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임대진 변호사(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시 광교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시사위크와 만나 “목욕봉사를 30대에 시작해서 50대가 됐다. 처음보다 힘이 들지만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소미연 기자
임대진 변호사(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는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시 광교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시사위크와 만나 “목욕봉사를 30대에 시작해서 50대가 됐다. 처음보다 힘이 들지만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때변, 괜찮지 않아요?” 임대진(52) 변호사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여진 ‘때변’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때변’은 때밀이 변호사의 줄임말이다. 2015년 12월 법조봉사대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얻게 된 별칭이다. 혹자는 때밀이 출신이냐고 물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그는 올해 15년째 장애우 목욕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함께 탕에 들어가서 몸을 불리고 때를 민다. 하지만 목욕관리사가 전직은 아니다. 평범한 고시생이었고, 평범한 가장이었다.

◇ 장애우 목욕 봉사 15년… “이웃 같은 변호사 돼야”

목욕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딸의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입학을 위해서였다. 입학 조건 중 하나가 부모의 봉사 활동이었다. 그때부터다. 매월 셋째 주 일요일은 ‘목욕 봉사하는 날’이 됐다. 임대진 변호사는 주일 예배를 마친 뒤 교회에 출석한 장애우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연년생인 아들의 입학을 위해 내리 2년을 봉사했다. 하지만 ‘진짜’ 봉사는 이후부터였다. 그는 “필요에 의해서 한 것은 봉사가 아니”라면서 “처음 시작은 아이들을 위해서였지만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라 계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조봉사대상을 수상한 뒤에는 더 큰 책임감이 생겼다. 그만큼 부담도 뒤따랐다. 한 번씩 언론에서 때변이 언급될 때마다 속된 말로 “우려먹는 것 같아서 미안”했고, 변론 잘하는 변호사보다 목욕 봉사로 유명해진데 대해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았다. 임대진 변호사의 꿈은 ‘이웃(또는 함께)’이라는 이름의 합동법률사무소를 세우는 것이다. 주변에선 수임료 받기 어려운 이름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변호사가 이웃처럼 가까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때문일까. 임대진 변호사는 봉사 속에서 재능기부의 기회를 찾았다. 장애우의 때를 밀면서 법률상담을 해온 것처럼 “여유가 생기면 인근 공원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법률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변호사들이 시간을 내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나름의 봉사활동도 전개하지만 체감률이 떨어지는 것 같다”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변호사들이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고 설명했다. “쓰레기를 줍고 싶다”고 말하던 임대진 변호사는 기자에게 “끈금없냐”고 물은 뒤 호탕하게 웃었다.

임대진 변호사는 2015년 12월 제14회 법조봉사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목욕 봉사와 밥퍼 다일공동체 기부, 법조인들을 위한 문화행사 개최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은 결과다. / 임대진 변호사 제공
임대진 변호사는 2015년 12월 제14회 법조봉사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목욕 봉사와 밥퍼 다일공동체 기부, 법조인들을 위한 문화행사 개최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은 결과다. / 임대진 변호사 제공

올해의 큰 계획은 두 가지다. 첫째, 수원기독법조 신우회가 주최하는 문화콘서트를 원만하게 개최하는 것이다. 신우회 총무를 맡고 있는 임대진 변호사는 1년에 한 번 꼴로 문화콘서트를 열고 있다. 주요 대상은 법조인이다. 그는 “재판을 하고 나오는 길에 부부가 다투고 세 네 살로 보이는 아이가 우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면서 “법원에는 워낙 다툼이 많은 곳이 아닌가. 그런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도 힘들고 변호사도 힘들다.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콘서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고 부연했다.

둘째, 수임료의 1%를 모아서 의미 있게 쓰는 것이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무실 운영까지 고려하면 매출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사무실 운영난으로 한동안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신발끈을 바짝 동여매야 한다는 얘기다. 임대진 변호사는 수원지방법원 이전에 맞춰 지난달 31일 광교로 사무실을 옮겼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는 “다일공동체에 기부한 것을 두고 혹자는 저희가 돈이 많은 줄 알지만 부자가 아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일공동체는 밥퍼 나눔 운동을 대표적 사역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 사회복지 단체다.

사실 임대진 변호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부친이 부산의 원로 목회자다. 봉사와 나눔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다. 그는 “요즘 재산 상속 분쟁을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영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아버지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기도의 시간과 본인의 삶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이 유산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임대진 변호사는 자녀들에게 ‘부족한 아버지는 아닐까’라는 고민을 가졌다. 그의 고민은 기도하는 아버지, 든든한 이웃변호사로 한걸음 나아가게 했다.

임대진 변호사는 ‘내가 많이 가질수록 남이 적게 가지는 돈, 명예, 권력보다 내가 많이 가질수록 남도 많이 가지게 되는 사랑, 봉사, 배려 등을 베풀며 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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