105.0, 2017년 106.3으로 자연성비에 근사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2018년 12월 기준 20대 여성의 고등교육기관(대학) 취학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은 모두 20대 남성보다 높다. 또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단순노무직과 농립어업 종사자를 제외한 직군에서 20대 여성은 남성과 유의미한 임금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 일부 직종(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에서는 평균취업연령이 더 빠른(2016년 기준 남성 29.2세, 여성 27.9세) 여성이 26% 이상 많은 월 소득을 올리며, 초과급여·특별급여를 제외한 월 정액급여를 기준으로 삼으면 여성의 상대적 임금수준은 더 높아진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 오면서 김지영 씨는 출산휴가만 낼지, 육아휴직을 할지, 퇴사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나중에 퇴사를 하더라도 일단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한 쓰면서 방법을 찾는 것이 김지영 씨에게는 최선이지만 회사와 동료들이 입장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략)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정대현 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30대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은 <82년생 김지영>에서 묘사되고 있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겪은 어려움들 중 현재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유일한 사례이며 동시에 사회적 파급력이 가장 큰 현상이기도 하다. 이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이 필요한 임원직·관리직에서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원인이며, 사회 전체의 남녀 임금격차 통계를 확대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결혼·출산이 잦은 30~34세부터는 남성의 평균임금이 여성보다 유의미하게 많아지며, 30대 후반부터는 격차가 20% 이상으로 확대된다.

다만 자발적 퇴직과 비자발적 퇴직을 구분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부부 중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쪽이 항상 아내인 것은 ‘남편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아서’일까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일까? 30대에 떨어졌던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 이유 중 ‘외벌이로도 생계를 꾸릴 만해서’의 비중은 얼마일까?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나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 같은, <82년생 김지영>이 인용한 문구들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