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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김은희 작가, 조선시대에 ‘좀비’ 불러들인 이유
2019. 01. 3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김은희 작가가 신작 ‘킹덤’으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제공
김은희 작가가 신작 ‘킹덤’으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치밀한 서사와 날카롭고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장르물의 대가’로 불리는 김은희 작가가 신작 ‘킹덤’으로 돌아왔다. 2011년부터 구상한 ‘킹덤’은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Netflix)를 만나 8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김은희 작가는 드라마 ‘싸인’(2011)과 ‘유령’(2012)을 비롯해 ‘쓰리 데이즈’(2014)·‘시그널’(2016) 등 매 작품마다 시청자뿐 아니라 평단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시그널’은 현대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지는 치밀한 서사와 서스펜스를 보여주며 2016년 최고의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으로 김 작가는 제5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극본상,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 표창, 제5회 아시아태평양 스타어워즈 작가상 등을 수상, 진가를 인정받았다.

‘시그널’ 이후 3년 만에 김은희 작가는 더 세고, 더 강렬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조선시대라는 한국적 배경에 ‘좀비’라는 서구적 소재를 녹여내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친숙하면서도 독특한 ‘킹덤’을 통해서다.

‘킹덤’은 지난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됐다. /넷플릭스 제공
‘킹덤’은 지난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됐다. /넷플릭스 제공

‘킹덤’은 죽었던 왕이 되살아나자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 이창(주지훈 분)이 향한 조선의 끝, 그곳에서 굶주림 끝에 괴물이 돼버린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김은희 작가는 ‘이름 모를 괴질에 걸려 수만 명의 백성이 죽었다’는 조선왕족실록 기록을 읽고, 역병으로 인해 끔찍하게 돌변하는 괴물들을 소재로 전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지난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된 ‘킹덤’은 아름다운 영상과 탄탄한 서사, 숨 막히는 스릴과 긴장을 선사하며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보다 앞서 ‘킹덤’은 시즌2 제작을 확정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시즌1을 공개하기 전에 시즌2 제작을 확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은희 작가는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모두가 좀비라면 오히려 평등하고, 평화롭지 않았을까?”라는 흥미로운 의견을 내놨다.

김은희 작가가 넷플릭스와 함께 ‘킹덤’을 작업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김은희 작가가 넷플릭스와 함께 ‘킹덤’을 작업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킹덤’이 공개됐다. 한국 시청자 반응 외에 해외 시청자 반응도 신경이 쓰일 것 같다. 찾아봤나.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 헤드라인 정도는 해석이 되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이래서 중, 고등학교 때 영어를 가르쳤나 보다. 하하. 사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오픈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 시청자를 위해 내가 제일 잘 하는 걸 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응들을 보면 ‘정말? 이렇게도 보셨어?’ 하면서 떨리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하고 희한한 마음이 든다.”

-넷플릭스가 수치를 공개하지 않아서 반응을 확인하는데 불편하진 않았나.
“그래서 주변에 같이 만든 PD나 제작진들이 어떻게든 알아보려고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데 넷플릭스가 보안이 철통같더라.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는 하더라. 그런 식으로는 (넷플릭스가) 말해줬다.”

-방송사가 아닌 넷플릭스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넷플릭스를 선택했다기보다는 ‘킹덤’이라는 드라마를 영상화 하고 싶었는데 ‘아마, 힘들겠지’라고 생각했다. 정식으로는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이런 거 하면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했을 때 별로 좋은 반응은 없었다. 그런데 ‘시그널’ 끝나고 넷플릭스 관계자와 만났었는데 넷플릭스와 함께 일할 의향이 있냐고 묻더라. 그 얘기를 듣는데 ‘여기서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물어봤더니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드디어 할 수 있게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지금 만들어진 ‘킹덤’을 공중파에서 방영한다는 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표현 수위에 대한 이야기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공중파에서 힘들 거라고 생각했나.
“예를 들면 인육을 먹는 것 같은 설정이다. 처음 기획할 때부터 배고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말 그대로 배고픔이 있을 수 있지만 권력에 대한 배고픔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권력에 대한 탐욕과 진짜 배고픔이 합쳐져서 역병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육을 먹는 장면이 꼭 들어갔으면 했고, 꼭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가능한 플랫폼이 별로 없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좀비라는 설정을 갖고 왔는데, 유교와 좀비가 만나니 독특한 충돌이 생긴다는 반응이 있다. 그런 점도 의도한 부분인가.
“신체절단이나 훼손이 불가능하다는 유교적인 사회에 좀비가 들어오면 굉장히 아이러니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급의 느낌도 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좀비가 된 양반이 상민을 덮친다면 과연 모자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획할 때부터 보고 싶었다. 계층 간의 문화가 확실했던 조선시대에 왕, 양반, 평민 등 모든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된 좀비 사회? 오히려 평등한 시대, 평화로운 시대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킹덤’에서 이창 역을 소화한 배우 주지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킹덤’에서 이창 역을 소화한 배우 주지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창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창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리더의 모습이 있었나.
“‘시그널’을 쓸 때도 ‘싸인’을 쓸 때도 화이트보드에 뭔가 하나를 적어놓는데, 잘 표현됐는지 모르겠지만 ‘킹덤’은 ‘정치란 무엇인가’였다. 나는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공감대를 점점 넓혀가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궁궐 안에서 책으로만 읽었던 세상, 말로만 들었던 백성이 아니라 직접 보게 되는 상황들을 많이 표현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인육을 먹인 뒤 ‘죽은 후에는 그저 고기다’라고 하는 영신의 대사가 섬뜩했다. 그 대사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꼭 우리나라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대기근이나 그런 것을 다룬 기록을 보면 자기 자식을 차마 먹지 못해서 바꿔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너무 심한 배고픔을 겪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신 캐릭터는 실제 전쟁을 겪었던 인물이다. 전란을 겪었던 병사라고 생각해서 조금 더 냉정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또 실제로 (인육을 먹은 경험을) 겪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 대사를 하게 됐다.”

