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8개 정부부처가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수립했다. 그런데 이 대책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책의 정확한 시행 시기를 언급한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고 기준도 애매하다는 이유다.
8개 정부부처가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수립했다. 그런데 이 대책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책의 정확한 시행 시기를 언급한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고 기준도 애매하다는 이유다.

[시사위크=최수진 기자]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나선다. 웹하드 카르텔을 원천 차단해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구속 수사 원칙을 앞세우는 등 강력하게 대응한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지적되고 있다. 대책의 정확한 시행 시기를 언급한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고 기준도 애매하다는 이유다. 피해자가 급증하는 만큼 정부의 대책에도 속도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 어떤 것 담겼나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8개 정부부처가 힘을 모았다.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여가부) △국세청 △경찰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등이다. 이들은 지난 24일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조정회의를 개최해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웹하드 업체, 필터링 업체, 디지털 장의사 업체 등의 단속을 강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디지털 성범죄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다. 웹하드 카르텔은 몰카 등 불법촬영물에 대한 신고, 삭제 및 단속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유통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정부는 이들이 불법촬영물 유통으로 부당 이익을 얻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판단, 현행 규제체계를 점검하고 제도 개선에 나선다. 또, 법령을 개정해 웹하드 카르텔 구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한다. 

먼저, 불법촬영물 생산과 유통을 신속히 차단한다. 모니터링 대상은 PC에서 모바일까지 확대한다. 피해자 등으로부터 삭제 또는 차단요청을 받은 웹하드 사업자는 즉시 삭제 또는 차단 조치를 해야 한다. 따르지 않을 시 방조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다. 위반 건별로 최대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웹하드 카르텔 주요 가담자와 불법촬영물을 영리목적으로 유통한 자는 구속수사를 진행하며, 징역형으로만 형사 처벌하도록 엄정 대응한다. 최초 촬영자 및 유포자는 끝까지 추적, 검거한다는 방침이다. 

법적 규제도 강화한다. 웹하드 카르텔의 유착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상호간 주식, 지분 등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한다.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연내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한다. 경제적 이익을 얻는 사업자는 세금을 추징한다. 나아가 불법촬영물 유포 행위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상 중대 범죄에 포함해 관련 수익을 몰수, 추징할 수 있도록 상반기 내에 관련법 개정에 나선다. 

정부는 “불법촬영물 유통이 돈이 되지 못하도록 범죄 수익 환수에 나설 것”이라며 “기소 전 몰수 보전 신청과 국세청 통보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 방지 민간협력체계를 구축해 실효성 있는 이행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 ‘애매한 기준·부족한 인력·추상적인 대책’

그러나 만족할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세심하지 못하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대책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용이 추상적이고 애매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문제 삼는 것은 ‘기준’이다. 방심위는 심의가 필요한 경우에도 신속 대응을 위해 심의 기간을 현재 3일에서 24시간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기준이 애매하다. 방심위는 ‘피해가 명백하고 중대한 불법촬영물’에 대해서만 24시간 이내로 심의를 끝낸다. 모든 불법촬영물에는 각각의 피해자가 존재하고 이들 피해자가 모두 고통 받는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피해자의 피해 규모를 따질 수 있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어떤 기준에 의거해 불법촬영물의 중요도를 나눌 것인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구속수사의 기준 역시 ‘영리목적’으로 유통한 자에 한한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는 대부분 보복 등을 이유로 발생한다. 여가부의 불법 촬영물 피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피해 중 약 75%에 해당하는 비율이 지인에 의해 발생했다. 몰카 피해 4건 중 3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는 사이라는 의미다. 불법 촬영자 대부분은 배우자, 전 연인 등 친밀한 관계였다. 학교, 회사 등의 아는 사이도 존재했다. 대부분은 복수 등을 목적으로 웹하드에 불법촬영물을 게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익 목적으로 유통되는 건수는 일부에 그친다. 이에 기준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부족한 인력도 문제다. 여가부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인력을 10명 충원한다. 16명에서 26명으로 증원한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성범죄 발생 건수는 6,000건에 달한다. 여가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에 신고한 피해자는 2,379명으로 집계됐다. 피해건수는 5,687건이며, 센터가 삭제를 지원한 건수는 2만8,879건이다. 센터 직원 1명당 월평균 150건의 삭제 지원을 요청한 수치다. 이 외에도 이들 직원은 상담, 수사·법률지원, 의료지원 등도 병행해야 한다. 26명의 인력에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방심위의 피해자 지원 대책도 비판을 받고 있다. 추상적인 대책이라는 이유에서다. 방심위는 상시 신고접수 및 24시간 이내 심의를 지원하기 위해 현재 ‘디지털성범죄대응팀’을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으로 확대한다. 그런데, 지원단의 역할과 구체적인 업무 내용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예산이다. 디지털 성범죄 지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를 위해 사용할 예산이 없는 탓이다. 지난해 책정된 방통위의 디지털 성범죄 예산이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특위)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아서다. 이에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기도 미정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실행 시점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실제 정부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활영해 불법촬영물을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도입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사용 범위에 대해 밝힌 내용과는 대조된다. 정부는 해당 기술이 개발되면 △방심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웹하드·필터링 사업자 △인터넷방송 플랫폼 사업자 등에도 확대 적용하겠다며 계획을 발표했지만 언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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