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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의 아이러브스포츠
[아시안컵, 왜 실패했나 ①] 선수는 로봇이 아니다
2019. 01. 26 by 김선규 기자 swsk1209@hanmail.net

59년 묵은 아시안컵 우승의 한이 이번에는 풀릴 줄 알았다. 손흥민을 필두로 전체적인 전력 구성이 2002년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진운도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아시안컵은 8강에서 허무하게 끝났다. 총 5경기를 치르는 동안 내용과 결과 모두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다. 많은 기대 속에 출발해 줄곧 좋은 모습을 보여 온 파울루 벤투 감독의 명백한 실패로 평가할 수 있다. 그의 거취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진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월드컵 예선과 본선에서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뒤늦게 합류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손흥민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뉴시스
뒤늦게 합류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손흥민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0대0의 다소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던 후반 26분. 우리의 에이스 손흥민이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다. 오른쪽 미드필드 구역에서 이용이 침투하는 손흥민에게 패스를 넣어줬고, 손흥민은 페널티박스 우측에서 볼을 잡았다.

그런데 이때 따라붙은 수비수가 미끄러졌고, 손흥민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침투해 들어갔다. 이어 또 다른 수비수 2명의 방해도 가뿐히 피한 뒤 왼발 슈팅을 날렸다.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소속으로 자주 보여주던, 손흥민이 가장 잘하는 플레이였다.

하지만 손흥민의 발끝을 떠난 슈팅은 힘이 약했고, 골키퍼 품에 안겼다. 강력한 슈팅이 최대 강점 중 하나인 손흥민이었기에 이 슈팅은 아쉽기만 했다.

5분 뒤인 후반 31분 김진수의 프리킥마저 골대를 맞고 나온 우리 대표팀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카타르에게 중거리 골을 허용하며 일격을 당했다. 그렇게 경기는 0대1 패배로 끝났다.

카타르 전 승부의 분수령이 된 지점이 바로 후반 26분부터 33분까지였다. 우리는 결정적인 기회를 두 차례나 잡았지만 놓쳤고, 카타르는 위기 이후 기회를 잡았다. ‘골을 넣어야 할 때 넣지 못하면 곧이어 실점 위기를 맞게 된다’는 정설을 입증한 셈이다.

특히 손흥민이 평소 제 실력대로 득점에 성공했다면, 카타르 전은 무난한 승리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카타르가 체력 등 여러모로 흔들리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의 슈팅이 골망을 갈랐다면, 카타르는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손흥민은 왜 아쉬운 슈팅을 날리고 말았을까.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체력이다.

우리나라 시각을 기준으로 손흥민은 지난 14일 새벽 1시 30분 시작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소화한 뒤 UAE로 건너와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16일 밤 10시 30분 중국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투입됐다. 런던에서 맨유 전을 마친 뒤 67시간 만에 UAE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 것이다. 그냥 경기를 치러도 빡빡한 일정인데, 장거리 비행과 시차까지 더해졌다. 손흥민을 주목한 많은 외신에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벤투 감독의 선택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필리핀 및 키르기스스탄에게 압도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 우리는 중국과의 경기에서 확실한 승리가 필요했다. 행여 패하거나 비길 경우 16강 이후의 대진이 험난해질 수 있었다. 반면, 승리를 챙길 경우 비교적 순탄한 대진과 더불어 넉넉한 휴식도 챙길 수 있었다.

경기는 잘 풀렸다. 전반 13분 황의조가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5분엔 김민재의 추가골이 터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실상 승기를 잡았음에도 벤투 감독은 손흥민을 계속 기용했다. 정규시간을 2분 남기고서야 구자철과 교체한 벤투 감독이다.

손흥민의 선발 기용이야 선수 본인이 자청했고, 검사 결과 몸 상태에도 문제가 없었고, 확실한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손흥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휴식을 주지 않은 것은 납득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손흥민의 혹사는 우리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바레인과의 16강 전에서 연장혈투를 모두 소화한 손흥민은 카타르 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패배를 자초했다. 벤투 감독의 자업자득이다.

벤투 감독은 이번 손흥민 사례 외에도 다소 납득할 수 없는 고집스런 선수기용을 종종 보여 왔다. 또한 지나치게 선수기용 및 전술 구사가 다소 경직돼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벤투 감독의 가장 큰 목표는 월드컵이다. 장기간에 걸쳐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펼쳐지는 월드컵 예선은 선수들의 컨디션 파악 및 관리가 전력과 전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만약 지금과 같은 선수기용이 이어진다면 대표팀과 핵심선수 모두 탈이 날 우려가 크다.

59년 만의 우승 도전은 너무나도 아쉽게, 너무나도 일찍 끝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이 실패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성공의 어머니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