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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요
[함께 살아요⑧] 일본인 그녀가 27년째 한국인으로 사는 법
2019. 01. 11 by 소미연 기자 pink2542@sisaweek.com

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와타나베 미카는 “일본에서 있었을 때보다 한국에서 배운 게 훨씬 많다”며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에서 27년째 이민자로 살고 있다.
와타나베 미카는 “일본에서 있었을 때보다 한국에서 배운 게 훨씬 많다”며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에서 27년째 이민자로 살고 있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일본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연극학과에 진학해 꿈을 키웠다. 하지만 NGO 봉사활동 차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뒤 미래가 달라졌다.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고 1년 만에 결혼했다. 한국에 정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다. 결혼 후 대만으로 유학을 떠난 남편을 기다렸다. 부부는 대만에서 1년을 함께 보낸 뒤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때부터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와타나베 미카(58)는 한국에서 27년째 ‘이민자’로 살고 있다.

◇ 27년째 한국 생활… 이민자 자립 위한 끊임없는 고민

이제 분기점에 다다랐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일본에서 나고 자란 시간과 대동소이하다. 한국인과 다름없이 살고 있지만 와타나베 미카는 손을 저었다. 그는 10일 경기도 부천 모처에서 <시사위크>와 만나 “한국에 온지 5~6년 정도 됐을 때는 한국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시기를 지나고 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이민자의 삶은 또 다른 숙제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정체성 찾기다.

와타나베 미카는 결혼이주여성들과 봉사단체인 ‘물방울나눔회’를 결성해 10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이민자들의 자립을 위해 노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했다.
와타나베 미카는 결혼이주여성들과 봉사단체인 ‘물방울나눔회’를 결성해 10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이민자들의 자립을 위해 노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했다.

와타나베 미카는 자신에 대해 “전형적인 일본인은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며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귀화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자녀들은 이미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아들은 1월 말 입대를 앞두고 있다. 와타나베 미카는 “한국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다하기 위해선 역시 귀화가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큰 계획도 준비 중이다. 한국이 가진 공동체 문화를 이민자들의 현실에 가까워지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구상하고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구슬땀을 흘려왔다. KBS ‘러브 인 아시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다른 결혼이주여성들과 봉사단체인 ‘물방울나눔회’를 결성했고, 16개 이민자 관련 단체를 하나로 모은 ‘글로벌커뮤니티협회’와 결혼이민자의 자립 지원을 위한 ‘꿈드림학교’ 설립을 도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5월 20일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인 ‘올해의 이민자상’을 받았다.

와타나베 미카는 물방울나눔회 결성 이후 10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포럼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결혼, 출산, 자녀 양육에 이어 아들을 군대에 보내게 된 어머니로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게감이 달랐다. 와타나베 미카는 얼마 전 발생한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에서 숨진 학생의 어머니가 러시아 국적인 것으로 뒤늦게 알려진 사실을 꼬집으며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느꼈던 정답고 따뜻한 사회가 아니다. 한국인이 본래 가지고 있는 정(情), 가족적인 문화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미카는 2012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일인극 ‘명성황후’를 공연했다. “일본이 과거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와타나베 미카는 2012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일인극 ‘명성황후’를 공연했다. “일본이 과거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에서 보낸 27년, 후회는 없다. 와타나베 미카는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한일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의 부친이 태어난 곳이 함경북도 나진이다. 조부가 만주철도 회사 간부로 나진에 머물 당시 부친을 낳았다. 때문에 한일 역사를 배울 기회가 있었고, 막연하지만 양국의 화해와 개선 과정에서 역할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지인에게 한국인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운명이라고 느꼈다. 와타나베 미카는 일본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2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일인극 ‘명성황후’를 공연했다.

와타나베 미카는 고국인 일본을 향해 쓴소리를 냈다. 그는 “일본이 과거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면서 “일본인이 사실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일 관계가 이해가 된다. 알고 있는 사실이 다르면 서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혼이민자로서 한국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데 강요하기보다는 한국 본래의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이민자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와타나베 미카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계속 노력하다보면 어려운 문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