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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의 아이러브스포츠
모라타, 맞는 유니폼은 따로 있다
2019. 01. 22 by 김선규 기자 swsk1209@hanmail.net
모라타의 첼시 생활이 아쉬움 속에 막을 내릴 전망이다. /뉴시스·AP
모라타의 첼시 생활이 아쉬움 속에 막을 내릴 전망이다. /뉴시스·AP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훌륭한 축구선수가 만들어지기 위해 오로지 그 선수의 실력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함께 호흡을 맞출 동료, 그리고 그런 동료들과 이루는 팀 또한 무척 중요한 요소다. 축구는 개인종목이 아닌 팀종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팀을 옮긴 후 빛을 보거나 빛을 잃는 모습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얼마나 자신에게 맞는 유니폼을 입느냐, 또 얼마나 유니폼에 어울리는 선수를 영입하느냐가 해당 선수와 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알바로 모라타의 축구인생도 이러한 ‘진리’를 확인시켜 준다.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와 날카로운 골감각을 갖춘 모라타는 손꼽히는 공격수 중 하나다. 단, 자신에게 맞는 유니폼을 입었을 때 말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모라타. 레알 마드리드C에서의 인상 깊은 활약으로 조세 무리뉴 감독의 눈에 든 모라타는 2010년 12월 감격스런 1군 데뷔무대를 가졌다. 다만,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자신의 자리를 꿰차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2012-13시즌에 이르러서야 정규멤버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임팩트는 없었고,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자리를 꾸준히 차지하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모라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이탈리아 세리에A로 건너갔다. 그가 갈아입은 것은 유벤투스의 줄무늬 유니폼이었다.

선수단이 화려하기로는 레알 마드리드 못지않았던 유벤투스. 그러나 모라타에겐 유벤투스의 줄무늬 유니폼이 제격이었다. 초반엔 카를로스 테베즈, 페르난도 요렌테 등 이름값 높은 선수들에게 밀렸지만, 상황은 금세 반전됐다. 2015년 들어 점차 인상 깊은 모습과 결과를 만들어낸 모라타는 유벤투스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유벤투스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15-16시즌에도 존재감을 키워나가며 자신을 향한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이때 모라타는 또 한 번 중요한 변화를 맞게 된다. 유벤투스에서의 활약을 눈여겨본 레알 마드리드가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유벤투스로 보낼 당시 ‘바이백 조항’을 마련해둔 게 신의 한 수였다.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선 모라타를 바이백 조항으로 데려와 활용하든 다시 팔든 이익이었다.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돌아온 모라타는 첫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20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절반 이상을 교체로 출전한 것이기에 충분히 좋은 활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모라타는 좀처럼 확고한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큰 산이 있었고, 그와 더 잘 어울리는 카림 벤제마가 중용을 받았다.

결국 모라타의 레알 마드리드 생활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2016-17시즌을 앞두고 이적설이 불거졌다. 처음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가능성이 높았으나, 반전을 거듭한 끝에 첼시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첼시 유니폼은 모라타에게 맞지 않았다. 첫 시즌 초반 반짝 활약을 펼치며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지만, 이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첼시에서의 첫 시즌 성적표는 리그 31경기 출장에 11골. 모든 대회를 통틀어도 48경기 출장, 15골에 그쳤다. 올 시즌은 더 심각하다. 리그에서 16경기 출장에 그치고 있고, 골은 5골 뿐이다.

모라타의 첼시 생활은 서서히 끝이 보이고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의 이적이 유력해 보인다.

첫 레알 마드리드 생활은 아쉬웠고, 유벤투스에서는 빛을 발했다. 다시 돌아온 레알 마드리드에선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제한적이었고, 많은 기대 속에 입단한 첼시에서의 생활은 실패로 끝났다. 모라타는 다시 자신을 빛나게 해줄 팀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