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선규의 꽃길이 드디어 열렸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진선규의 꽃길이 드디어 열렸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꿈같은 시간이다.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배우에서 감독의 제안을 받는 배우가 됐다. 아무리 지나다녀도 몰라보던 사람들이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가족들과 마음껏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한 회식비 계산도 문제없다. 무명에서 ‘대세’ 배우로 떠오른 진선규의 행복은 소박했고, 따뜻했다. 

2000년 연극 ‘보이첵’으로 데뷔한 진선규는 2004년 영화 ‘안녕, 아리’를 시작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오랜 무명 생활을 겪어야 했다.

진선규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7년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를 통해서다. 극중 진선규는 신흥범죄조직 흑룡파 보스 장첸(윤계상 분)의 오른팔 위성락 역을 맡아 능숙한 조선족 사투리 연기는 물론, 살벌한 표정과 강렬한 눈빛 등 강렬한 악인을 완벽히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때부터 진선규에게 ‘꽃길’이 펼쳐졌다. 단숨에 충무로 대세 배우로 떠오른 그는 다양한 작품에 굵직한 배역을 소화했고,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올해는 주연 배우로 활약한 영화 네 편(‘극한직업’·‘암전’·‘퍼펙트 맨’·‘롱리브더킹’)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으로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난다. 

첫 행보는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이다.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의 마약반 5인방이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위장 창업한 ‘마약치킨’이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수사극이다. 극중 진선규는 마약반 사고뭉치 마형사 역을 맡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능청스럽고 유쾌한 매력을 발산할 예정이다.

진선규의 올해 첫 행보는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진선규의 올해 첫 행보는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진선규는 자신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변화에 잘 대처하고 있었다. 매 작품 최선을 다하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입지는 달라졌지만 진선규는 변하지 않았다. 그의 ‘꽃길’이 펼쳐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평소 개그감은 어떤 편인가. 대사로 전달해야 하는 코믹 연기가 어렵지 않았나.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긴 하다. 말로 하는 개그는 아니고 주로 몸 개그 쪽이다. 그래서 내가 대사를 괜찮게 잘 한 건지 계속 의심이 들었다.”

-‘극한직업’의 어떤 점이 가장 끌렸나.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이병헌 감독님을 너무 좋아했다. 예전에 나라는 배우를 아무도 모를 때 둘이 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대화는 많이 안 했지만 조용히 3차까지 갔다. 그때 나중에라도 같이 작업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청룡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처음 받은 시나리오가 ‘극한직업’이었다.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시나리오가 들어온 것도 처음이고 역할도 엄청 크고, 그래서 감독님한테 다시 물었었다. 이거 정말 나한테  제안한 거 맞냐고. 꿈같았다. 이병헌 감독님이 ‘선규 선배가 잘 된 게 너무 좋고 제안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시켜만 달라고 했다.”

-이병헌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사실 처음에 코미디에 대해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겁이 났다. 그래서 이병헌 감독님 말만 잘 들었고, 그려놓은 그림 안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를 했다. 감독님이 얘기하는 거 빨리 잡아서 하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에 감독님한테 ‘감독님이랑 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물었었다. 대사 특유의 느낌이나 호흡 같은 것들을 한두 번 더 하면 나한테도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감독님이랑 하면서 너무 좋았고 많이 배웠다. 거기다 잘 생겼고.”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나. 
“시나리오 연습할 때 이병헌 감독님이 그냥 감정 없이 별거 아닌 것처럼 툭툭 내뱉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닥쳐’, ‘응 알았어’ 이런 느낌으로. 편안한 아저씨 같은 모습을 원했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연습을 했다. 감독님이 원하는 만큼 스크린에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저희의 손을 떠났다. 관객들이 재밌게 받아주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범죄도시’ 위성락으로 강렬한 악역을 소화했는데, 전혀 다른 장르인 코믹을 선보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범죄도시’ 위성락은 내 인생을 바꿔줬다. 나도 처음 내 빡빡 머리를 봤고, 저렇게 징그러울 수 있구나를 느꼈다. 정말 소중한 작품이고 소중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런 악역을 또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했다.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더 지나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극한직업’은 코미디여서 더 좋았다. 같은 것을 반복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극한직업’ 후에는 공포영화 ‘암전’이 있다. 장르가 바뀌니까 나의 느낌들이 다르게 묻어나더라. 그런 점이 참 좋았다.”

진선규가 자신과 다른 모습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밝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진선규가 자신과 다른 모습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밝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범죄도시’ 위성락, ‘극한직업’ 마형사 모두 실제 진선규 배우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본인과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나. 
“100% 그렇다. 이름도 ‘선’규이지 않나.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청룡영화제 수상 후에도 엄마가 전화해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평생을 그런 말을 듣고 살았다. 그런데 사람이 왜 화나는 일이 없겠나.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시작한 것도 그런 영향이 있다. 우연찮게 극단에 놀러 갔는데 연기를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뭘 잘 했겠나. 그런데 내가 너무 재밌는 거다. 평소에 내가 하던 말도 아니고, 소리도 질러보고 너무 재밌더라.  

변하는 내 모습이 너무 좋다. 그래서 촬영장에 항상 일찍 가서 분장하고 앉아있었다. 바뀌어있는 내 모습이 좋아서. 나랑 교차되지 않고 내가 꺼내지 않았던 모습을 꺼내서 연기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다. ‘범죄도시’ 위성락이 그랬고 ‘극한직업’ 마형사도 그랬다. 이상하게 그 상황에 들어가면 내가 그 사람이 된다. 그런 게 너무 재밌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상 받고 주연도 하고, 꽃길이 열렸다.
“진짜 로또 된 것 같다. 인생 대역전, 인생 대반전. 처음 해보는 것 투성이다. 포스터에 얼굴 나오는 것도 처음이고, 대중들이 알아봐 주시고 잘 봤다고 해주신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간혹 눈썰미가 굉장히 좋으신 분이 알아보시면 인사하고 한다. 너무 감사하다. 물질적으로도 나아졌다. 주변에서 이사 안 가냐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하하. 우리 가족이 맛있는 거 먹고, 아이가 갖고 싶은 거 사주고 후배들 만나서 밥 사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갑자기 변한 상황에 따른 두려움은 없나.
“부담감이나 두려움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잘 돼야 한다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마음이니까 거기에 일조할 수 있도록 그냥 내 역할을 잘 하고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 열심히 하고 있다. 원래 캐릭터를 만들고 연습하고 공부해보고 했던 걸 그대로 하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러 가지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는 장이 나한테 열린 거니 즐겁고 행복하다. 누구나 다 부러워할 상태인데 벌써 두려워해버리면 아까울 것 같다. 부러워하는 후배들도 있으니 더욱 겸손하게 하려고 한다. 후배들과 영화 얘기하면서 연기 얘기하고 공유하고 그렇게 똑같이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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