-수위가 세다 보니 보기 불편하다는 평도 있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잔인한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평소 작품을 할 때 최대한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을 안 보여주고 넘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킹덤’은 기획 자체가 배고픔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인육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좀비물이다 보니 목이 잘리는 장면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 맥주 마시면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맥주를 세 캔 정도 마시고 알딸딸해지기 시작하면 좀비가 나온다. 그때 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웃음)”

-한국적인 풍광이나 소품들도 ‘킹덤’의 관전 포인트 같은데.
“해외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부분이 그런 점일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알지만,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한옥 구조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툇마루 밑에 쌓여있는 시신들이라든지, 쌍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동래에서 시작되는 얘기이기 때문에 사전 답사를 갔었는데, 우리나라 자연이 너무 예쁜 거다. 눈길도 예쁘고, 눈길 사이 산들도 너무 예뻤다. 그 모습을 최대한 영상에 담고 싶었다. (김성훈) 감독과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예쁜 길로 유령선 같은 것이 올라오긴 하지만. 하하.”

-범팔(전석호 분)이 의녀 서비(배두나 분)를 좋아하는 설정이 있는데 단순히 쉬어가는 재미를 주기 위함인가, 다른 의도가 있나.
“세자랑 같이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철없는 탐관오리가 있었으면 했다. 범팔이 서비를 좋아하는 모습을 통해, ‘얘는 정말 생각이 있는 건가, 뇌가 있는 건가’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범팔이 조학주의 조카인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게 권력에 대한 탐욕보다 정말 무지해서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처음 기획할 때 더 많은 캐릭터들을 생각했다. 백정도 있었고, 기생도 있었다. 2011년부터 기획을 했었는데 그 사이에 비슷한 웹툰도 나오고 하더라. 그래서 비슷한 설정들은 피해야겠다 싶어서 배제된 인물도 있다. 그 인물들이 섞인 부분도 있다.”

‘킹덤’으로 의기투합한 (왼쪽부터) 김성훈 감독·류승룡·김은희 작가·주지훈/ 넷플릭스 제공
‘킹덤’으로 의기투합한 (왼쪽부터) 김성훈 감독·류승룡·김은희 작가·주지훈/ 넷플릭스 제공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나.
“배두나의 연기력 논란을 알고 있다. 서비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의녀가 아닌 시골 의녀다. 어떻게 보면 자격증도 없고, 전란을 겪은 후 부모한테 버림받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한 심성을 가져서 남을 돕거나 할 때 투박한 느낌. 그런 의미에서 배두나가 해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주지훈과 류승룡(조학주 역)도 말할 나위 없이 너무 잘했다. 영신 역을 맡은 김성규는 배우가 이렇게 몸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액션으로 화면을 막 좌지우지하는 느낌을 받아서 너무 인상적이었다. 허준호(안현 대감 역) 선배도 좋았다. 동래에서 관리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 상주에서는 자기 자리에서 백성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관리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안현 대감이 그랬다. 또 허준호 배우는 나이가 들수록 눈빛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만족하면서 봤다.”

-남편 장항준 감독이 ‘킹덤’ 대본을 쓸 때 도움을 줬나.
“장항준은 대본 한 줄 읽어주지 않았다. 하하. 원래 서로 그렇긴 한데, 정말 가족 같은 느낌이다. 대본 쓰기 너무 힘들다고 하면 ‘남들도 힘들어, 쉬운 일이 어딨니’라고 한다. 기획 회의하다가 힘들어서 ‘아무도 안 도와주는 것 같아’라고 하면 ‘다 너 혼자 하는 일이야’라고 한다. 그렇게 툭툭 던져주는 말들이 진짜 가족이구나 남편이구나 이런 느낌이 든다.”

-글을 쓰고 완성본으로 보일 때까지 많은 어려움도 있을 텐데, 작가 되길 잘 했다거나 뿌듯함, 행복함을 느낄 때가 언젠가.   
“정말 꿈같은 일이다. 내가 쓴 대본이 거의 몇 백억 가까운 돈을 들여서 좋은 감독님과 좋은 배우가 연기를 해주고 그런 자체가 너무 뿌듯한 것 같다. 특히 ‘킹덤’ 같은 경우는 절대로 영상화가 되지 않을 거라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돼서 너무 꿈같다. 김성훈 감독하고도 얘기를 많이 했다. 서로 힘들 때 만나서 ‘우리 정말 잘 해보자, 꿈을 잃지 말자’라고 얘기를 했던 사이인데, ‘킹덤’을 같이 만들게 되고 기자간담회도 하고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같이 하고 있을까’라는 대화를 나눴다. ‘킹덤’이 영상화가 되고 넷플릭스를 틀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정말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